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스페인·독일·프랑스·이란...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세계 대유행)으로 환자 수가 급격히 늘어난 나라다. 국가별로 신규 확진자 수가 하루에도 최대 수천 명씩 늘어난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 더 있다.
中, 전 세계 '코로나 원조' 중
중국이 건넨 ‘도움의 손길’을 받은 나라란 점이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지난 12일 중국 방역 의료전문가팀 9명이 로마에 도착했다. 호흡기와 관찰 모니터, 자동심장충격기(AED), 내시경 등 의료 물자와 함께다. 18일엔 코로나19 환자가 가장 많은 롬바르디아주 밀라노에 중국 의료진 10여 명이 투입됐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은 이탈리아에 총 300명의 의료진을 파견할 계획이다. 이탈리아 외에도 스페인·프랑스·폴란드·세르비아·그리스 등에 의료지원을 하고 있다.
중동에서도 활약 중이다. 이란 주재 중국대사관은 이란에 마스크 25만 개와 검사 키트 5000개를 지원했다. 중국질병통제예방센터의 마쉐진 연구원이 지난달 28일 홍십자(적십자) 전문가팀 신분으로 이란을 찾아 코로나19 방역 지도를 했다.
이라크 바그다드에도 최근 중국 적십자 소속 의료진이 투입됐다. 이들은 이라크 당국과 의료 지원 협약을 맺었다. 이라크 시민들에게 마스크 쓰는 법과 손 씻는 법 등도 가르쳤다.
중국과 서방 전세역전
몇 주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중국은 코로나19의 중심이었다. 도움을 주기는커녕 받기에 급급했다. 국제사회가 나섰다. 80여 개국과 10여 개 국제기구가 중국에 마스크를 비롯한 각종 의료 구호품을 지원했다.
상황은 바뀌었다. 20일 중국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중 국내 발생은 ‘0명’이다. 지난 18일 이후 사흘 연속 그랬다. 하루 평균 30여명의 신규 확진자는 모두 해외에서 유입됐다.
반면 이탈리아의 20일 신규 확진자 수는 5986명이다. 누적 사망자 수는 4032명으로 3200명대의 중국을 넘었다. 유럽 전체의 누적 확진자 수는 10만 명을 훌쩍 넘어 8만여 명인 중국을 넘어선 지 오래다. 미국도 확진자 수가 2만 명에 육박한다. 유럽과 미국이 코로나에 신음할 때 중국이 오히려 여유를 보이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 중국 정부가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렸다. 행보도 공격적이다. 유럽과 중동에만 구호의 손길을 보낸 것이 아니다. 일본·필리핀·캄보디아·페루·한국 등 전방위적이다. 중국이 오래 공을 들인 아프리카도 빠지지 않는다.
심지어 미국도 민간 차원에서 원조를 받았다. 마윈 전 알리바바 회장이 미국에 마스크를 보냈다. 중국 지원을 받지 않은 국가를 꼽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中, 코로나 배양국→글로벌 리더 노려"
중국의 목적은 뭘까. 서방에선 ‘전염병 발원국’ 오명을 지우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많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은 코로나19로 혼란한 국가들에 ‘도움 공세(aid blitz)를 하고 있다”며 “국가 이미지 바꾸기가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NYT는 “중국은 ‘팬데믹을 배양한 권위주의 정권’에서 세계적 위기에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는 ‘글로벌 리더’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특히 중국이 라이벌로 생각하는 미국을 염두에 둔 행동이란 분석도 많다. 미국은 안 그래도 국제사회 공조에 시큰둥했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워서다. 그런데 코로나19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며 최근 국가 비상사태까지 선포했다. 미국이 자국에만 신경 쓰며 정신이 없다. 이 틈을 타 중국이 글로벌 리더 역할을 대신하겠다는 의도다. ‘차별화 전략’이다.
독일 싱크탱크 독일마셜펀드의 노아 바킨 선임 방문연구원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가 퍼지자 유럽으로부터의 입국을 전면 금지하는 와중에 중국은 (구호 행동으로) 자신들이 관대하고 이타적인 친구임을 (유럽에) 부각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시진핑의 '건강 실크로드' 구축 야망
중국 정부의 의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행보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시 주석은 17일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와 통화했다. 여기서 “중국은 이탈리아와 함께 전염병과 싸우고 ‘건강 실크로드’를 구축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건강 실크로드'에선 시 주석의 대표 구상인 일대일로( 一帶一路)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일대일로가 육상·해상 교통망으로 중앙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하나의 거대 경제권으로 만드는 '신(新) 실크로드' 구상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일대일로에 동조하는 몇 안 되는 유럽 국가다.
