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여파가 있던 2015년 7~9월에 약 650만 가구가 전기요금 할인 혜택을 봤다. 메르스 확산으로 서민들의 지갑 사정이 나빠진 상황에서 폭염까지 겹치자 정부는 여름철 전기 요금을 3개월간 일시적으로 내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는 메르스보다 더 세다고 하는데, 올해는 어떨까? 문재인 대통령은 “전기료 등 공과금 유예‧면제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런데 2015년 처럼 전기요금을 덜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유가 있다.
넉넉했던 한전, 지금은 ‘적자 늪’
전기를 팔아 먹고사는 한국전력의 사정이 좋지 않다. 메르스 당시 한전의 영업이익(연결기준)은 11조3467억원이었다. 전기 요금을 깎아줘서 수익이 덜 났는데도 그 정도였다. 이듬해인 2016년 영업이익은 12조16억원으로 더 늘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한전은 지난해 한전은 1조3566억원 적자를 냈다. 2018년에 이어 2년 연속 적자다. 지금 추세로 가면 올해도 적자를 낼 소지가 다분하다. 경기 부진으로 전기가 잘 안 팔려서다. 지난 1월 산업용 전력 판매량은 2009년 1월 이후 1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여름철 전기료는 이미 깎아줘
게다가 정부는 가 2018년부터 전기요금에 대해 ‘여름철 상시 할인’을 적용하고 있다. 7, 8월에는 전기료율을 다른 달보다 덜 매긴다. 여름마다 계속된 ‘전기요금 폭탄’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2018년 할인액은 3587억원, 2019년은 할인액은 2800억원 수준이다. 약 1600만 가구가 평균 월 1만원 정도의 전기요금을 아꼈다. 한전 입장에선 이익이 줄어든 것이다.
공기업인데 어때?
그간 정부가 전기요금 할인 정책을 시행할 때마다 부담은 한전이 떠안았다. 공기업이라 가능한 일. 무작정 그럴 수 없다. 한전이 국내뿐 아니라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된 기업이어서다. 주주 이익에 반하는 요금 인하 정책을 이어갈 수는 없다. 실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해 9월 한전에 '2018년 적자를 낸 원인과 한국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 전망을 보고하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전이 추가로 요금 할인 정책을 내놓긴 어렵다. ‘배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이게 중요한 이유
위의 이유로 당장 전기요금 할인을 기대하긴 어렵다. 오히려 한전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전기요금 인상을 전제로 한 개편안을 준비 중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일단락되면 전기요금 인상 여부는 다시 수면위로 불거질 전망이다. 가계 입장에선 부담이 늘어나게 되는 일이다.
하남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