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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계 유재석' 양동근, 코트 떠난다

중앙일보

입력

현대모비스에서만 17년간 뛴 양동근이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연합뉴스]

현대모비스에서만 17년간 뛴 양동근이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연합뉴스]

‘농구계의 유재석’ 양동근(39·울산 현대모비스)이 코트를 떠난다.

챔프전 6회 우승 이끈 모비스 엔진 #구단 리빌딩+후배 위해 결단 내려 #국민 MC 유재석처럼 겸손, 혼신 다해 #방에는 고시생처럼 메모 덕지덕지

프로농구 현대모비스는 31일 “‘현대모비스 심장’ 양동근이 2019-20시즌을 끝으로 17년간 선수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리그 종료 후 구단, 유재학 감독과 회의를 거쳐 은퇴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2019-20 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이 된 양동근은 현역과 은퇴 기로에서 섰다. 양동근은 올 시즌 40경기에 출전해 평균 28분24초를 뛰며 10점, 4.6어시스트를 기록, 불혹의 나이에도 변함없는 기량을 선보였다. 하지만 리빌딩을 추구하는 구단의 사정을 이해하고, 후배들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은퇴를 택했다.

2006-2007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는 유재학 감독과 양동근. [중앙포토]

2006-2007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는 유재학 감독과 양동근. [중앙포토]

양동근은 2004년 모비스에 입단한 뒤 통산 6차례 플레이오프 우승을 이끌었다. 우리나라에서 챔피언 반지 6개를 소유한 유일한 선수다.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4회, 챔피언결정전 MVP 3회 수상에 빛난다. 홈구장 울산 동천체육관에는 늘 ‘골목길’이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양동근의 테마송인 동명이인 가수 양동근의 노래다.

성실한 자세 덕분에 양동근은 ‘국민 MC’ 유재석(48)에 비교돼 ‘농구계의 유재석’으로 불렸다. 오랜 무명 생활을 거쳐 최고 자리에 올랐지만 늘 겸손하고, 늘 혼신을 다했다.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은 “동근이는 김승현이나 이상민 같은 재능을 갖지는 못했다”며 “그러나 ‘최고가 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았고, 결국 대한민국 최고 야전사령관이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키 1m81㎝인 양동근은 용산고 시절엔 1m68㎝에 불과했다. 1년 후배 이정석이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었고, 양동근은 벤치에서 박수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양동근은 한양대를 거쳐 2004년 신인드래프트 1순위로 모비스 유니폼을 입었다. 슈팅가드로 입단해서 포인트 가드로 전향하며 많은 고생을 했다. 2004년 모비스에서 룸메이트였던 위성우 여자농구 우리은행 감독은 “당시만해도 동근이는 유 감독님의 꾸지람을 많이 들었다. 동근이는 감독님의 지적사항을 메모한 뒤 방 벽면에 덕지덕지 붙여 놓았다. 10년 후 동근이가 훈련을 하는 걸 지켜봤는데 그때 교정한 자세 그대로였다”고 회상했다.

현대모비스 심장이자 엔진으로 불린 양동근. [연합뉴스]

현대모비스 심장이자 엔진으로 불린 양동근. [연합뉴스]

이도현 전 현대모비스 사무국장(현 대한양궁협회 기획실장)은 “한때 양동근의 방은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의 방 같았다”고 했다. 유 감독이 지시한 패턴 메모와 함께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명언인 ‘Stay hungry, Stay foolish’(늘 갈망하고 늘 우직하게)를 쓴 메모도 붙여놓았다. 양동근은 대표팀 훈련 때 포인트 가드 경쟁자 김태술과 대결에서 고전한 뒤 외박도 포기하고 밤새 개인훈련을 하기도 했다.

양동근은 고참이 되어서도 훈련량을 줄이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일이 일절 없었다. 프로농구 조기종료 발표 직전까지도 흠뻑 젖은 연습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항상 내일 은퇴한다”는 마음으로 뛰었다.

2018-2019 프로농구 우승을 차지한 현대모비스의 양동근이 골대 그물을 자른 후 자녀들과 함께 기념 촬영하고 있다.[연합뉴스]

2018-2019 프로농구 우승을 차지한 현대모비스의 양동근이 골대 그물을 자른 후 자녀들과 함께 기념 촬영하고 있다.[연합뉴스]

양동근은 원래 올 시즌 최종 6라운드 때 모비스 동료였던 고 크리스 윌리엄스 등번호 33번을 달고 뛰려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시즌이 조기종료됐다.

현대모비스는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양동근의 미국 지도자 연수를 지원할 계획이다. 코로나19 심각성을 고려해 은퇴식은 2020-21시즌 홈 개막전으로 미뤘다. 양동근을 상징하는 번호 6번 영구결번식도 함께 진행된다. 그에 앞서 1일 오후 4시 KBL에서 공식 은퇴 기자회견을 연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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