이탈리아 vs 독일…EU 코로나 채권 발행 놓고 남북 갈등

중앙선데이

입력 2020.04.04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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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0호 14면

[글로벌 이슈 되짚기] 국제정치 강타한 팬데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일파만파다. 인적·물적 피해뿐만이 아니다. 국제정치에서도 블랙홀이다. 세계 각국은 코로나 정국을 맞아 새로운 계산법에 골몰하고 있다. 국가 이익을 위해서라면 전염병도 ‘호재’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와 맞물린 미·중 간 책임 공방과 유럽연합(EU) 내부 갈등, 북·미 신경전 등에는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교한 외교 전략이 담겨 있다.

재선 노리는 트럼프 ‘중국 책임론’
중국선 “확산 책임 덤터기 씌워”

유럽 극우파 ‘EU 무용론’까지 들먹
북한·이란 ‘제재 완화’ 틈새 외교전

우선 ‘G2’로 불리는 미·중의 충돌이 눈에 띈다. 확진자가 100만 명을 넘긴 3일에도 패권 다툼이 한창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강조한 국제 공조는 뒷전이다. 미국은 ‘중국 책임론’을, 중국은 ‘덤터기론’을 내세우며 맞서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코로나 사태의 원인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라며 최근까지도 ‘중국 바이러스’ ‘우한 바이러스’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지난달 말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 회의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우한 바이러스’라는 표현을 공동 성명에 넣을 것을 요구했다가 결국 채택이 무산됐다.

이런 미국의 태도에 중국의 반발은 거세다.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이 코로나 사태 확산의 책임을 중국에 떠넘기고 있다. 중국을 최대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환구시보 등 중국 언론들도 “우리 정부가 유럽과 중동 국가들에게 마스크 등 의료 장비를 지원한 데 비해 미국은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에 해준 게 뭐가 있느냐”고 공격했다. 갈등이 증폭되자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27일 전화 통화를 하고 협력을 약속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성과는 없다.

미국의 의도는 중국 책임론을 부각시켜 중국에 도덕적·경제적 부담을 지우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 사태 이후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초기 방역 실패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중국 책임론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때와는 사뭇 다르다.

당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한 달에 두세 차례 전화 통화를 하면서 글로벌 경제 회복을 위해 공조했다. 결국 양국은 재정 지출을 통한 경기 부양책을 내놓고 다른 G20 국가들에게도 이를 요청했다.

EU 내 ‘남북 갈등’도 심각하다. ‘유럽공동채권(코로나 채권)’을 둘러싼 마찰이다. 스페인·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들은 코로나 사태를 EU 차원에서 공동 대응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독일·네덜란드 등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국가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채권 발행으로 인한 공동 부담을 지기 싫다는 게 이유다.

최근 EU 재무장관 전화 회담에서 봅커 훅스트라 네덜란드 재무장관은 “왜 일부 국가가 위기를 스스로 극복할 자금을 보유하지 못했는지 연구해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에 안토니오 코스타 포르투갈 총리는 “불쾌한 발언이다. EU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끝장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른 회원국들도 지난달 초 독일과 프랑스의 의료 장비 수출 금지와 국경 통제 강화 등을 함께 거론하며 “서로 돕지 않는다면 EU의 존재 이유가 뭐냐”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극우파들은 EU 무용론까지 들먹거리고 있다. 이탈리아 극우 정당 ‘동맹’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는 “일단 위기를 해결하고 난 뒤 EU를 떠나자”고 주장했다.

북한·이란 등 반미 국가들은 코로나 정국을 활용해 틈새 외교전에 적극적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 제재를 완화하기 위해서다. 북·중·러를 포함해 이란·시리아·쿠바·니카라과·베네수엘라 등 8개국은 지난달 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공동 명의로 서한을 보냈다. 코로나19 대응을 약화시키는 경제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전염병이 휩쓴 국가들이 긴급 재원을 조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잠정적인 경제 제재 해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미 공동 전선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인도주의 명분을 앞세워 제재 완화에 국제사회의 동조를 끌어내겠다는 의도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전염병 창궐 때는 한 나라에서라도 구멍이 생기면 우리 모두에게 위기가 닥친다. 국제적인 공중보건을 위해 제재 완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의 반응은 아직 냉담하다. 폼페이오 장관은 최근 제재 완화와 관련한 질문에 “몇몇 나라 지도자들은 국민이 굶주리는 동안에도 계속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고 답했다. 북한은 이런 폼페이오의 발언을 비난하며 미국의 코로나19 지원 제안에 응하지 않고 있다. 대북 제재 완화 등 미국의 확실한 양보 없이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속셈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경우 코로나 사태로 크게 낭패를 본 케이스다. 시 주석의 4월 방일 무산과 2020 도쿄 올림픽 연기 등 악재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코로나 확진자 급증으로 국내 여론까지 악화된 상태다. 올림픽 개최를 위한 코로나 부실 대응 논란도 심상찮다. 아베 총리 특유의 ‘변칙적인 실리 외교’가 낳은 결과라는 분석이 적잖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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