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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꿔주기' 원조는 20년 전 '민주당→자민련'…'연어' 송석찬도 화제

중앙일보

입력

송영진·송석찬·배기선의원등 자민련 입당파3인이 입당식을 마친뒤 김종필명예총재·이한동총재·김종호대행등과 만세를 부르고 있다. [중앙포토]

송영진·송석찬·배기선의원등 자민련 입당파3인이 입당식을 마친뒤 김종필명예총재·이한동총재·김종호대행등과 만세를 부르고 있다. [중앙포토]

모(母)정당이 소속 의원들을 비례위성정당으로 보내는 ‘의원 꿔주기’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낳은 정치권의 진풍경이다. 그러나 원조는 아니다.

20년 전인 2000년 12월에서 이듬해 1월 사이에도 새천년민주당 의원 4명(송석찬·배기선·송영진·장재식)이 자민련으로 ‘임시 이적’한 전례가 있었다. 자민련이 원내 20석을 채워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민주당이 저지른 일이다. 민주당(김대중)ㆍ자민련(김종필)의 ‘DJP공조’를 복원해 보수 야당인 한나라당과 맞선다는 정치적 구상이 배경에 깔렸다. 실제 이후 자민련 소속 이한동 의원이 국무총리가 돼 두 세력의 연정이 성사됐다.

이적은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2000년 12월 새천년민주당 의원 3명(송석찬·배기선·송영진)이 먼저 자민련에 새 둥지를 텄다. 장재식 의원은 2001년 1월 뒤늦게 이적했다. 원래 자민련이 3인 이적에 반발해 교섭단체 등록 날인을 거부하던 강창희 의원을 제명해 의원 수가 19명으로 줄어들자 민주당은 장 의원을 추가로 보내 20석의원을 채웠다.

정략적 꿔주기란 정황은 당시에도 곳곳에 있었다. 송석찬 의원은 민주당 탈당 성명서에서 “연어처럼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는 영광의 날을 지켜봐달라”며 복귀 가능성을 암시했다. 이 발언으로 당시 송 의원을 “연어”라 부르는 의원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적을 주도한 배기선 의원이 동교동 직계란 점도 DJP공조 복원을 위한 이적이란 설에 힘을 보탰다. 2000년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 남긴 “조반역리(造反逆理ㆍ기존질서를 바꾸는 것이 이치에 어긋난다)”라는 세밑 휘호는 'DJP공조라는 숙명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 2001년 1월 청와대에서 부부동반 만찬을 갖고 DJP공조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서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가 2001년 1월 청와대에서 부부동반 만찬을 갖고 DJP공조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서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자민련의 교섭단체 구성으로 ‘양당 체제’에서 ‘3당 체제’로 전환돼 2 대 1로 싸우게 된 한나라당은 반발했다. 정국이 얼어붙었다.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는 신년사 곳곳에 적혀 있던 ‘여야의 상생협력’이란 문구를 지워버렸다. 대신 “자민련이 민주당 곁방살이나 하려 한다”며 공세에 나섰다.

그러나 DJP공조가 1년도 못가 무너지며 ‘의원 꿔주기’ 역시 막을 내렸다. 당시 제1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개헌 저지선을 차지하고 버티며 자민련의 숙원이었던 내각제 개헌이 무산된 데다, 대북정책에 대한 민주당과 자민련의 시각차가 관계 파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자민련이 결국 2001년 9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안에 가담하며 DJP공조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꿔주기’로 이적했던 의원들도 민주당으로 ‘연어’처럼 복귀했다.

2020년 4ㆍ15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의원꿔주기’ 풍경이 20년 전과 다른 점도 있다. 20년 전엔 필요 최소한에 그쳤다면 이번엔 여·야가 불출마·낙천 의원들을 최대한 많이 떠서 넘기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특히 비례대표 의원들의 ‘제명 후 이적’ 사례가 많다보니, 최근엔 의원총회가 예고될 때면 각 당 안팎에선 ‘오늘은 누가 제명되나’가 관심사로 떠오를 정도다.

미래통합당은 총선 후보등록(26~27일)이 시작된 26일에도 7명의 비례대표 의원을 제명했다. 미래한국당 이적을 위해서다. 이로써 미래한국당 현역은 17명이 됐다. 민주당에서도 윤일규 의원이 26일 늦은밤 탈당계를 제출, 더불어시민당 소속 현역 의원은 8명이 됐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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