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친구에도 단골에도 "없어요"…약사는 '마스크 없무새'가 됐다

중앙일보

입력

최근 약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마스크없무새' 그림. 자신들의 상황을 자조적으로 잘 보여준다는 평이 많다. [인스타그램 'ezikdabeen' 캡처]

최근 약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마스크없무새' 그림. 자신들의 상황을 자조적으로 잘 보여준다는 평이 많다. [인스타그램 'ezikdabeen' 캡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를 예방하기 위한 시민들의 마스크 구입 행렬도 좀처럼 줄지 않는다. 대구에서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된 뒤로 약국마다 줄을 서는 풍경은 일상이 됐다. 정부가 '공적 마스크' '마스크 5부제' 등의 대책을 꺼내들었지만 현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특히 약국에 있는 약사들은 마스크 대란을 매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들이 바라보는 '마스크'는 어떤 의미일까. 서울에 있는 황윤찬(35) 약사가 최근 몇주간 직접 경험한 바를 글로 정리했다.

최일선 현장 약사가 겪은 '마스크 대란'

지난달 뉴스는 코로나19 특집이었습니다. 마스크와 코로나는 늘 검색어 1위에 올랐습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처럼 좀 잠잠해질까 싶던 찰나, 이번달엔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습니다. 마스크는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비행기 티켓이 됐습니다. 점점 내려가던 마스크 판매율은 갑자기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국가가 직접 나서 5부제를 시행합니다. 좋은 제도도 처음엔 혼란을 빚기 마련이라지만, 다시 한번 약국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저도 심각한 몸살에 걸린 채 일을 합니다. 다행히 열은 없습니다.

요즘 연이어 친구들에게 연락이 옵니다. 오랜만에 오는 '카톡'입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아직 미혼입니다. 보통은 결혼을 알리는 소식이 주인데, 요즘은 마스크 '청탁'이 많습니다. 물론 품절 상황을 설명한 뒤 거절하면 친구들도 잘 이해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야박하게 구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하물며 매일 약국에 와서 대화를 나누는 단골손님은 어떨까요. 그분에겐 제가 얼마나 냉정하게 비쳐질지 감히 상상조차 안 갑니다. 너무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4일 서울 명동의 한 약국에 공적 마스크 매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뉴스1

4일 서울 명동의 한 약국에 공적 마스크 매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뉴스1

다른 손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긴 줄을 서고 금방 품절되는 마스크, 마지막 손님의 안도, 그 다음 손님의 허탈하면서도 절박한 표정, 마스크 판매를 마친 직원의 한숨…. 반복된 업무 속에 신경이 날카로워집니다. 이러한 일이 빨리 해결되길 기다리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뉴스에선 낫을 든 채 마스크를 달라고 약사를 협박한 손님도 나옵니다. 마스크 판매의 최일선에 있는 입장에선 충격적이진 않습니다. 마스크를 구입하는 게 다들 얼마나 간절한 지 매일 느끼고 있으니까요.

'약은 약사에게'. 모든 약국은 이 슬로건에 걸맞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유용한 존재가 될 수 있도록 공부를 하고, 처방전도 계속 검토해봐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약사들은 '앵무새'로 전락한 듯 합니다. 오죽했으면 약사 스스로가 '마스크없무새'라는 단어를 새로 만들면서 웃고 있습니다. '마스크 있어요?' '언제 들어와요?'라는 질문이 쏟아지니, 본인이 쓰는 마스크 앞에 대답을 매직으로 적어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약국문이 열리면 자동으로 마스크 안내 방송이 나오게 하는 약국도 있습니다.

저희 약국은 그나마 규모가 있는 편이라 전담 직원을 배치해 마스크 구입 창구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스크 대란 이전에 효율적으로 돌아가던 1인 약국, 2인 약국은 지금 일을 감당하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요즘 약사들의 응대가 불친절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환자는 한 번 물어본 내용이지만, 대답하는 입장에선 과장 없이 500번째 대답이 되곤 합니다. 어느 정도는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12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약국 앞에서 시민들이 공적마스크 판매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조끼를 입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관계자의 모습이 눈에 띈다. 연합뉴스

12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약국 앞에서 시민들이 공적마스크 판매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조끼를 입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관계자의 모습이 눈에 띈다. 연합뉴스

자동차 5부제는 특정 요일에만 자동차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해진 요일에만 구매할 수 있는 마스크 5부제는 불안함이 더 큽니다. 하루를 놓치게 되면 주말을 제외한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선지 마스크 문의와 대기줄은 이번주 들어 더 늘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마스크 값이 오르고, 마스크가 들어오면 1분만에 매진됐던 지난주와는 확실히 다른 듯 합니다. 조금 더 균등하게 분배되는 느낌이 듭니다.

오늘(12일)은 마스크가 오전 10시에 도착했습니다. 덕분에 10시부터 바쁜 오전을 보냈습니다. 제가 바라보던 마스크는 예전에는 그냥 '위생용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선의가 된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국민들이 모두 똑같은 선의를 받을 수 있기를, 모두 평등하게 보장받을 수 있기를, 안심하고 지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내일도 마스크를 또 공급하러 나갑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정리=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