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은행 결국 떠밀리듯 구원투수로 뛴다, 어게인 2008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결국 10여 년 만에 다시 중앙은행이 구원투수를 맡게 됐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모두 소용돌이치자, 불펜 대기 중이던 한은이 떠밀리듯 등판을 준비 중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땐 금융시스템 붕괴를 막는 ‘특급 소방수’ 역할을 톡톡히 했던 한은이다. 다만 그 힘이 예전만 못하다는 걱정도 나온다.

각국 추가 금리인하 릴레이 예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7일 정례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7일 정례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이번 주는 각 국 중앙은행이 줄지어 코로나19에 대응해 돈 풀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17~18일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예정돼있다. 브라질 중앙은행(17~18일)과 일본은행(19일)도 차례로 금리결정 회의를 연다. 20일엔 중국 인민은행의 대출우대금리 결정과 러시아 통화정책회의가 열린다.

그 중에서도 전 세계 금융시장은 FOMC를 주목한다. 지난 3일(현지시간) 긴급성명을 통해 0.5%포인트 금리 인하를 단행한 Fed의 다음 행보가 관심거리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3월 초만 해도 대부분 투자은행(IB)이 0.5%포인트의 점진적 금리인하를 점쳤지만, 최근 들어 JP모건이나 골드만삭스 등이 1.0%포인트 ‘빅컷’ 전망을 잇달아 내놨다. 미국 내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찮아서다. 만약 Fed가 1.0%포인트 인하에 나서면 기준금리는 0.00~0.25%로 떨어진다. 이렇게 되면 다시 미국이 2008~2015년의 제로금리 시대로 돌아가는 셈이다.

금리 인하와 함께 Fed가 고강도 양적완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시장의 목소리도 커졌다. 금융위기 당시 미국 주택가격이 폭락하자 Fed는 모기지담보부증권(MBS)을 매입해 시장을 안정시킨 바 있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글로벌 경기와 금융시장이 극단으로 치달은 만큼, FOMC에서 회사채와 같은 새로운 자산까지 매입해주는 극단적 처방을 내놔야 시장이 안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일 0.5%포인트 금리인하 긴급성명을 발표한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 AFP=연합뉴스

지난 3일 0.5%포인트 금리인하 긴급성명을 발표한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 AFP=연합뉴스

12년 만의 임시 금통위, 내놓을 건?

한국은행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개최할 시점도 이번주가 유력하다. 13일 한은은 “임시 금통위 개최 필요성을 협의 중”이란 입장을 내며 임시 금통위가 임박했음을 공식적으로 시사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17일 국회에서 코로나19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이 통과될 예정인 만큼, 정책 공조를 위해 임시 금통위 시기를 맞출 것으로 내다본다. 앞서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소집한 경제·금융상황 특별점검회의에 이주열 한은 총재가 참석한 것도 이런 관측의 배경이 된다.

한은이 임시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조정한 건 2001년 9월(0.5%포인트 인하)과 2008년 10월(0.75%포인트 인하), 두 번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정점이던 2008년 10월 24일 코스피지수가 무려 10.57% 폭락하며 시장이 요동쳤을 때 27일 한은이 긴급 금리인하 처방을 내놓으며 시장을 진정시킨 적 있다.

13일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경제·금융 상황 특별 점검회의’에 참석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도규상 경제정책비서관, 은성수 금융위원장(왼쪽부터). 청와대 제공

13일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경제·금융 상황 특별 점검회의’에 참석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도규상 경제정책비서관, 은성수 금융위원장(왼쪽부터). 청와대 제공

다만 12년 전과 크게 다른 게 있다면 기준금리 수준이다. 금융위기 초입에 한은 기준금리는 5.25%였다. 이후 한은은 2008년 10월~2009년 2월 총 6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2.00%로 가파르게 끌어내리며 돈 풀기에 적극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한은 기준금리는 1.25%로 이미 역대 최저 수준이다. 여기서 0.25%만 내려도 한은은 1.00% 기준금리 시대를 열게 된다. 이번 주 임시 금통위가 열려도 금리 인하폭은 0.25%포인트에 그칠 것으로 전문가들이 내다보는 이유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제 금리를 한번만 낮추면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하다보니 임시 금통위에선 0.25%포인트 인하에 그칠 것”이라며 “금리인하 여력을 남겨둬야 할 뿐 아니라, 이후엔 일본·유럽처럼 정책금리 조정폭을 0.1%포인트 정도로 줄이는 게 맞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한발 뒤늦은, 소폭의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회의론도 있다. 저금리가 장기화하고 시중 유동성이 넘치면서 금리인하의 실물경기 부양 효과가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박정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금리인하가 실물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약화됐지만 자금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도 절대적”이라며 “통화정책으로 자금경색에 따른 금융위기 가능성을 막는 것이 첫 번째 대응책”이라고 강조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