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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하고 아련한 손택수표 서정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79호 21면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손택수 지음
창비

입소문을 접하고 시집을 펼치게 됐다. 한 시인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고서다. 그랬더니, 역시 손택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쉰을 막 지난 시인이 6년 만에 펴낸 새 시집 안의 시편들은 고르게 정갈하고 가끔씩 아련하고 불쑥 아득해진다. “이상하게 나는 여기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존재하지 않아도 좋은 무엇이 된 것만 같다”. 맨 앞에 실린 ‘정지’라는 작품의 이런 문장들처럼 말이다. 읽는 이를 어딘가로 데려간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긴 하지만.

이런 시집은 읽는 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시인이 펼쳐 보이는 대로 그저 힘 빼고 따라가면 된다. 그렇게 발을 들이면 그 안에 적선 동전만 한 한 푼 햇빛을 받아들이던 가난한 지층방 풍경이 있고(‘찬란한 착난’), 상처처럼 도라지 껍질을 벗기던 노인의 추억(‘망원동’), 백석·서정주 같은 시인들도 어른거린다.

‘물받이통을 비우며’ 같은 시편은 마치 활동사진을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장면이 그려진다.

사랑시에 눈여겨 시집을 읽을 수도 있겠다. 시집 제목을 따온 작품인 ‘붉은빛’도 이 계열 작품이지만, ‘명옥헌’ 같은 작품 앞에서는 마음이 아리다.

“꽃이 지니 물이 운다/ 끓는 진흙 바닥/ 덧나는 딱지, / 상처가 정처였을까/ 입으로 피고름 뽑듯/ 파고드는 꽃”. 이렇게 시작하는 시는 아마도 백일홍의 낙화를 그린 작품이다. 그런데 꽃이 마치 비늘 같으니 결국 물고기의 상처. 이를 뜯어먹는 물고기는 제 상처를 먹는 셈이 된다. 그런데, 이 상처는 물고기만의 것인가.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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