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피해여성을 메뉴라던 조주빈, 얼굴 감추려해 화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한 사이트에 텔레그램 방 링크가 있길래 무심코 눌렀는데 상상도 못 했던 끔찍한 영상들이 눈앞에 나타났어요. 그 자리에서 노트북을 닫았지만, 너무 놀라 몸이 떨리더군요.”

n번방 첫 폭로 ‘추적단 불꽃’ 2인 #공유방 100여개 참여자 수만명 #어느날 목록 봤더니 지인도 있어 #요즘 하루에 1000명 이상씩 탈퇴 #피해자 비난, n번방 가해자와 같아

‘n번방’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은 26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끔찍했던 n번방 발견 순간을 회고했다. ‘추적단 불꽃’은 언론인을 지망하는 2명의 대학생으로 이뤄진 취재단 이름이다. 이들은 탐사보도 공모전에 나가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100개가 넘는 텔레그램 방에 잠입했다가 n번방의 실체를 알게 됐다.

두 대학생은 본격적인 n번방 취재 시작과 함께 경찰에 실태를 신고해 결국 ‘박사방’ 운영자인 조주빈(25)씨의 구속을 끌어냈다. 이들은 보복 우려 등을 고려해 익명으로 활동 중이다. 다음은 이들과의 문답.

n번방을 폭로한 대학생 취재단 '추적단 불꽃'이 25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유진 인턴기자

n번방을 폭로한 대학생 취재단 '추적단 불꽃'이 25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유진 인턴기자

관련기사

조씨가 경찰 포토라인에 섰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조씨는 박사방에서 피해 여성을 ‘오늘의 메뉴’라고 지칭하면서 전시했다. 그랬던 그가 체포 직후 얼굴을 감추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화가 많이 났다. 결국 조씨가 얼굴을 드러낸 걸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지금 n번방 분위기는 어떤가.
“하루에 1000명 이상씩 탈퇴하고 있다. 와해되는 분위기다. 물론 ‘왜 나가냐’ ‘쟤(탈퇴자)들은 진짜가 아니네’라고 조롱하는 등 여전히 배짱을 부리는 회원들도 있다.”
n번방 규모가 얼마나 되나. 회원들은 어떤 사람들인 것 같나.
“성 착취물 공유방은 우리가 확인한 것만 100여개에 이르고 참여자는 수만명에 달한다. 대부분 성 착취물 공유를 통해 피해 여성을 욕하고 희롱하면서 사회에서 채우지 못한 권력욕을 대신 채우려 하는 ‘루저’(패배자)라고 생각한다.”
회원 중 아는 사람은 없었나.
“텔레그램에 한 지인이 가입했다는 ‘알림’이 떴을 때만 해도 설마 했는데 n번방 참가자 목록을 봤더니 그 사람이 있더라. n번방 가해자들의 위협과 신상털이 표적이 될 위험이 있어서 알리지는 않았다. ‘추적단 불꽃’이 익명으로 활동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n번방은 어떻게 운영됐나.
“성 착취물이 올라오는 n번방에는 영상 수위에 따라 20만원에서 150만원까지 내야 들어갈 수 있고 일체 대화가 없다. 그 대신 파생 방인 ‘고담방’에서 실시간으로 성 착취물에 대한 그들만의 ‘품평회’가 열린다. ‘1번방 저 애가 내 스타일인데, 같이 성폭행하러 가자’고 하는 식이다.”
폭로 과정에서 힘든 건 없었나.
“공론화를 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다. 피해자들에게 2차,3차 피해가 발생할까 봐서다. 시민단체에도 자문한 끝에 결국 공론화돼야 수사가 진행될 거라고 결론 내렸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기억은.
“성 착취물 자체도 끔찍했지만, 영상을 대하는 가해자들의 태도에 경악했다. 칼에 찔려 피 흘리는 여자가 쓰러져 있었는데도 ‘얼굴이 예뻐서 딱 내 스타일이네’ ‘흥분된다’ 등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더라. 아동 성 착취물이 올라온 날엔 잠도 못 잤다. 흉악한 영상들이 너무 많았다.”
피해 여성들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식의 댓글도 달리는데.
“(잠시 말을 끊고 숨을 고른 뒤)그런 댓글과 똑같은 말이 n번방에도 올라온다. 피해자에게 ‘당할 만했네’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n번방의 가해자들과 다를 게 없다. ‘도덕성이 부족했다’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건 멈춰달라. 이 세상에 피해자가 당해도 싼 범죄는 없지 않나.”

최연수·남궁민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