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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황교안 협공, 공천 반발…‘죽을 자리’ 선택한 김형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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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7호 04면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관위원장이 13일 국회에서 사퇴 의사를 밝힌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왼쪽은 이석연 공관위 부위원장. 오종택 기자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관위원장이 13일 국회에서 사퇴 의사를 밝힌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왼쪽은 이석연 공관위 부위원장. 오종택 기자

“감투가 아닌 죽을 자리를 찾아왔다.”

미래통합당 공관위원장 전격 사퇴 #“김미균 공천 철회 사태에 책임” #‘사천’ 논란 불댕긴 김종인 겨냥 #황교안 ‘편들기’에 강한 항의 #“모든 화살을 나한테 쏟아라” #공천 반발에 희생양 자처 시각도

지난 1월 17일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이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던진 말이다. ‘공천 과정에서 거취 문제가 불거지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취재진 물음에 그는 “죽기를 원하지 않고 살기로 원하는 사람으로 보이면 언제든 지적해 달라”며 이같이 말했다.

두 달 뒤 ‘사천’ 논란이 일자 김 위원장은 13일 직을 던졌다. 그는 전날 공관위가 서울 강남병에 전략공천한 김미균(34) 시지온 대표의 ‘과거 친문 성향’ 논란과 관련해 “김 대표 공천 결정을 철회한다”며 “이 모든 사태에 책임을 지고 공관위원장직에서 사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상품이 아무리 좋아도 고객이 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앞길이 창창한 인재를 부득이 철회해야 하는 입장에서 인간적 도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사직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서울 강남병 지역은 공천 막바지에 접어든 공관위가 ‘화룡점정’을 위해 마지막까지 남겨놨던 전략지역이다. 이 지역 현역 의원인 이은재 의원은 컷오프(공천배제)됐고 김은혜(성남 분당갑 공천) 전 청와대 대변인 등 7명이 도전장을 던졌지만 번번이 고배를 들었다.

이후 “혁신 공천을 하겠다”고 공언한 공관위는 ‘청년’과 ‘여성’ 우대 방침의 상징으로 지난 12일 이곳에 김 대표를 파격 발탁했지만 발표 직후 “여권 지지 인사”라는 비판부터 “인지도가 낮은 신인을 무리하게 공천했다”는 주장 등 당 안팎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선 강남병 공천 철회는 김 위원장 사퇴의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히려 최근 ‘김형오 사천’ 논란을 정면으로 제기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에 대한 불만과, 그런 김 전 대표를 통합당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는 황교안 대표에 대한 김 위원장의 ‘항의성 사퇴’란 해석에 힘이 실린다. 김 위원장이 이날 “공관위를 흔드는 세력에 단호히 맞설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란 분석이다.

김 전 대표는 최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서울 강남갑의 태구민(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강남을의 최홍 후보 등을 잘못된 공천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하며 ‘공천 후유증 해결’을 선대위원장직 수락의 선결 과제로 꼽았다. 특히 태구민 후보 공천과 관련해 김 전 대표가 “남한에 뿌리가 없는 사람이다. 강남갑 공천은 국가적 망신”이라며 직격탄을 날렸고, 이에 태 후보가 “후보의 등에 칼을 꽂는 발언”이라고 맞받아치면서 갈등이 고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공관위 핵심 관계자는 “당이 선대위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김 전 대표가 공관위를 흔들어 자신을 부각시키려는 구시대적 정치를 시도하고 있다. 도가 지나쳤다”고 지적했다. 황 대표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에게 ‘공천의 전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던 황 대표가 초심을 잃은 것 같다”고 쓴소리를 했다.

김 위원장이 최근 잇따르는 당내 공천 반발을 막기 위해 스스로 희생양이 된 것이란 시각도 있다. 컷오프에 반발해 최근 탈당 및 무소속 출마를 공식화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곽대훈(대구 달서갑) 의원도 전날 김 위원장을 향해 각각 “노추(老醜)” “양아치”라며 비난을 쏟아냈다. 컷오프된 5선의 이주영(창원 마산합포) 국회 부의장과 김재경(진주을·4선), 권성동(강릉·3선) 의원 등 중진 의원들도 공관위 재심 결과에 따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다. 김 위원장은 이날 국회를 떠나며 “모든 화살을 나한테 쏟아라. 화살받이가 되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도 “내가 공관위에 남아 있는 것보다 밖에 있으면서 공관위 입장을 변호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초 인천 연수을에 단수 추천됐다가 최고위원회의 재의 요구로 민경욱 의원과 경선을 치르게 된 민현주 전 의원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공천 번복 결과 통합당은 미래도 없고 통합도 없는 ‘도로 친박당’이 됐다”며 “국가 위기를 핑계 삼아 사천을 통해 권력 쟁취에만 눈이 먼 황 대표는 더 이상 당의 지도자가 아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민 전 의원은 회견 도중 “자기 측근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라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전격 사퇴로 공석이 된 공관위원장 자리는 이석연 부위원장이 직무대행을 맡기로 했다. 당 관계자는 “황 대표가 김 위원장의 사퇴 번복을 설득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의 복귀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는 이날 사퇴 회견 뒤 공관위원들과 점심을 같이하며 “누가 설득해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 대행 중심으로 흔들리지 말고 개혁 공천을 끝까지 마무리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사퇴 의사 표명 후 황 대표와 따로 만난 자리에서도 “이 대행 체제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황 대표는 “그동안 수고했다”며 즉답을 피했다고 한다.

일각에선 황 대표가 김 위원장 사퇴를 계기로 김 전 대표 중심으로 공관위를 재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황 대표 측 핵심 인사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지금 공관위를 해산하면 공멸한다”며 “이석연 체제를 받아들여야 된다”고 말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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