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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빼곤 다 떨어진다, 안전자산 금·미국국채까지 매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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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세계 금융시장은 이미 전쟁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표현 그대로 ‘보이지 않는 적(invisible enemy)’과 사투 중이다. 전 세계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경제위기라는, 적이 보이지 않고 과거에 경험해본 적도 없는 전쟁이다.

세계 현금확보 전쟁에 달러만 품귀 #금값, 열흘 사이에 12.8% 급락 #투자자들 일본 엔화도 내다 팔아 #금융위기 때도 없었던 기현상

주가는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 증시에서의 서킷 브레이커(주식 매매 일시 중단) 발동은 흔한 일이 됐다. 뉴욕 증시에선 최근 열흘 새 벌써 네 번째다.

이 전쟁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현상이 있다. 모든 자산에 대한 투매와 가격 급락이 일어나고 있다. 과거 위기 때마다 방공호(safe haven) 역할을 톡톡히 했던 금과 미 국채값도 예외 없이 하락 중이다. 떨어지지 않는 것은 오로지 미국 달러화뿐이다. 믿을 건 현금밖에 없다는, 전쟁터의 군중 심리가 발동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달러인덱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미국달러인덱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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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아시아 주식시장에서도 한국(-8.39%)과 대만(-5.83%) 증시의 낙폭이 유달리 컸다. 아시아 증시 중에서도 현금화가 쉽고 중국 같이 자금 유출에 통제를 받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포로 가득 찬 금융시장엔 ‘팔 수 있는 건 모두 팔아 현금을 확보하라’는 구호만 남았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연 1.2%선을 넘어섰다(국채 가치 하락).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제로(0)’ 선언과 맞물려 0.5%선까지 내려갔던 미 국채 금리가 빠르게 역주행했다.

코로나19 유행 초기만 해도 몸값이 상승했던 국제 금 시세는 어느새 온스당 1400달러대로 하락했다. 지난 9일 1680.47달러까지 치솟았던 금값은 19일 장중 1465.16달러로 내려앉았다. 열흘 사이 12.8% 값이 내렸다.

미국채금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미국채금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안전 자산 ‘대표 주자’였던 일본 엔화도 체면을 구겼다. 19일 미 달러당 일본 엔화값은 109엔대로 올라서내렸다.109엔에 근접했다(엔화 가치 하락).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북미·유럽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늘고 있고, 입국·통행 제한 조치도 강해지면서 전 세계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커지고 있다”며 “안전 자산으로 꼽히던 미국 국채, 금에서도 매도세가 나타나는 등 상황은 심각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밝혔다.

증시가 폭락했다고 투자자들이 금과 미 국채, 일본 엔화까지 투매하는 상황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도 볼 수 없었던 일이다. 블룸버그통신 경제 칼럼니스트인 노아 스미스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코로나19는 대공황 때보다 더 극심하고 가혹한 경기침체가 올 수 있다”고 적었다.

미금시세.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미금시세.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몸값이 오르고 있는 건 단 하나, 미국 달러화다. 바로 현금이다. 현금 확보를 위한 자산 투매 경쟁 속에 이례적인 달러 품귀 현상이 나타났다. 미 달러 인덱스는 지난 18일 100선을 넘어선 이후 빠르게 상승 중이다. 로이터통신은 “시장에 산다고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다. 모두 탈출하려는 사람들뿐”이라며 이로 인해 “주식·채권·금·상품 모두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투자자, 기업 할 것 없이 현금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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