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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 수천명 모로코에 발묶여···"코로나에 佛외교사 치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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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아프리카 모로코 마라케시공항에 발이 묶인 유럽 여행객들이 당황스런 표정으로 모여있다. 전날 모로코 당국은 유럽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유럽대륙과의 육해공 통로를 모두 차단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로 인해 모로코를 여행 중이던 프랑스 여행객 수천명을 비롯해 많은 유럽 여행객들이 공항과 항구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됐다. [로이터=연합뉴스]

14일 아프리카 모로코 마라케시공항에 발이 묶인 유럽 여행객들이 당황스런 표정으로 모여있다. 전날 모로코 당국은 유럽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유럽대륙과의 육해공 통로를 모두 차단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로 인해 모로코를 여행 중이던 프랑스 여행객 수천명을 비롯해 많은 유럽 여행객들이 공항과 항구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아프리카를 여행 중이던 프랑스 국민 수천 명이 공항과 항구에 발이 묶였다. 모로코가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이유로 유럽과의 육·해·공 통로를 예고 없이 모두 끊었기 때문이다. 모로코를 여행 중이던 프랑스 시민들이 무방비 상태로 큰 혼란을 겪으면서 프랑스 외교부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일간 르파리지엥은 14일(현지시간) 모로코 마라케시공항에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프랑스 시민들 수백명이 프랑스 외교부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라케시공항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는 한 프랑스 시민은 "프랑스 대사관에서는 우리의 힘으로 프랑스로 돌아오라고 하지만, 모든 예약사이트를 다 찾아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비행기 편을 예약할 수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앞서 모로코 정부는 지난 13일 이웃 국가 알제리를 포함해 유럽과 통하는 모든 항공편과 여객선을 운영 중단했다. 또 모로코에 위치한 스페인령 세우타와 멜리야를 봉쇄함으로써 유럽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육로마저 차단했다.

이에 따라 프랑스로 돌아오지 못하고 사실상 갇혀버린 프랑스 시민이 마라케시공항과 아가디르공항, 탕헤르항구 등지에 수천 명에 달한다고 외신은 전했다.

14일 모로코 마라케시공항에서 유럽과의 항공편 차단으로 비행기가 취소된 뒤 여행객들이 망연자실한 상태로 의자에 앉아 항공편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4일 모로코 마라케시공항에서 유럽과의 항공편 차단으로 비행기가 취소된 뒤 여행객들이 망연자실한 상태로 의자에 앉아 항공편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갑작스러운 차단 조치로 고립된 프랑스인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장 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은 모로코 외교부와의 협상을 통해 14일 “프랑스 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허가해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프랑스 국민이 돌아오는 항공편을 구하지 못해 노숙하고 있다는 게 르파리지앵의 설명이다.

스페인과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맞닿아있는 모로코는 유럽대륙과 아프리카대륙의 관문으로 꼽힌다. 더욱이 모로코는 1956년 독립 전까지 프랑스 식민지였으며, 이후에도 프랑스는 모로코를 원조하며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모로코에는 특히 프랑스 여행객들이 많은 편이다. 이런 모로코에서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이유로 프랑스 시민들이 오도 가도 못한 채 갇히게 되면서 프랑스 외교사의 치욕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 남성은 인터뷰에서 "14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서 이날 아침 일찍 공항에 도착했지만, 갑작스럽게 항공편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다른 비행기를 탈 수는 있는 것인지 티켓은 구할 수 있는 것인지 계속 알아봤지만, 돌아온 답변은 '모르겠다'는 내용뿐이었다"고 비판했다.

모로코 역시 유럽발(發)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지난 10일 신종 코로나로 인한 최초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망자는 89세 모로코 국적 여성으로, 이 여성은 최근까지 이탈리아에 거주하다 지난 2월 말 모로코로 귀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보고된 모로코 확진자는 17명이다.

13일 모로코의 스페인령 세우타에서 여행객들이 걱정스런 모습으로 도로에 짐을 놓은 채 서있다. [AP=연합뉴스]

13일 모로코의 스페인령 세우타에서 여행객들이 걱정스런 모습으로 도로에 짐을 놓은 채 서있다. [AP=연합뉴스]

이번 육해공 통로 차단 조치로 인해 모로코에도 경제적 손실이 상당할 전망이다. 2019년 세우타와 멜리야를 통해 모로코에 들어온 여행객은 47만3000명이었다. 또 탕헤르항구를 통해 입국한 여행객도 56만8000명에 달했다. 관광산업이 GDP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모로코가 100만명 이상의 여행객을 포기한 것은 유럽발 신종 코로나 감염 사태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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