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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상장사 순이익 반토막…올해는 코로나19 탓에 더 암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유가증권(코스피) 시장 상장사들이 거둔 순이익이 2018년의 '반 토막'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전보다 몸집(매출액)만 조금 커졌을 뿐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크게 줄어 '속 빈 강정' 신세가 됐다.

코스피 상장사 순이익 53% 뚝 

1일 한국거래소와 한국상장사협의회가 유가증권시장의 12월 결산 법인 583곳의 지난해 실적(연결 기준)을 분석한 결과, 전체 매출액은 2006조원으로 전년보다 0.5% 증가했다. 하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37%, 52.8% 줄어든 102조원, 52조원을 기록했다. 기업의 이익 지표도 나빠졌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5.09%로, 전년(8.11%)보다 3.03%포인트 낮아졌다. 기업들이 지난해 1만원어치를 팔아 509원을 벌었다는 뜻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기업 체감경기가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악화 가운데 31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회사원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기업 체감경기가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악화 가운데 31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회사원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뉴스1

국내 주력 산업인 반도체 시장이 지난해 침체에 빠진 게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된다. 실제 '반도체 양대 공룡'인 삼성전자(-51%)와 SK하이닉스(-87%)의 순이익이 확 쪼그라들었다. 신광선 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공시3팀장은 "미국과 중국 간 무역갈등과 일본의 수출 규제가 겹치면서 전기·전자(IT) 업종의 수익성이 악화된 게 기업 전체 실적에 악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를 제외하더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상장사 전체 매출의 11.5%를 차지하는 삼성전자를 뺀 매출액은 1776조원으로 전년 대비 1.3% 증가했다. 반면에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28%, 54% 줄었다.

코스피 상장 583개사 연간 실적. 그래픽=신재민 기자

코스피 상장 583개사 연간 실적. 그래픽=신재민 기자

미·중 무역갈등, 반도체 경기 침체 영향 

분석 대상 상장사 중 28.6%는 지난해 적자를 냈다.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선 기업(49곳)보다 적자로 전환한 기업(72곳)이 더 많았다. 재무구조도 나빠졌다. 지난해 부채비율은 111.9%로 전년보다 7.3%포인트 증가했다. 업종별 성적표를 보면 전기·전자(-64.75%)의 순이익이 가장 많이 줄어든 것을 비롯해 화학(-60.45%), 종이·목재(-55.85%), 의료정밀(-55.54%), 통신(-55.46%), 음식료품(-49.68%) 등 9개 업종의 순이익이 전년 대비 줄었다. 순이익이 늘어난 업종은 섬유·의복(137.23%), 건설(78.64%), 운수장비(51.12%) 등 6개 업종에 불과했다.

코스닥 상장사들은 그나마 '선방'했다. 코스닥 상장사 946곳의 지난해 매출액은 181조5905억원으로 2018년보다 8.4% 늘었다. 영업이익도 9조2903억원으로 4.6% 증가했다. 하지만 순이익은 같은 기간 10.5% 줄어든 4조1607억원으로 집계됐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5.12%로 1년 전보다 0.18%포인트 내렸고, 부채비율은 107.29%로 6.49%포인트 높아졌다.

코스닥 상장 946개사 연간 실적. 그래픽=신재민 기자

코스닥 상장 946개사 연간 실적. 그래픽=신재민 기자

올 1분기 영업익 전년 대비 16% 줄 듯 

더 큰 문제는 올해 실적은 더 암울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수요 부진과 공장 가동률 급감에 부딪힌 기업을 중심으로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일 기준 코스피 상장사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는 21조5000억원 정도로 3개월 전의 추정치보다 24.4% 줄었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하면 16% 감소한 수치다. 기업 체감경기도 최악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3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3월 제조업 업황 BSI는 56으로, 한 달 전보다 9포인트 하락했다.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이후 최저치다.

김민규 KB증권 연구원은 "올해 1분기 기업의 전체 영업이익이 시장 기대치에 10% 이상 미달하는 '어닝 쇼크'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올해 기업 실적이 나쁠 것이란 점은 자명하고, 얼마나 안 좋을지가 문제"라며 "현재로선 코로나19가 조만간 진정돼 하반기부터 소비가 늘 것이란 기대가 있지만, 정치적 변수가 아닌 바이러스 문제라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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