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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속 한 달 67만명 발길…북한산에는 '등산적 거리 두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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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0호 10면

“불안하죠. 가족이거나 친한 사람 아니면요.”
지난달 22일 북한산. 서울 마포에서 아내, 두 아이와 함께 온 A씨는 대서문을 지나가고 있었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사람이 열 걸음 먼저 뛰어갔다. 아내 B씨는 “코로나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과 접촉을 가급적 피하는데, 산에서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속 산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29일 북한산 산성입구(은평구 진관동)를 지나 서암사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는 탐방객들. 김홍준 기자

코로나19 속 산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29일 북한산 산성입구(은평구 진관동)를 지나 서암사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는 탐방객들. 김홍준 기자

경기도 부천에서 온 김명학씨는 홀로 산행을 했다. 그는 “함께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 있지만 당분간 혼자 다니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단체산행 줄고 자차 이용, 떨어져 휴식 #"굳이 사람 많은 곳 가야하나" 지적도 #데크·화장실 등 밀집지역선 주의해야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화되면서 북한산이나 한강공원 등에서 바람을 쐬기조차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공기로는 전염되지 않기 때문에 야외에서 2m 이상 거리를 두면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탐방객이 예년보다 증가하면서 "굳이 사람 많은 곳에 가야 하느냐"는 따가운 시각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산을 찾는 풍경까지 바뀌고 있다. 개인·가족 단위로 산행하고, 산기슭까지는 자가용으로 간다. 쉼터에서는 뚝뚝 떨어져 앉는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등산 버전이다.

# 단체 산행 줄고 개인·가족 산행 늘어

한해 산악회 안전 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가 코로나19 때문에 줄줄이 취소·연기되고 있다. 단체산행도 줄었다.

이영길(63·25시산악회) 한국중앙등산연합회 전 회장은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연합회 소속 17개 산악회가 시산제를 취소했는데, 다른 산악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라고 말했다. 그는 연합회 차원의 단체산행은 지난 한 달간 전면 취소했다고 덧붙였다.

주한 외국인 산악회인 CIK의 김성원(57) 파운더(산행 대장)는 “최소 50명이 모이다 보니 다른 탐방객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어 지난 6주간 산행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노익상 대한산악구조협회  회장은 “2월 중순 17개 시·도 구조대원들이 모이는 동계 훈련은 축소 실시했다”며 “대신 각 지역별로 별도의 훈련을 가졌다”고 알렸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회원 대부분이 개별 산행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산에서 답답함과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3월 29일 북한산 산성입구(은평구 진관동) 주차장을 드나드는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있는 모습. 김홍준 기자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산에서 답답함과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3월 29일 북한산 산성입구(은평구 진관동) 주차장을 드나드는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있는 모습. 김홍준 기자

가족 산행은 늘었다. 김정은 국립공원공단 계장은 “북한산을 찾는 가족들이 눈에 띌 정도로 많아졌는데, 이들은 비교적 평탄한 산성입구(은평구 진관동) 근처의 저지대 탐방을 즐긴다”라며 “지난달 15일 고지대인 대성문~보국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이 꽤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

산성 입구에서 분식점 ‘숙이네’를 운영하는 이재근(58)씨는 “코로나19 탓에 한산할 줄 알았더니 요새는 평일에도 가족 단위 산행객이 많다”고 밝혔다. 이렇다 보니 올해 3월 북한산 탐방객(도봉산 포함 67만5900명)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지난해(47만7085명)보다 20만 명 가까이 늘었다. 2월 탐방객 수는 35만4925명에서 40만1593명으로 5만 명 정도 증가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코로나19 ‘심각’ 단계 발령 직전인 2월 22일부터 3월 29일까지 최근 6주간 북한산 주말 탐방객은 지난해 33만2987명에서 32.4% 늘어난 44만1021명이다. 지난달 22일에는 무려 5만9181명이 북한산을 찾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중 가장 많은 탐방객은 4만9827명(3월 24일)이었다.

# 지자체에선 “벚꽃·유채꽃 나들이 자제해 달라”
코로나19 사태로 탐방객들의 행태 변화도 두드러진다. 최근 6주간 주말에 자가용 1만4762대(산성입구·정릉)가 북한산을 찾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8621대)보다 71.2%나 늘었다. 탐방객 수 증가율을 뛰어넘는다. 대중교통보다 자가용을 선호한다는 얘기다.

