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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딸과 레고하며 놀다 브릭아티스트 된 건축설계사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장현기의 헬로우! 브릭(7)

오늘은 한국 두 번째 레고 공인 작가(LCP)인 이재원 작가를 소개합니다. 이재원 작가는 건축 설계사이자, 브릭 아티스트입니다. 사촌 형의 레고를 몰래 가지고 놀던 저와는 다르게 무역업을 한 아버지 덕분에 아주 어린 시절부터 레고를 접했다고 하니 요즘 식으로 농담하자면 그야말로 ‘레고 수저’였던 것 같습니다.

이 작가의 아버지는 키덜트 1세대라고 볼 수 있을 만큼 그 당시에 한국에서는 흔치 않았던 레고 같은 장난감이나 영화, 애니메이션, 서적 등에 관심이 많았고 또 그걸 아이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출장에 다녀올 때마다 레고를 하나씩 사다 주고는 처음 한두 번 매뉴얼대로 만들어 본 뒤에는 커다란 레고 바구니에 부품을 모두 섞어서 스스로 창작품을 만들어 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리고 다 만들어진 작품을 가족에게 소개하는 일종의 작품 프레젠테이션도 시켰죠. 어린 시절부터 창의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으니 그가 브릭 아티스트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 작가의 아버지는 지금도 작품을 가장 먼저 보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의견을 주는 든든한 조언자입니다.

이재원 작가와 그의 작품 오이, 현재 브릭캠퍼스서울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 브릭아티스트 이재원]

이재원 작가와 그의 작품 오이, 현재 브릭캠퍼스서울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 브릭아티스트 이재원]

레고를 통해 건축 설계사의 꿈을 꾸다

창의력을 가장 중요시하는 환경에서 자란 그에게도 학창시절은 피해 갈 수 없는 코스였죠. 수많은 레고 박스들은 보자기에 싸여 창고행에 처해졌고 공부를 하다가 가끔 머리를 식힐 때 몰래 꺼내서 가지고 놀며 수험생활을 보냈습니다. 미술에도 관심이 많았던 이 작가는 학창시절 자연스럽게 미술을 전공해서 레고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디자이너가 되려면 공학적인 요소가 중요하다는 아버지의 조언을 듣고 건축과를 택했는데, 레고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건축 설계의 과정이 놀랍도록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콘셉트를 정하고 그에 맞는 디자인을 하고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과정을 통해 그는 건축에도 레고만큼의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결국 국내 굴지의 대형 건축사 사무소에서 일하는 건축 설계사가 되었습니다.

딸을 위해 시작했던 브릭 아트

본격적인 브릭 아트를 시작하게 된 것은 결혼 후 딸이 생기고 나서부터였습니다. 딸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며 놀아주다가 문득 동화의 한 장면을 레고로 재현하여 직접 플레이 세트를 만들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때 처음 제작한 작품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픽사 애니메이션 ‘업’이었습니다. 그리고 2014년 제1회 브릭코리아컨벤션에 작품을 출품하면서 본격적으로 브릭 아티스트로서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작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딸의 레고를 모두 한곳에 섞어 놓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보도록 했습니다. 처음에는 매뉴얼대로 만든 작품을 부수고 싶지 않다며 울던 딸도 지금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창작품을 만드는 꼬마 브릭 아티스트라고 합니다. 3~4년째 해마다 딸과 함께 브릭코리아컨벤션에 작품을 출품하고 있는데요, 내년에는 또 어떤 작품을 낼까 벌써부터 딸과 함께 고민 중이라고 하네요.

이재원 작가의 작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재원 작가의 작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LCP에 도전하다

이 작가는 건축설계사로 일하면서도 레고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6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레고사의 디자인 워크숍에 참여하여 최종 40명의 면접 후보에 들었지만 결국 탈락의 고배를 마셨죠. 그는 레고 디자이너가 되지 못한 아쉬움을 LCP에 도전하는 것으로 달랬습니다. 한국은 인구 수에 대비하여 비교적으로 큰 레고 시장을 형성하고 있고, 그만큼 레고사에서는 서로 다른 콘셉트를 가진 레고 공인 작가들과의 다양한 협업을 원했습니다.

