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사람은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지침이 대중의 혼란을 초래하는 만큼 시급하게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해외 전문가들 사이에 제기되고 있다.
건강한 사람이 마스크를 사용할 경우 지역사회 전파를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면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증거가 있다고 강조했다.
람 타이 힝 홍콩대 공중보건학 교수와 젱 지아캉 영국 버밍엄대 공중보건학 교수 등 전문가들은 지난 11일 영국의 의학저널 BMJ(British Medical Journal) 오피니언 코너에 '마스크를 쓸 것이냐, 쓰지 않아야 할 것이냐: WHO의 혼란스러운 코로나 19 대유행 마스크 지침'란 제목의 글을 투고했다.
이들은 이 글에서 지난 1월 29일 WHO가 내놓은 '코로나 19 마스크 지침'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꼬집었다.
의료진에겐 도움, 일반인에겐 도움 안 된다?
이들은 우선 WHO 지침의 모순을 지적했다.
WHO 지침은 '의료용 마스크가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할 수 있는 보호 수단'이라 말로 시작해놓고, 바로 다음 문장에서 '마스크만으로는 불충분하고 손 위생 등 다른 수단을 함께 써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기고한 전문가들은 "일단 보호와 감염 차단을 위해 WHO가 마스크를 권장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마스크만 사용할 경우 보호가 불충하다는 것이 마스크가 쓸모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스크도 다른 수단과 마찬가지로 유용하다"고 강조했다.
이들 전문가는 또 "WHO는 의료용 마스크가 아프지 않은 사람을 보호하는 데 유용하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의료용 마스크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인플루엔자 등의 사회적 전파를 줄이는 데 마스크가 도움된다는 증거가 있다"며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를 함께 하면 효과적이란 증거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WHO가 감염자들은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권고하지만, (감염자들만 마스크를 쓰는 상황에서는) 차별을 두려워해 쓰지 않게 된다"며 "이번 코로나 19 때 중국 사례를 보면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초기 감염자들도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초기 감염자도 마스크를 쓰도록 하려면 모두가 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WHO가 지침에서 '(일반인들이 의료용 마스크를 사용할 때) 불필요한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지만, 효과보다 비용을 문제 삼은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의료진에게 마스크가 효과가 있다면 일반인에게도 효과가 있는 것이고, 의료진들이 사용할 마스크 부족하다면 그건 정부의 책임일 뿐, 일반인이 마스크 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아니라는 것이다.
면 마스크 전파 억제에 도움
이들 전문가는 "WHO가 '어떤 상황에서도 면 마스크는 권장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이는 의료진들을 대상으로 의료용 마스크와 면 마스크를 비교한 실험에서 얻은 결론일 것"이라며 "지역 사회에서 감염자의 바이러스 배출을 차단한다는 측면에서는 상황이 다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집에서 만든 면 마스크가 의료용 마스크만큼 효과적이지는 않아도 실험실에서 바이러스 배출량을 줄이거나 외부 바이러스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용 마스크가 더 나은 선택이지만, 의료용 마스크가 부족해 의료진들에게 우선 공급되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면 마스크를 사용할 경우 전파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면 마스크는 재사용이 가능하고, 대량 생산도 가능하다는 장점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또 "WHO 지침에서는 '마스크를 쓰면 손 씻기를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지만, 마스크 외에 손 소독제나 비누 등도 사재기를 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마스크를 사용한다고 손 씻기 등을 무시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밝혔다.
또, WHO가 '마스크를 잘못 사용하면 전염 더 심해진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손 씻기처럼 마스크를 제대로 쓰도록 교육하면 된다"고 반박했다.
도시에서 2m 거리 두기 비현실적
이들은 또 "WHO는 1m 이상 거리를 두면 전파가 안 된다고 했지만, 이는 80년 전에 나온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며 "최근 연구 결과로는 비말(작은 침방울)이 2m 이상 날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들 전문가는 "누가 감염됐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복잡한 도시에서 살면서 2m 이상 거리를 두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WHO의 지침은 비현실적이고, (마스크를 쓰지 않을 경우) 불안한 심리에서 인종 차별 등 혐오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 전문가는 "비록 실험을 거치지는 않았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와 면 마스크 착용이 실현 가능한 수단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의협 "면 마스크 권고하지는 않지만…"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제시한 마스크 지침은 WHO 것과 비슷하다.
▶증상이 있거나 감염된 환자 ▶1.8m 이내 거리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 ▶증상이 있는 일반인 ▶격리 기간에 공공장소로 외출하는 경우 ▶유아를 돌보는 유언에 의한 증여 상자▶호흡기 합병증 위험이 높은 사람 등은 마스크를 쓰도록 하고 있다. 반면 일반인에게 마스크를 사용하도록 권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마스크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현재는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대한의사협회가 마스크 부족 사태와 관련, 15일 서울 용산구 의협 임시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안 쓰는 것보단 면 마스크라도 쓰는 것이 좋다"라는 의견을 내놨다.
이에 앞서 의협은 지난 12일 발표한 '마스크 사용 권고안'에서는 “호흡기 증상이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질병이 없는 건강한 일반인에게도 보건용 마스크 착용이 감염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면서도 "면 마스크 착용에 대해선 권고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의협은 KF80·KF94·KF99 등 보건용 마스크 외에도 외과용(치과용) 마스크 역시 필터 기능이 있어 감염 예방과 전파 차단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반인의 경우 KF80을 착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12일 권고안이 마스크를 구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날 부연 설명에 나선 것이다.
의협 코로나19 대책본부 전문위원회는 15일 "보건용 마스크가 부족하거나 없다면 안 쓰는 것보다 면 마스크를 쓰는 것이 좋고, 안 쓰는 것보다는 청결한 곳에서 건조해 재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다만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 마스크 사용과 일회용 마스크 재사용을 권장하지 않는다는 방침은 유지했다.
정부는 지난 3일 마스크 사용 지침을 개정해 면 마스크 사용을 허용했다.
또, 일회용 마스크의 재사용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환기가 잘 되는 깨끗한 장소에 걸어 충분히 말린 뒤 재사용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ang.co.kr
※대한의사협회 코로나19 대책본부 전문위원회가 15일 오후에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제시한 내용을 기사에 반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