건강 실크로드 구축은 결국 '코로나 원조'로 신실크로드를 완성하겠다는 선언이다. 시 주석은 통화에서 “중국은 수개월에 걸친 노력 끝에 전염병 예방과 통제에서 긍정적 변화를 겪었다”며 “우리는 각국의 전염병 방제에 자신감을 주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르비아 "믿을 건 중국뿐"
효과도 있어 보인다. 구호 물품이 절실한 나라를 중심으로 중국을 달리 보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의 지원 노력이 유럽 현지에서 필요한 의료 서비스 수요와 비교하면 소규모”라면서도 “이탈리아 등 유럽연합(EU)에 실망한 많은 국가에서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WSJ는 “이달 초 EU 회원국 중 어느 국가도 이탈리아의 마스크 지원 요청에 화답하지 않았다” 며 “독일은 오히려 의료장비 전달을 한때 지연시키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회원국들은 자국의 코로나19 피해를 수습하는 데 바쁠 뿐이다.
지난 15일 코로나19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이날 TV 담화에서 “EU 연대는 동화 속에나 있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세르비아는 지속해서 EU 가입을 희망해 온 국가다. 부치치 대통령은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를 도울 곳은 중국밖에 없다. 의료진 파견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중국은 이날 밤 코로나19 진단키트 1000개를 세르비아에 전달했다.
이에 부치치 대통령은 17일 트위터로 “양국의 우의에 자부심을 느끼며 중국 친구의 도움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를 남겼다.
이탈리아 다음으로 유럽에서 확진자 수가 많은 스페인도 15일 아라차 곤잘레스 라야 외교장관이 왕이 중국 외교부장에게 의료 물자 및 전문가 기술 지원 등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 싱크탱크 ‘세계공공정책연구소’(GPPI)의 토르스텐 베너 소장은 “이탈리아와 스페인, 세르비아 사례는 EU 연대의 충격적인 실패”라고 평가한다. 오스트리아의 정치 분석가 이반 크라스테프도 WSJ에 “유럽 민주주의 국가 일부에게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상황이 중국의 권위주의 체계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美, 코로나로 리더 지위 中에 내줄 수도"
미국에선 글로벌 리더 지위를 중국에 내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포린어페어스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질서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70년간 미국은 글로벌 리더로 인정받았는데, 이는 국내 통치가 안정된 가운데 글로벌 공공재를 공급하고, 글로벌 위기 상황에 각국의 힘을 모으고 갈등을 조정했기 때문"이라며 "미국은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세 가지 부문에서 시험대에 올랐는데, 모두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1956년 수에즈 운하 사건 이후 영국이 세계 지도국 지위에서 내려왔듯,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미국도 영국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루스 도시 중국 전략 이니셔티브 국장의 생각도 비슷하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는 미국의 의미 있는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에서 중국의 리더십이 부각되는 첫 글로벌 위기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中, 코로나 원조로 초기 대응 실패 물타기 의도"
어려움에 부닥친 나라를 돕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이런 행보에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의도도 담겨 있다는 점이다. 바킨 연구원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차단을 위해 중국이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를 돕는 것은 문제가 없다”면서도 “중국 정부가 이를 프로파간다(선전·선동) 수단으로 쓰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라고 지적한다.
포린어페어스는 "중국 정부의 이런 대응은 자신들의 코로나19 초기 대응 실패를 물타기 하기 위해서"라고 본다. "중국이 자국에서 코로나19가 진정되는 징후를 커다란 '성공 스토리'로 포장하고, 나아가 코로나19가 중국에서 발생했다는 사실마저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 외교정책 전문가 조쉬 로진도 워싱턴포스트(WP) 칼럼에서 “당초 시진핑 국가 주석까지 바이러스가 우한 화난수산시장에서 발생했다고 인정했지만, 지금 중국 정부는 말을 뒤집어 미국 기원설을 주장한다”며 “이런 행동은 중국 공산당의 무오류성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라고 지적했다.
독일 GPPI의 배너 소장은 “중국이 인도주의적 자세를 취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바이러스가 비롯된 곳이 어디인지와 그곳의 초기 대처가 어떻게 바이러스를 전 세계로 퍼져나가도록 했는지, 이 역사를 고쳐 쓰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차이나랩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