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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무관중 음악회도 불안…대세는 ‘홈 플레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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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필하모닉 단원들이 지난 20일 유튜브에 업로드한 '집에서 베토벤 9번 교향곡 연주하기' 영상들. [유튜브 캡처]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필하모닉 단원들이 지난 20일 유튜브에 업로드한 '집에서 베토벤 9번 교향곡 연주하기' 영상들. [유튜브 캡처]

화면 속에서 더블베이스 연주자가 선율을 연주하면 비올라, 바순이 합세한다. 화면은 계속해서 분할되고 오보에, 플루트, 바이올린까지 더해지며 모든 오케스트라가 베토벤 마지막 교향곡 ‘합창’을 연주한다.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필하모닉 단원들이 이달 20일 유튜브에 업로드한 영상이다.

로테르담필 단원 각자 집에서 연주 #유튜브 영상 전 세계 80만회 조회 #독일선 SNS로 베토벤 ‘합창’ 협연 #국내서도 ‘다함께 씽씽씽’ 릴레이

이 영상은 조회 수 80만을 기록하며 화제가 되고 있다. 단원들은 한자리에 모이지 않고, 각자 집에서 연주하며 촬영했다. 이들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연주했고, 녹화 영상을 하나로 편집했다.

코로나19로 6월 1일까지 연주가 취소된 로테르담 필하모닉 단원들은 “베토벤 ‘합창’ 교향곡은 단합의 상징이고 인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함께하는 일”이라며 영상을 올렸다. 편집도 단원들이 직접 했다.

집에서 연주해 올리는 영상, ‘홈 플레잉’이 새로운 흐름으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공연 취소와 공연장 폐쇄가 이어지는 가운데 연주단체와 공연장들이 온라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나선 것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지난 12일 무관중으로 공연해 이를 라이브로 스트리밍하고, 나중에도 볼 수 있도록 서비스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빈 국립 오페라를 비롯한 예술 단체들도 무관중 공연 녹화, 또 과거의 영상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연주자들이 서로 만나지 않은 채 각자 집에서 연주·촬영하고 영상을 편집하고 있다. 무관중 음악회조차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스칼라 오페라 극장에선 스태프들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영국 버밍엄시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 미르가 그라치니테-틸라(34)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격리 공연’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캐나다의 토론토 심포니 단원들도 홈 플레잉에 동참했다. 각자 집에서 박자기를 같은 속도로 맞춰놓고 연주해 합성하는 방식으로 작곡가 코플랜드 ‘애팔래치아의 봄’을 연주해 22일 업로드했다. 또 독일의 뒤셀도르프 심포니 단원들은 22일 오후 6시를 ‘베토벤의 저녁’으로 정하고 모두 ‘합창’ 교향곡을 연주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독일 전역의 연주자뿐 아니라 아마추어까지 각자의 집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합창’의 선율을 연주하고 이를 SNS에 올렸다.

‘거리두기’의 대상에서 예외인 한 집안에 사는 가족끼리 거실 음악회도 연다. 시카고 심포니의 클라리넷 수석 스티픈 윌리엄슨은 호른 연주자인 아내, 트렘펫·호른·튜바를 연주하는 아들 셋과 함께 거쉬인의 ‘랩소디 인 블루’를 집 거실에서 촬영해 올렸다. 시카고 심포니가 이달 초 연주하기로 예정했다가 코로나19로 취소한 곡이었다.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매일 밤 최소한 인원의 단원만 모여 리허설 룸에서 ‘격리의 밤(Quarantine Soirees)’이라는 제목으로 연주 영상을 촬영해 올리고 있다.

파벨 슈포르츨의 홈 콘서트. [유튜브 캡처]

파벨 슈포르츨의 홈 콘서트. [유튜브 캡처]

홈 플레잉은 진화 중이다. 체코 바이올리니스트인 파벨 슈포르츨은 자신의 집 거실에서 연주한 음악회 영상을 유료화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긴장감이 커지고 있는데도 우리는 함께 모여 위안의 음악을 들을 수 없다. 집에서 연주한 영상으로 이렇게 힘든 시간에 잠시나마 기쁨을 주고자 한다”고 했다. 그의 ‘거실 음악회’는 지금까지 네 편이 올라와 있고 한 편에 150코루나(약 7300원)부터 1200코루나(약 5만8500원)까지 받고 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와 함께 온라인 유료 공연을 연다. 독일의 오발미디어가 ‘스테이지 앳 홈’이라는 제목으로 주최하며, 조성진과 괴르네는 베를린 텔덱스 스튜디오에서 슈베르트의 가곡을 연주해 생중계한다. 28일 오후 2시(현지시간), 한국 시간으론 오후 10시부터이며 7.90유로(약 1만700원)다.

조이스 디도나토의 홈 콘서트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조이스 디도나토의 홈 콘서트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요즘 열리는 온라인 음악회는 단지 취소됐던 공연의 빈자리를 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도에도 적극적이다. 무엇보다 메시지가 분명해졌다. 세계적 소프라노인 조이스 디도나토는 맨해튼 자신의 집에서 마스네 오페라 ‘베르테르’ 발췌 부분을 부른 영상을 올린 후 “공연이 취소돼 생계가 곤란한 연주자들을 위해 모금해달라”고 호소하며 후원할 수 있는 링크를 첨부했다.

한국에서도 ‘음악의 힘으로 모두가 하나 된다’는 메시지로 여는 도전이 시작됐다. 사단법인 영아티스트포럼앤페스티벌이 진행하는 ‘다함께 씽씽씽’은 각자가 집에서 노래하거나 춤추는 모든 영상을 올리며 이어지는 릴레이 챌린지다. 피아니스트 원재연, 첼리스트 문웅휘·이호찬 등 연주자들을 비롯해 애호가와 아마추어까지 다양한 영상을 올리며 ‘음악으로 힘내기’를 퍼뜨리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계속된 ‘발코니 노래’ 릴레이의 한국판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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