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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발 입국 급증에 전원검사 포기 “무증상자는 자가격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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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해외유입 차단을 강화했다. 24일 영국 런던발 여객기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인천국제공항에서 경찰관의 안내를 받고 있다. [뉴스1]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해외유입 차단을 강화했다. 24일 영국 런던발 여객기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인천국제공항에서 경찰관의 안내를 받고 있다. [뉴스1]

유럽과 미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중에도 입국 금지 없이 역유입을 막겠다는 정부 구상이 시작부터 한계를 드러냈다. 유럽발 입국자 전원에 대한 즉시 격리 및 검사 방침을 바꾸면서다.

정부 “3일 이내 지역 보건소서 검사” #매일 1000명씩 입국 감당 못 해 #확진 역유입 늘어도 국경 개방 고수 #한국 코로나19 피난처 될까 우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24일 “유럽에서 들어오는 내국인 무증상자는 자가격리를 하면서 관할 보건소에서 입국 후 3일 이내에 검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22일부터 유럽발 입국자 전원을 별도 시설로 보내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의심 증상을 보이면 공항 검역소 격리관찰시설에서 진단검사를 받고, 무증상자는 지정 임시생활시설로 이동해 대기한 뒤 검사를 받도록 했다. 하지만 시행 불과 이틀 만에 원칙을 바꾼 것이다.

여기엔 유럽발 입국자 중 유증상자가 10% 안팎으로 높게 나오며 이들을 집중관리하는 방향으로 검역체계를 조정해야 한다는 보건 당국의 판단이 깔렸다. 특히 유럽에서 매일 1000여 명씩 몰려드는데 22일 기준 무증상자 임시생활시설 8개의 수용 가능 인원은 1175명이다. 유증상자도 많은데 무증상자까지 모두 수용하기엔 역부족이다.

23일 8941명 입국, 외국인이 1884명

해외에서 입국한 내국인이 격리통지서와 검역 확인증을 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해외에서 입국한 내국인이 격리통지서와 검역 확인증을 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를 두고 애초에 정부의 상황 예측이 안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역유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유럽발 입국자 규모를 정부가 자부하는 지금의 ‘민주적·개방적 대응’만으론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이 드러난 셈이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의 상황을 볼 때 코로나19 역유입은 이미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단계로 볼 수 있다. 미국 내 확진자는 24일 4만6000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600명에 육박했다(이하 존스홉킨스대 집계). 이탈리아에서는 확진자가 6만 명 넘게 나온 가운데 6000명 이상 목숨을 잃었다.

정부는 여전히 국경 개방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 우한 말고는 정부가 입국 금지 조치를 한 곳이 없다. 한국이 코로나19의 피난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유럽과 미국발 여행객에 대해 입국 제한을 하지 않는 근거 중 하나로 입국자 대부분이 한국 국적자라는 점을 들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의 귀국을 희망하는 한국인은 약 650명으로, 우선 오는 31일과 다음 달 1일 밀라노에서 먼저 1차 전세기를 띄울 계획이다. 이탈리아 외에 이란, 페루, 에콰도르, 필리핀 등에서도 다수의 교민과 한국인들이 본국 귀국을 희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국가는 바이러스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는 기조 아래 내국인 입국까지 제한하는 ‘셀프 봉쇄’를 하고 있지만, 자국민 입국은 막지 않는 게 통상적이긴 하다. 하지만 한국의 문은 한국 국적자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똑같이 열려 있다는 게 문제다. 특히 한국은 외국인 치료비도 국비로 지원한다. 외교부에 따르면 23일 기준 8941명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 중 한국인이 7057명, 외국인이 1884명이라고 한다.

정부는 “입국을 막는 투박한 정책보다는 민주적이고 자유주의에 입각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해외 유입 방지 정책을 펴겠다”(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 23일 브리핑)는 입장에서 변함이 없다. 외교부 당국자는 24일 “한국 정부는 일관되게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에 따라 이동 제한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무조건 국경을 차단하는 것은 환자에게 수술칼을 바로 대는 것과 같은 것이며 암을 치료할 때 표적 치료를 하는 식의 방법을 쓰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66개국은 모든 외국인 입국 차단

주요국 미국발 여행객 입국제한 현황

주요국 미국발 여행객 입국제한 현황

하지만 이런 접근은 “굳이 한국이 암 병동이 돼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반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20일 기준 세계 66개국이 WHO 권고를 무시한 채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차단하고 있다.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중국조차도 전방위적 입국 제한 조치를 우선적으로 취하면서 내부의 제한을 풀고 있다. 중국은 후베이(湖北)성에 대한 봉쇄는 25일 0시부터 풀었고, 우한(武漢) 봉쇄는 4월 8일부터 풀기로 했다.

외교부는 23일 뒤늦게 전 세계를 대상으로 여행경보 2~3단계에 해당하는 여행 특별주의보를 내렸는데, 나갔다 들어오는 것만 막아서는 부분적 예방 효과만 있을 뿐이다. 또 들어오는 문은 열어두면서 나가는 문은 닫는 것이라 정부가 줄곧 주장한 국경 개방 원칙에도 어긋난다.

유럽발 입국자에 대해선 전수검사라도 하는데, 미국발 여행객은 특별입국절차에 따라 발열 체크와 건강상태질문서 제출, 자가진단 애플리케이션(앱) 설치를 안내받고 입국할 수 있게 한 것도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미국은 중요한 동맹인 데다 미국이 한국발 여행객을 막지 않은 만큼 한국도 미국에 입국 금지를 가하기 곤란하다는 상호주의 논리도 나오지만, 또 다른 미국의 맹방인 일본과 호주는 그와 상관없이 미국발 여행객을 제한했다.

결국 정부가 사태 초기에 중국발 여행객의 입국을 막지 않으면서 내세운 국경 개방의 원칙이 이제 와 발목을 잡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지금 해당 원칙을 번복하면 당초 중국에 대해 입국 금지를 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다고 시인하는 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태 초기에 중국발 여행객의 입국을 금지한 대만은 확진자 수가 200여 명이고, 홍콩도 400명을 밑돈다.

황수연·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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