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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대통령’ 즐기는 트럼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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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효식 기자 중앙일보 사회부장
정효식 워싱턴특파원

정효식 워싱턴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우리는 보이지 않는 끔찍한 적과 전쟁 중”이라며 “단결하면 어떤 미국인도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대통령인 한 위대한 승리를 얻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싸울 것을 믿어도 된다”라고도 했다. 18일 전시 대통령(Wartime President)을 선언한 이래 매일 브리핑마다 뻔뻔할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다.

이날은 감염자가 15일 3500명(사망 66명)에서 일주일 만에 10배, 3만 5934명(사망 480명)으로 급증한 상황인데도 그랬다. 2500조원 규모 경기부양 법안이 통과하면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리조트도 지원을 받느냐는 질문도 “경영에 손 떼 모르지만, 글로벌 호텔이 모두 어렵기 때문에 대기업도 고용을 유지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받아넘겼다.

뉴욕타임스는 “주식시장 호황은 잃었지만,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바이러스 확산이 둔화하고 11월 대선 전엔 사태를 극복한다는 게 트럼프의 최선의 재선 시나리오”라고 분석했다. 매일 대책 브리핑이 그의 대선 유세인 셈이다. 위기가 커지자 초기 대응 실패에 대한 비난 여론도 잦아들었다. ABC 방송의 20일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 코로나 대처 지지도는 전주(43%)보다 55%로 12%포인트나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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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슈미트 아이오와주립대 교수는 “이는 공포의 지지 효과 또는 안보 결집 현상”이라며 “전쟁 같은 위협이 있으면 사람들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마키아벨리가 말하듯 살아남은 군주에게 행운의 여신이 따르는 법”이라고도 했다. 거꾸로 민주당 대선 선두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경선마저 중단돼 고향 델라웨어 자택에 웅크리고 있는 것 외엔 할 일이 없어졌다.

전시 대통령의 성공은 전례가 없지도 않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3년 대공항 시절부터 1944년 2차 세계대전까지 ‘노변정담’으로 불리는 대국민 라디오 연설로 국민을 위로하며 유일한 4선 대통령이 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이라크전쟁 중이던 2004년 50.7%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트럼프도 신종 코로나 전시 대통령으로 쉽게 재선할지모르지만, 국제 위기에서 미국 우선주의가 두드러진 건 세계 질서에 길게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동맹 유럽이 원조에 인색한 미국 대신 중국에 지원을 요청한다. 나토 회원국인 이탈리아가 동맹 미국과 러시아군에 동시에 지원을 요청했는데 러시아군이 8개 의료여단과 100명의 바이러스 전문가의 파견으로 먼저 응답한 것만 봐도 그렇다.

정효식 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