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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으로 창작으로…예술 뒷바라지의 진화는 계속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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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8호 19면

문화예술 지원이 경영이다 〈5〉

코레일심포니오케스트라의 무료 클래식 공연은 철도역사를 문화공간으로 변모시킨다.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코레일심포니오케스트라의 무료 클래식 공연은 철도역사를 문화공간으로 변모시킨다.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코로나19 사태로 최근 공연계 매출이 반토막나는 등 문화예술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이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인 긴급생활자금 융자 지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코로나 대응 특별 모금 캠페인 등 정부 차원의 지원 대책이 마련되고 있다.

후원도 기업 색깔 맞게 세분화 #아모레퍼시픽 ‘메디치형’ 지원 #미쟝센 단편영화제 벌써 19회째 #암환자·예술가 함께 여행, 작품전 #장애아동 돕는 음악회도 활발 #회사가 직원들의 영화 창작 도와

기업의 지원은 아직 소극적이다. 케이티가 KT체임버홀 공연을 무청중·올레TV 중계 방식의 무료 공연으로 돌리고, LG아트센터 등 기업이 운영하는 문화시설이 취소 행사에 대해 이례적으로 대관료 환불 방침을 정한 정도다.  한국메세나협회도 사태가 진정된 후 예술가들의 공연, 전시 활동을 지원하는 방식을 협회차원에서 고민하고 있다.

개별 기업들은 “돕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겠다”는 입장이지만, 예술 후원을 금전으로만 하는 건 아니다. 예술가들이 활약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제승 문화예술후원센터장은 “예술이 가진 치유와 공동체 의식 형성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활용해 재난을 당한 국민을 위로하는 활동을 기획한다면, 그 이익은 예술계와 일반 국민에게 고루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크라운해태·금호·두산 지원 꾸준

재난상황이 아니더라도 ‘예술을 통한 사회공헌’은 시대의 화두다. 메세나 활동은 일방적인 자선사업이 아니다. 모든 소비산업이 패션화하는 시대, 기업의 미의식 수준이 경쟁력을 좌우하게 됐기 때문이다. 『세계의 엘리트는 왜 미의식을 연마하는가』의 저자 야마구치 슈는 일본 전국시대의 영웅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다도의 완성자이자 ‘와비의 미학’의 창시자인 센리큐의 관계를 기업경영에 빗대어 예술가의 재능을 통해 사회에 영향력을 강화하는 경영자의 미덕을 논했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대표적인 메세나 기관인 LG아트센터의 심우섭 대표도 “메세나 활동은 고객과의 소통의 도구”라면서 “선진화된 사회에서 기업은 자기만의 색깔을 갖고 고객과 소통해야 하는데, 문화예술을 활용하는 것이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다. 소외된 분야에서 기업의 색깔과 잘 맞는 아이템을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의 예술 후원이 다각화되는 이유다.

그동안 기업 대표자의 개인 취향에 좌우되던 후원 방식이 최근 들어 기업의 색깔에 맞게 전문화·세분화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인증하는 ‘문화예술후원 우수기관’에 선정된 총 38개 업체들은 예술후원 전담 조직을 두고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앞다퉈 개발 중이다.

2019미쟝센 단편영화제에 참석한 배우 주지훈.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9미쟝센 단편영화제에 참석한 배우 주지훈.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해로 19회를 맞는 국내 최고 권위의 단편영화제 ‘미쟝센 단편영화제’는 아모레퍼시픽의 후원으로 탄생했다. 한국 영화의 기초 자산인 단편영화를 꾸준히 후원해 개성 있는 감독과 배우, 작품을 발굴해 왔다. 기업이 순수하게 예술 창작을 지원하는 ‘메디치형’의 대표 사례다.

‘후원하되 관여하지 않는다’는 아모레퍼시픽의 후원 철학 하에 “한국 단편영화 제작 편수는 미쟝센 출품 편수와 같다”고 할 만큼 ‘미쟝센’은 국내 최고의 단편영화제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에는 1184편이 출품돼 본선 진출에 20:1의 치열한 경쟁률을 기록했다. ‘명량’의 김한민, ‘곡성’의 나홍진, ‘범죄와의 전쟁’의 윤종빈 등 스타 감독과 최우식·한예리 등 개성파 배우들도 미쟝센 출신이다.

2006년부터 지속하고 있는 ‘설화문화전’도 전통 공예와 현대미술의 소통을 통해 한국 장인정신의 가치를 전파하는 자리다. 지난해 서울 아모레퍼시픽 본사에서 두 달 넘게 열린 ‘미시감각-문양의 집’ 전시는 건축·공간기획·드로잉·패브릭·인테리어·패션·영상 각 분야 예술가들이 나비·새·꽃 등 전통 문양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들을 출품해 호평받았다.

