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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학교가 그렇죠, 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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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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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안 해도 월급 받는 그룹.” 조희연 교육감의 말 한마디가 평지풍파를 불렀다. 개학 연기로 야기된 “일 안 하면 월급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교직원 생계 문제를 거론하다 교사를 놀면서도 돈 받는 사람으로 분류했다. 조 교육감은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 대한 대책을 강조하려다 문제가 있는 표현을 사용했다.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사과했지만 교사들은 “물러나라”고 외친다.

교육감 “일 안 해도 월급” 발언에 #교사는 발끈, 학부모는 고개 끄떡 #교육 위기에 책임 다했나 자문해야

그런데 주변의 초·중·고교생 학부모들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다”며 오히려 교육감 편을 든다. “속마음이 은연중 드러난 것 아니냐”고도 한다. 방송사 앵커가 페렴으로 숨진 17세 학생의 죽음을 놓고 “다행히 (코로나19) 음성”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본의가 아니라며 주워담은 말이 기실 본의에 가까울 것이라고 속단하는 이도 있다.

교육감 발언을 진심으로 해석하려는 학부모들의 마음은 뭘까. 그들은 이런 얘기를 했다. “학원에선 재빨리 온라인 화상 수업을 하는데 학교 선생님은 나나 아이에게 전화 한 통, e메일 한 번 하지 않는다. 이러니 학교가 학원의 상대가 되겠나.” “학교 선생님에게서 월 초에 인사 문자 한 번 왔다. 그게 전부다. 교과서도 아직 못 받았다. 공부거리, 하다못해 읽을거리라도 제시해 주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학교가 아이들을 방치하다시피 하니 불안해도 학원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뼈 때리는 한마디도 들었다. “학교가 그렇죠, 뭐.”

초3, 중1, 중3의 세 아이를 둔 한 맞벌이 여성은 “세 아이가 집에서 아이스크림홈런(전용 태블릿PC를 이용한 원격 사교육)으로 공부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며칠 전에야 EBS 강의를 활용하라는 연락을 해 왔다. 학교에 무엇을 기대할까 싶어 남편에게 진지하게 아이들을 ‘홈스쿨링’으로 키우면 어떻겠냐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교사들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교육부나 교육청의 명확한 지침이 없다, 개학이 연기된 것이라 지금은 방학 중이다, 새 학년이 시작되기 전이라 아이들 얼굴도 모른다, e메일이나 카카오톡으로 복습 자료나 과제를 제시할 경우 이를 받기 어려운 학생이 있다 등. 드물지만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아이들과 대화하고, 퀴즈를 내고, 과제를 제시하는 교사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 교사는 시도조차 안 한다. “써 본 적도, 쓰는 법을 배운 적도 없다”는 이유로.

학창 시절에 ‘소년이로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을 급훈으로 써 붙인 학급들이 있었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 교장 선생님 훈화의 단골 구절이었다. 한시도, 하루도 허투루 쓰지 말고 공부하라는 말을 선생님들한테 귀에 굳은살이 생기도록 들었다. 개학 연기로 학생들이 공부에 손을 놓을까 봐 그 누구보다 안타까워해야 할 사람들이 교사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정부는 ‘공교육 정상화’를 외치며 자사고·특목고 폐지에 나섰다. 대다수 교육감도 같은 방향에 섰다. 자사고·특목고가 사교육을 부채질하고, 일반고를 황폐화한다고 말한다. 교사들은 교원 평가, 지역별·학교별로 학생들의 학력 수준을 알아보는 진단 평가에 극렬히 반대한다. 인기 학교를 없애고 있는 격차를 드러내지 않으면, 교사들이 가만히 있어도 공교육이 정상화될까. 학원과의 경쟁에서 학교가 이길 수 있을까. 지금 이 시각에도 “공부는 학교가 아니라 학원에서”가 상식으로 굳어간다.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 다시 확산하면 다음 달 6일 개학을 장담 못 한다. 멈춘다 하더라도 올가을에 다시 대규모 감염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상황에서의 교육 방법에 대한 교육 당국과 교사의 치열한 준비가 필요하다. 잘 모르겠으면 사교육 업계에서 쓰는 기법이라도 유심히 보라. 조기성(계성초 교사) 스마트교육학회장은 “화상 수업 방법은 30분이면 배울 수 있고, 5일 정도면 다양한 기법도 익힐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