전 세계에 단 스무 명만이 존재하는 LCP 중 두 명이 한국 작가라는 점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지난 시간에 소개한 김성완 작가가 대형 디오라마 작품 연출에 특화되어 있다면, 이 작가는 아트 피겨 작품 표현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이 작가의 작품은 세심한 관찰과 연구를 통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어떤 레고 부품을 사용해 어떻게 구현해낼지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레고 부품으로 독특한 표현을 창조해 레고 부품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 그의 가장 큰 특기이죠. 앞으로도 레고 공인 창작가로서 어떤 작품을 만들어 낼지 기대가 됩니다. 레고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그의 꿈은 아직 현재진행형입니다.

LCP의 작업 방식은

이 작가는 일단 만들고자 하는 작품의 콘셉트를 정하면 많은 그림이나 조소 작품을 연구하고, 남들과 다른 작품을 만들기 위해 기존에 창작된 레고 작품들도 많이 찾아보곤 합니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먼저 스케치를 하고 나서 그것이 레고로 구현이 가능할지 동료 건축설계사들의 조언을 구하기도 하죠. 그는 브릭 아트는 특정 대상을 이미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색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은 이미지의 대표적인 색을 통해 그 작품에 공감하기 때문이죠.

여러 가지 색을 대입하여 레고로 먼저 목업(디자인 제품의 모형을 만드는 작업)을 해본 뒤에 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그래픽 작업을 합니다. 그래픽 작업이 완료되면 본격적으로 부품을 찾아서 작업을 시작합니다. 작업실 테이블에 부품을 모두 늘어놓고 이 색깔의 부품도 대보고, 저 색깔의 부품도 대보며 완벽한 샘플 작품을 만든 뒤에서야 본격적으로 본 작품 제작에 들어갑니다.

이 작가는 레고는 이미 완벽히 구축된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는 작업이기 때문에 새로운 결합방식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큰 즐거움이기도 하죠. 레고의 시스템을 그대로 사용하되 작품 속에서 부품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 그의 목표라고 합니다.

작품 〈삼국지 영웅들〉.

작품 〈삼국지 영웅들〉.

〈삼국지 영웅들〉 중 '관우'(좌), 〈후크선장〉(우).

〈삼국지 영웅들〉 중 '관우'(좌), 〈후크선장〉(우).

이 작가는 가장 공을 들인 작품으로 ‘삼국지 영웅들’을 꼽았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삼국지를 읽었던 추억도 많이 담겨있는데다가, 각 영웅들이 탔던 말의 여러 가지 아름다운 동작을 구현하기 위해 그 형태를 스케치하고 구상하는 데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작품입니다. ‘후크 선장’은 피터팬 동화책을 읽은 딸을 위해 램프에 갇힌 팅커벨을 만들어주었다가 업그레이드된 작품이라고 합니다. 레고 테크닉의 모터를 사용하여 턱관절과 눈 깜빡임이 가능한 구동 작품으로 만들었지만 레고 모터의 한계 때문에 현재는 정지 상태로 전시 중입니다.

이 작가의 작품 대부분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 그리고 현재 딸과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추억 속에서 꺼내 온 소중한 순간들입니다. 그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다양한 레고 부품을 사용하여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현재는 ‘서유기’를 주제로 한 작품에 매진 중입니다. 언젠가는 꼭 이 작가가 디자인해서 출품한 레고를 만나길 기대합니다. 끝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두를 응원하기 위해 이재원 작가가 만든 코로나 캠페인 작품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이재원 작가의 코로나 캠페인 작품.

이재원 작가의 코로나 캠페인 작품.

(주)브릭캠퍼스 대표이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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