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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면 월급 줄돈 바닥난다” 요즘 中企 유행어 ‘부도 확진자’

중앙일보

입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온 노인복지시설인 경북 봉화푸른요양원.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온 노인복지시설인 경북 봉화푸른요양원. 연합뉴스

광고물 제조업체인 A사는 최근 무급휴가를 실시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일감이 줄어들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9명의 직원 중 절반만 출근한다. 출근한 인원들 역시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마찬가지다. 일감 자체가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70%가량 줄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가 직원 급여 등으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한 달 평균 4000만원꼴. 그나마 다음 달까지는 버틸 수 있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5월부터는 사업을 접어야 할 판이라고 했다.

이 회사의 이 모 대표는 12일 “중소기업들이 무급휴가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현실로 내몰리고 있다”며 “중기 경영자끼리 '우리는 부도 확진자'라는 씁쓸한 농담을 주고받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한상의, 정부에 적극적 경기부양 요청 

코로나19로 국내 소비와 수출이 동시에 둔화하면서 기업 규모와 업종을 떠나 전방위적으로 충격이 퍼지고 있다. 급기야 12일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는 ‘코로나19 경제적 충격 극복방안’ 긴급 건의안을 내놓았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9일 추가경정예산 규모를 기존 11조7000억원에서 40조원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한 데 이어, 보다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이 필요하다는 요청이다.

13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에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오른쪽)이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3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에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오른쪽)이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중소 수출기업 10곳 중 7곳 "수출 여건 나빠질 것"우려 

항공과 유통뿐 아니라 수출 길이 막힌 제조업체들의 상황도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312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확산 및 입국제한 관련 수출 중소기업 영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 10곳 중 7곳(70.8%)은 수출 여건이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상황이 예상보다 너무 안좋은 만큼 대한상의가 '총대'를 메고 정부에 보다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중소기업 지원 신청해도 두 달 가까이 걸려 

대한상의는 우선 현재 정부가 펴고 있는 금융지원책 등이 현장에선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선 지방자치단체가 중소기업 등을 위한 금융지원대책을 내놓아도 지역 신용보증재단 창구에서 개인보증을 요구하거나, 대출한도 초과 등을 이유로 지원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직원 3명과 함께 포장용 박스를 제작해 온 소상공인 B씨는 지난해보다 매출이 80%가량 줄어 최근 소상공인 지원창구를 찾았지만, 상담 대기 줄이 너무 길어 접수조차 못 했고, 이튿날에야 4시간을 기다리다 겨우 접수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출 심사에만 최대 2개월이 걸릴 수 있고, 대출 가능 금액도 두 달 뒤에야 알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한 달 내에 자금 지원을 받지 못하면 버틸 방도가 없다”고 했다.

어려움에 빠진 기업과 소상공인은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지만, 실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적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정책자금 신청이 시작된 지난달 13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정책자금 신청 건수는 11만988건(신청액 5조2392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실제 지원 규모는 1만217건(신청 대비 9.2%), 지원 금액은 4667억원(신청 대비 8.9%)에 그친다. 물론 정부도 지원대상 업종을 확대하고, 대출 금리를 낮춰주는 등의 조처를 하고 있지만, 아직 역부족이다.

업종별 지원책 세분화돼야 

우태희 대한상의 코로나19 대책반장(상근부회장)은 “코로나19의 경제적 충격이 매우 광범위하고, 심각하며, 장기화하고 있다”며 “업종에 따라 피해의 규모와 양상이 다른 만큼 지원책을 더 세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통업은 매장 방문객이 줄어든 대신, 생필품을 중심으로 온라인 주문이 급증한 만큼 현행 월 2회의 의무휴업일과 영업금지 시간(오전 0시~10시)에도 온라인 배송을 할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라도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 국제노선의 82%가 운항 중단 상태에 내몰린 항공업은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에서처럼 ‘사업용 항공기에 대한 취득세ㆍ재산세 면제’를 요청했다. 수출 취소 등으로 고통받는 해운업계를 위해선 항만임대료 인하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공기 지연 등으로 고통을 겪는 건설업계에는 공사 기간 연장 및 간접비 인하 등을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또 현재처럼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해서 무작정 공장을 세우는 방식도 재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24시간 공장을 돌려야 하는 정유ㆍ화학업계의 경우 확진자가 나와도 공장을 급격히 세우는 것보단, 추가방역 조치를 전제로 조정실 등 필수 시설들을 운영할 수 있도록 별도의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자료: 대한상공회의소

자료: 대한상공회의소

취약 계층 일자리 감소 고착화 우려도  

정부가 좀 더 선제적으로 나서 달라는 경제계의 주문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경제적 취약 계층을 더 아프게 때릴 것이란 우려에서 나온다. 실제 편의점 업계나 일부 호텔 등에선 아르바이트생이나 비정규직 직원들을 대거 해고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관광업계 고용지원금은 정직원에게만 적용되고, 프리랜서인 관광 가이드들은 당장 벌이가 끊겼는데도 지원금을 못 받는 상황이다.

이달 들어 서울 명동 같은 관광상권이나 공항 등에 위치한 편의점 점포의 경우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매출이 60% 이상 줄어든 상황이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인 만큼 정부가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해 보다 선제적으로 기업과 경제적 약자들을 지원해야 한다”며 “취약계층 일자리 감소 상태가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지속할 수 있어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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