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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벽 사이 손만 쓱…인큐베이터 닮은 실내판 '드라이브스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6일 오후 3시22분 서울시보라매병원 선별진료소 검체채취실. 마스크를 쓴 여성이 들어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심 증세로 검체를 채취하기 위해서다.

아크릴 유리벽 건너편에 있던 성진 간호사가 자리에 앉으라고 여성을 안내했다.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분리됐다. 직접 접촉 없이 대화로만 모든 게 진행됐다. 환자 뒤에는 작은 음압기기가 설치됐다. 혹시 있을지 모를 공기 외부 유출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다.

"지금부터 검사 3가지 할 거에요. 코, 입, 가래 뱉는거 이렇게요."(간호사)

"(의료진이 쓰는) 장갑 이거 괜찮아요?"(환자)

"제가 소독 두세번씩 해서 괜찮아요."(간호사)

보라매병원 의료진이 글로브월 스크린을 통해 환자 검체를 간편하게 채취하는 모습. [사진 서울시보라매병원]

보라매병원 의료진이 글로브월 스크린을 통해 환자 검체를 간편하게 채취하는 모습. [사진 서울시보라매병원]

보라매병원 첫 도입한 '글로브-월' 검체 채취는

성 간호사가 유리벽 중간에 장갑이 달린 구멍을 통해 능숙하게 손을 움직였다. 일단 환자 코 깊숙한 곳에서 검체를 채취했다. 그런 뒤 입 안에서 검체를 채취했다. 환자는 괴로운듯 얼굴을 찡그리고 헛구역질을 했다. 환자가 "아프다"고 하자 성 간호사가 "이게 눈물 나게 아프다. 구역질이 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는 마지막으로 작은 통에 가래를 뱉었다.

이렇게 채취한 3가지 검체는 환자가 바로 옆에 있는 보관함에 직접 넣었다. 이 환자가 손 소독을 끝내고 검체채취실을 나간 시간은 3시26분. 불과 4분 만에 일련의 작업이 모두 마무리됐다. 성 간호사는 "이 정도면 오래 걸린 수준이다. 보통 2분 내외면 끝난다"고 했다.

이 병원 검체채취실은 유리벽으로 된 상자에 장갑이 달린 구멍을 통해 영아를 돌보는 인큐베이터와 유사한 구조다. 여기선 '글로브-월'(Glove-Wall)이라고 부른다. 환자와 완벽히 나눠진 밀폐 공간에서 근무하다보니 의료진의 피로도가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했다.

성 간호사는 두꺼운 방호복 대신 푸른색 가운과 마스크, 고글, 의료용 장갑 정도만 착용했다. 그는 "아무래도 의료진으로선 감염 걱정이 없다는 게 가장 크다. 원래 환자 대면 검사할 때는 매우 조심하지만 지금은 훨씬 안심이 된다"며 "환자들도 감염 걱정 없이 기침이나 가래 등을 편하게 하는 편이다. 검체 채취 근무자도 하루 한 명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보라매병원은 이러한 글로브-월 시스템을 국내 처음으로 도입했다고 이날 밝혔다. 지난달부터 병원 선별진료소에서 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의료진이 아크릴 유리벽 반대쪽 검사자와 직접 접촉 없이 검체 채취를 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보라매병원 선별진료소 검체채취실에 마련된 음압기기. 오염된 공기가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해준다. 정종훈 기자

보라매병원 선별진료소 검체채취실에 마련된 음압기기. 오염된 공기가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해준다. 정종훈 기자

글로브-월은 경기 고양시와 충남 세종시에서 시작된 '드라이브 스루(drive thru)' 검사법처럼 안전하고 간편한 방식이다. 다른 점은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는 널찍한 공간이 마련된 야외에 있고, 글로브-월 검체채취실은 병원 선별진료소 실내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직접 병원을 찾아오는 의심환자들을 검사하기에 적합하다는 의미다.

글로브-월 시스템의 환자 동선은 여타 선별진료소와 비슷하다. '접수-대기-문진-검체 채취-수납'으로 진행된다. 환자 동선 자체를 별도로 분리했다기보다는 검체 채취 방식을 '안전' 위주로 개선한 측면이 강하다. 혹시 모를 2차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는 한편 레벨D 방호복 없이 검사가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다. 의료진과 환자의 감염 우려가 줄어드는 한편 보호 장비 절감, 검사시간 단축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병원 관계자는 "직원 40명 가량이 참여하는 병원 코로나 태스크포스(TF)에서 더 안전한 검체 채취 방법이 없을까 논의하던 중에 나온 제안이다. '인큐베이터 시스템은 어떨까'라는 이야기에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지난달부터 준비해서 본격 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진 반응도 좋다.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는 김민정 간호사는 "코로나 사태 초기에는 레벨D를 장시간 착용해 체력 소모가 심했다. 하지만 이젠 비닐 가운과 N95 마스크만 착용해서 피로가 덜 하고 방호복 착용에 따른 검사 지연도 크게 개선된거 같다"고 말했다.

'글로브월'을 통해 코로나 검체 채취 중인 보라매병원 김민정 간호사. [사진 서울시보라매병원]

'글로브월'을 통해 코로나 검체 채취 중인 보라매병원 김민정 간호사. [사진 서울시보라매병원]

보라매병원 감염관리실장인 박상원 교수(감염내과)는 "검체 채취 후 환자가 머문 한정된 공간을 집중 소독하기 때문에 소독 시간을 단축하고 추가 검사도 안전하게 할 수 있다. 안정적인 소독 여건이 마련된 시설에서 도입하면 큰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글로브-월' 시스템은 동부병원 등 서울시 산하병원 4곳에서 벤치마킹하고 있다. 태릉선수촌에 설치된 서울시 생활치료센터에서도 도입했다.

병원 관계자는 "2015년 메르스를 경험했기 때문에 레벨D 방호복 착용 어려움 등을 감안해서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 서울시에서 진료 현장을 확인한 뒤 곧바로 반영에 들어갔다. 다른 병원에서 도입하면 의료기관 방호복 부족이나 환자ㆍ의료진 보호 문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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