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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궤양·식도염만으로 보험금 5억 탄 부부···대법서 뒤집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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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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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와 연관된 보험 건수 36건, 월 납입액 153만원. 입원으로 받은 보험액은 5억 3025만 4620원.

2005년부터 2016년까지 A씨가 가입하거나 연관된 보험과 받은 보험액수 내역이다. 이 외에도 A씨 가정에는 남편 이름으로 된 수 건의 보험이 있었다. 2016년 한화손해보험은 A씨를 상대로 소송을 낸다. A씨가 여러 개의 보험에 가입해 장기 입원치료를 반복하면서 보험사들로부터 고액의 보험금을 부정하게 취득하려고 보험 계약을 체결했으니 이를 돌려달라는 주장이다.

1ㆍ2심 “부정하게 보험금 받았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허위 입·퇴원을 반복해 보험금을 받아낸 전직 보험설계사에게 징역형이 선고됐다. [중앙포토]

허위 입·퇴원을 반복해 보험금을 받아낸 전직 보험설계사에게 징역형이 선고됐다. [중앙포토]

하지만 1ㆍ2심 재판부는 보험회사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았다. 하급심은 A씨가 보험금을 부정하게 취득할 목적으로 보험을 많이 들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봤다. 보험사가 주로 문제삼은 것은 A씨가 ‘입원 일당’을 많이 받아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법원은 “A씨가 가입한 보험 종류가 연금보험, 암보험, 치아보험, 특정 질병 보험 등 입원 일당이 나오는 보험에 한정된 건 아니다”라며 이를 부정 수급의 근거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A씨 가정의 경제 상태도 따졌다. 법원은 “A씨의 남편은 개인택시를 운전했고, 수입의 많은 부분을 보험료로 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결했다. A씨는 식도염이나 위궤양으로 입원한 걸로 보험금을 타갔다. 보험사는 “입원 필요가 없는 질병인데 입원이 과다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A씨는 다른 병원에서 식도운동장애 등으로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며 “과다한 입원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유명병원 다니며 보험금…형사에서 유죄도 받아

 1ㆍ2심 민사 소송 전인 A씨 남편은 부정하게 보험금을 타갔다는 사기죄로 2015년 형사 유죄 판결을 받은 상태였다. 대법원 확정 판결문 검색을 통해 살펴본 판결문에는 A씨 남편의 보험 사기 행각이 나온다. 당시 검찰은 A씨 남편이 보험업계에 ‘보험사기병원’으로 소문이 난 병원을 다니며 입원치료를 받았고, 여기서 받은 보험료로 생활비를 조달했다고 보고 기소했다. A씨 남편은 징역 8월을 확정받았다. 하지만 이 판결은 민사 소송에는 증거로 쓰이지는 못했다. 민사소송에서는 소송 당사자들이 필요한 증거를 법원에 제출해야하는데 A씨 또는 보험회사측 모두 이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법원, “보험금 부정 수급 가능성 충분”

A씨의 승소로 보였던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힌다. 먼저 대법원은 월 납입보험료에 대해 따졌다. A씨가 소송 때까지 내고 있던 월 153만원가량 보험료 중 36만원은 입원 일당 보험료다. 대법원은 “남편 이름으로 된 보험도 수십건이 더 있어 월 보험료가 고액임은 충분히 예상된다”고 판결문에 썼다. 그러면서 A씨 부부의 수익을 객관적으로 입증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짚었다. A씨는 자신의 소득을 증빙할 아무 자료도 내지 못했고, 택시기사라는 남편도 객관적인 자료를 내지 않았다. 대법원은 “경제 사정에 비춰 부담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액 보험료를 내야 하는 과다한 보험계약으로 보인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A씨가 보험에 가입할 때 보험사에 거짓말을 한 점도 짚었다. A씨는 한화손해보험 가입 전 이미 4건의 입원 일당 보험이 있었고, 보험 가입 당일에도 ‘설사 및 위장염’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그런데도 보험사에는 “동종 보험에 가입한 적 없다” “최근 3개월 이내 입원한 적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렇게 가입한 보험으로 A씨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494일간 식도염, 위궤양 등의 병으로 230여일을 입원한 다음 5억여원을 타냈다.

대법원은 A씨의 수상한 행적도 꼼꼼히 따졌다. A씨는 한화손해보험에 보험금을 청구하기 전까지 1855일중 940일동안 또 입원치료를 받았는데, 이 기간에 대해서는 다른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고는 그 다음날부터 입원은 따로 한화손보에 보험금을 청구한 것이었다. 대법원은 “입원 병명이나 치료내역을 통상의 경우와 비춰볼때 입원 횟수와 기간이 상당히 길고 잦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A씨의 보험 가입은 순수하게 생명이나 신체 등에 대한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보험금을 부정하게 취득할 목적이 있어 보인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사건을 창원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1일 밝혔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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