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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수사 때 없어진 檢 포토라인, 조주빈도 안 선다

중앙일보

입력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씨의 신상이 24일 공개됐다. 사진 서울지방경찰청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씨의 신상이 24일 공개됐다. 사진 서울지방경찰청

74명 이상의 여성을 협박해 성착취 동영상을 만들고 유포한 혐의를 받는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검찰청에서는 얼굴이 공개되지 않는다. 조국(55) 법무부 장관 일가 의혹 수사를 계기로 개정된 법무부 훈령 때문이다. 다만 이 훈령에 제약을 받지 않는 경찰은 오는 25일 오전 8시쯤 조주빈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할 때 포토라인에 세울 방침이다.

서울중앙지검은 24일 “형사 사건 공개금지 규정에 따라 촬영이나 중계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 뭐길래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1일부터 새 공보준칙(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모든 사건 관계자에 대한 공개 소환을 금지했다. 해당 규정 제28조 2항은 사건관계인의 수사과정에 대해 언론이나 제3자의 촬영·녹화·중계방송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같은 규정 제29조는 이를 위해 검찰청 내 포토라인 설치 등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들은 예외 조항이 없다. 범행 수법이 악질적이고 불량하다 할지라도 공개 소환의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애초 검찰은 법무부 훈령에 따라 차관급 이상의 공무원, 국회의원, 치안감급 이상 경찰공무원, 정당 대표 및 최고위원, 자산총액 1조원 이상의 기업 대표에 한해 실명을 공개해 왔다. 또 피의자의 소환 또는 조사 사실이 알려져 촬영 경쟁으로 인한 물리적 충돌이 예상되고 피의자가 동의할 경우 공개로 소환했다.

포토라인, 조국 수사 이후 폐지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소환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 입구에 포토라인이 설치돼 있었지만, 정 교수는 비공개 소환된 바 있다. 최정동 기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소환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 입구에 포토라인이 설치돼 있었지만, 정 교수는 비공개 소환된 바 있다. 최정동 기자

26년 동안 유지돼온 포토라인 관행은 조 전 장관 일가 수사 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특히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58) 동양대 교수의 소환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관계자, 여권 정치인 등이 검찰 수사 행태를 연달아 비판하면서 검찰은 당초 방침을 바꿔 ‘비공개 소환’ 방식으로 정 교수를 조사했다.

이후 윤석열 검찰총장은 검찰 개혁 방안의 일환으로 모든 피의자에 대한 조사를 비공개로 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도 관련 내용을 담은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다. 이를 두고 당시에도 “이명박‧박근혜 등 전직 대통령들도 섰던 포토라인이 조 전 장관 수사로 사라졌다”는 말이 나왔다.

이 때문에 이준석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은 최근 페이스북에 “포토라인 폐지로 수혜를 입은 사람이 누구 가족이고, 그게 수사기관 개혁의 일환이라고 포장했던 정권이 누군지 생각해보자”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 현직 검사는 “이번 조주빈 소환은 향후 검찰이 직접 ‘n번방’ 같은 국민적 공분을 사는 수사를 벌일 때 포토라인이 사라진 모습을 보는 가늠자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 포토라인은 가능하다

여성들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찍게 하고 이를 텔레그램에서 유포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조주빈 [연합뉴스]

여성들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찍게 하고 이를 텔레그램에서 유포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조주빈 [연합뉴스]

그러나 경찰에서는 조주빈의 얼굴이 공개된다. 경찰은 법무부 훈령과 달리 경찰청 훈령에서 공적 인물을 포토라인에 세울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에는 “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 제고 등 공익적인 목적을 위해 필요한 경우 언론에 의한 취재를 허가할 수 있다”, “수사과정에서 안전사고 방지와 질서유지를 위해 언론의 촬영을 위한 정지선(포토라인)을 설치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경찰은 신상정보 공개가 결정된 만큼 검찰로 이송할 때 조주빈의 얼굴을 모자와 마스크로도 가리지 않을 방침이라고 한다. 그러나 경찰 수사공보 규칙에서는 “얼굴을 공개할 때는 얼굴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어 조주빈이 얼굴을 가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면 이를 막을 근거 규정은 없다. 지난해 ‘제주 전 남편 살인 사건’ 피의자 고유정(37)의 경우 긴 머리카락을 활용해 얼굴 전체를 가려 논란이 일었다.

김수민 기자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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