금호 영재 콘서트로 데뷔한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 [중앙포토]

금호 영재 콘서트로 데뷔한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 [중앙포토]

민간기업 최초로 국악연주단을 창단하고 국악 지원에 앞장서는 크라운해태홀딩스, 20년이 넘는 전통의 클래식 영재 발굴 시스템 ‘금호 영재 콘서트’와 베니스비엔날레 출품 작가들을 후원해 온 아시아나항공, 복합문화공간인 두산아트센터와 예술가에게 뉴욕의 작업공간을 제공하는 ‘레지던시 뉴욕’ 등으로 유명한 두산도 대표적인 메디치형 기업이다.

사회적 문제에 예술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기업들도 있다. 지난해 10월, 암환자 25명이 7명의 예술가와 인천 무의도로 여행을 떠났다. 2박 3일 동안 설치미술작가, 미디어 아티스트 등 인천문화재단 소속 예술가들은 환우들과 같이 작품을 만들고, 11월엔 전시회도 열었다. 여행 중 촬영한 사진들을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종이상자에 옮기니 설치미술이 되고, 자연 속 오브제와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녹음한 파일이 더해져 근사한 미디어아트로 재탄생했다.

올림푸스한국의 '아이엠 카메라'는 17개 병원에서 180 여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림푸스한국의 '아이엠 카메라'는 17개 병원에서 180 여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환자들의 치유 노력이 예술로 승화된 것은 올림푸스한국의 사진예술 교육 프로그램 ‘아이엠 카메라’를 통해서다. 의료산업을 선도하는 기업 정체성을 살려 예술과 사회를 만나게 한 사례로, 2015년부터 현재까지 17개 병원에서 수료생 180여명을 배출했다. 전시회는 현장 판매를 진행해 수익금 전액을 소아·청소년 암 환우를 위해 기부하고 있다.

아산병원과 신촌세브란스 병원, 이대 서울병원에는 아이들이 동물들과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체험형 놀이공간이 있다. 현대해상이 어린이 환자들의 체력과 정서를 위해 마련한 ‘힐링 정글’이다. 모션 인터랙티브 월 시스템으로 대형 스크린에 영상을 투사하고 모션 센서가 움직임을 인식해 상호작용을 연출하는 방식이다. 움직이는 동물들을 따라 운동도 하고, 저녁에는 반딧불이나 별자리를 보며 화면에 메시지를 쓰고 풍등을 날리기도 한다. 어린이들이 병원은 무서운 곳이 아니라 힘든 병마를 이겨내는 곳으로 여기게 하는 콘텐트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철도·무역진흥공사 등 공기업도 앞장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한미약품의 ‘빛의소리 나눔콘서트’는 장애아동 예술교육을 위한 음악회다. 서울대 의대 출신 오케스트라 ‘메디컬 필하모니 오케스트라(MPO)’가 유명 예술인과의 협연으로 수준높은 클래식 연주를 선사해 조성되는 ‘빛의소리 희망기금’은 2013년부터 6년 동안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과 익산 청록원에 지원됐다. 청소년 오케스트라 ‘어울림단’과 카혼연주단 ‘블루엔젤스콰이어’ 결성이 그 결과다. 어울림단에서 전문 음악강사들에게 교육받은 장애 청소년들이 음대에 입학하기도 했다.

소외계층을 위한 공연 티켓 나눔과 다문화 가정 아동을 위한 동화책 지원 나눔사업을 하는 신세계, 지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통합문화예술교육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공연 사업을 하고 있는 케이티 등도 예술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에 포커싱하고 있다.

창의 경영과 예술 지원을 접목한 ‘1타 2피’형도 있다. 올림픽공원, 반포대교에 설치된 음악분수대 펌프를 개발한 수중펌프 제조업체 하지공업은 ‘기계보다 책이 더 많은 회사’로 유명하다. 2018년 이 회사 직원들은 단편영화를 찍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파견 지원 사업’에 참여해 임직원 창작 활동을 지원한 것이다. 직원들은 예술가들과 소통을 거쳐 각본부터 촬영까지 직접 주도해 ‘훈이를 찾아서’라는 영화를 제작했다. 직장생활 속 벌어지는 부조리한 일들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스토리가 인기를 끌었고, “반복되는 업무로 쌓인 피로를 색다른 활동으로 치유받았다” “직장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며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됐다”는 반응들이 나왔다.

최근엔 공기업들도 예술 후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안정적인 조직을 기반으로 전문성 있는 사업을 장기적으로 지속하는 게 특징이다. 한국철도공사는 문화사업을 전담하는 ‘문화홍보처’를 두고 문화예술을 전면에 내세워 기업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2012년부터 문화역서울284에서 열고 있는 ‘철도문화체험전’, 지방 간이역에 주민 참여로 문화적 정체성을 반영하는 ‘간이역 문화디자인 프로젝트’ 등을 통해 역사를 문화공간으로 변모시켰다. 매년 전국민 대상 오디션을 거쳐 80여명의 단원을 선발하는 코레일심포니오케스트라도 매달 무료로 공연하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는 수출산업과 예술의 융합을 돕고 있다. 2012년부터 예술 이미지를 활용한 제품개발을 지원해 중소·중견기업의 수출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아트콜라보’ 사업이 대표적이다. 중소웹툰 플랫폼의 해외시장 진출, 문화예술인의 취업·창업도 지원하고 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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