코로나19 사태 속 북한산 국립공원에 많은 탐방객이 몰리면서 산에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조되고 있다. 사진 위는 3월 28일 도봉산 입구에 몰린 탐방객들. 아래는 6만 명 가까운 탐방객이 찾은 3월 8일 산성입구 주차장에 들어서려는 차량들. 사진=김홍준 기자, 김선경

코로나19 사태 속 북한산 국립공원에 많은 탐방객이 몰리면서 산에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조되고 있다. 사진 위는 3월 28일 도봉산 입구에 몰린 탐방객들. 아래는 6만 명 가까운 탐방객이 찾은 3월 8일 산성입구 주차장에 들어서려는 차량들. 사진=김홍준 기자, 김선경

초등생 아들과 함께 온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C씨는 “코로나19 탓에 애가 학원에도 못 가고 집안에만 있다가 함께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에서 온 30대 부부는 “헬스장·극장·교회 방문을 피해 오다 오늘 아는 사람 결혼식도 안 갔다”며 “하도 답답해서 북한산을 찾았다”고 했다. 이들은 모두 사람이 밀집할 수 있는 대중교통 대신 자가용을 이용해 왔다고 밝혔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햇볕을 쬐면서 야외 활동을 하는 것이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훈 한양대 관광경영학부 교수는 “탐방객들은 감염 우려가 있는 실내 활동은 피하되, 탁 트인 산이나 들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유지하며 새로운 경관과 변화를 느끼려고 한다”며 “당분간 이런 추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옆 사람과 음식·사탕도 안 나눠 먹어
또 다른 변화도 눈에 띈다. 탐방객들은 쉼터에서 코로나19 불안감에 5m 이상 뚝뚝 떨어져 앉는다. 옆 사람과 음식을 나눠 먹거나 사탕 한 알 권하는 모습도 안 보인다. 산행 28년 경력의 이경연(59)씨는 “인색해 보이겠지만, 요즘 같은 때는 서로 조심하는 게 예의”라고 말했다. 산성입구의 한 식당 사장은 “다른 손님들과 엇갈려 앉으려 입구에서 자리를 탐색하는 솔로 등산객들이 부쩍 많아졌다”고 했다.

지난 2월 29일과 3월 1일 북한산 원효봉, 새마을교 근처애서 등산객들이 마스크를 쓴 채 걸어가고 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 2월 29일과 3월 1일 북한산 원효봉, 새마을교 근처애서 등산객들이 마스크를 쓴 채 걸어가고 있다. 김홍준 기자

숨을 헐떡이면서도 마스크를 꿋꿋이 쓰고 산행하기도 한다. 지난달 1일과 15일·22일 북한산 탐방객들은 오르막에서 10명 중 5명꼴로, 내리막에서 10명 중 7명꼴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미세먼지·황사가 심해 마스크를 쓸 정도 의 날에는 산을 찾는 사람 자체가 적다는 게 국립공원 관계자의 말이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장면도 보였다. 3~4명이 함께 온 등산객들은 일행에 뒤처질까 봐 서로 바짝 붙어 움직였고 끼리끼리 모여 음식을 나눠 먹었다. 단체 산행객들은 줄어들었지만, 간혹 등장하면 오히려 눈에 띄며 다른 탐방객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분위기였다. 안 모씨는 “2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몰려다니니 겁나더라”고 말했다. 김현철 국립공원공단 과장은 “탐방객들이 예년보다 확 늘다 보니 감염과 안전 문제로 걱정스러운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사랑하는시민들의 모임(국시모) 국장은 “아무리 사방이 트인 국립공원이라도 사회적 거리 두기는 꼭 지켜야 한다”며 “특히 공동시설(화장실·데크 등)에는 탐방객들이 밀집할 수 있으니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김종희 국립공원공단 탐방복지처장은 “손 세정제를 곳곳에 비치했고 탐방객들이 잠깐이라도 모일 수 있는 곳은 소독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립공원공단은 지리산 장터목, 설악산 중청 등 대피소 14곳과 탐방안내소 등을 코로나19가 진정될 때까지 무기한 운영 중단 중이다.

한편 벚꽃·유채꽃 등이 속속 피면서  지자체들은 인파로 인한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봄꽃 나들이를 자제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산에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박기연 국립공원공단 북한산사무소장

박기연 북한산사무소장

박기연 북한산사무소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2개월 가까이 일상적인 생활에 제약을 받아온 국민이 답답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날씨가 풀리면서 봄꽃이 피어나는 3월 들어 주말 탐방객이 약 42만7400여명 정도 찾아와 전년도 대비 67.8% 급증했다. 시내에서는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사람의 발길이 줄어든 곳이 많지만 북한산국립공원은 오히려 탐방객이 늘어난 것이다. 영화관이나 쇼핑몰과 같은 밀폐된 공간보다는 국립공원의 자연을 선호하는 공통된 마음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는 탐방안내소와 같은 다중이용시설은 물론 탐방로상의 난간도 긴급히 소독하고 주요 입구에 손 소독제를 비치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홍보를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상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봄꽃이 더욱 만발할 4월에 북한산을 찾는 탐방객에게 간곡히 당부 드리고 싶다. 첫째, 2m 이상 거리 유지하기. 둘째, 식사 시에는 마주보지 않기. 셋째, 마스크 착용하기. 넷째, 손씻기. 다섯째, 기침예절 수칙 지키기.

물론 산에서 지키기 어려운 행동들이지만 모두가 함께 노력하고 행동 지침을 실천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 그래야만 국가적인 위기를 빨리 종식시킬 수 있고 국립공원도 보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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