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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건영이 불 지피는 재난기본소득, 10년 전 무상급식 재연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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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왼쪽)과 이인영 원내대표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차 코로나19 대응 당정청회의에서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왼쪽)과 이인영 원내대표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차 코로나19 대응 당정청회의에서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권에서 '코로나19 사태' 대책으로 제시된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연일 가열되고 있다. 11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친문 핵심 인사 등이 재난기본소득 필요성을 잇따라 주장하고 나섰다.

이낙연 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당·정·청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기본소득제라고 하는 기본의 재정운영 틀과 철학을 바꾸는 제도를 본격 도입하는 것이라면 추경을 통해 시작하는 것보다는 본격적인 논의와 검토를 거쳐서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말했다.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신중론'에 가깝지만, 논의 가능성은 열어놓은 발언으로 해석됐다. 이날 당·정·청은 방역과 경제피해 최소화를 위해 추경 증액과 지원사업 신설을 검토하기로 했다.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상황기획실장. [연합뉴스]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상황기획실장.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최측근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상황기획실장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재난기본소득 논란과 관련해 “기본적 취지에는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어 “야권이 선거용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다”는 진행자 물음에 “거리에 나가 국민들 5분만 만나 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얼마나 상황이 어렵고, 신속한 지원대책이 필요한지 잘 알 것”이라고 했다.

'친문(친문재인) 핵심' 김경수 경남지사가 지난 8일 "전국민 100만원 지원"을 주장한 이후 여권 내 재난기본소득 도입 요구는 불이 붙은 모습이다. 민주당 대구·경북 선대위원장인 김부겸 의원은 11일 "대구 소상공인 18만명에게 3개월간 월 100만원을 지원하자"고 했고, 부산 선대위원장인 김영춘 의원은 "생계위기에 처한 국민만을 대상으로 하는 '재난구조수당' 1인당 100만원 지급에 찬성한다"고 했다. 박주민 민주당 최고위원도 이날 "국민이 필요한 정책이면 열어놓고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재난기본소득 프레임, 선거에 나쁘지 않다"

민주당에서 재난기본소득 주장이 쏟아지면서 '총선 어젠다'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민주당은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3+1(무상보육·무상급식·무상의료+반값등록금) 정책’을 내걸어 당시 선거에서 상당한 효과를 거뒀다.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당시 선별적 복지정책인 저소득층 중심 무상급식 공약으로 맞대응했지만, 선거 결과 민주당이 광역지방자치단체장 7석을 얻어 6석을 얻은 한나라당에 승리했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민주당이 2010년 무상급식을 주도적으로 치고 나가자 한나라당이 반발해 대립점이 생기면서 '공약 흥행'이 이뤄졌다"고 했다. 이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선 민주당이 이번에는 재난기본소득을 앞세워 '2010년 무상급식 어게인'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2011년 8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서울 시청 브리핑룸에서 무상급식 관련 주민투표 결과와 관련해 사퇴 기자회견을 마치고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2011년 8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서울 시청 브리핑룸에서 무상급식 관련 주민투표 결과와 관련해 사퇴 기자회견을 마치고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이와 관련해 민주당 내 전략통으로 꼽히는 한 의원은 "야권이 반대하면 대립각을 세우고, 만약 찬성하면 이를 명분으로 시행하면 된다"며 "재난기본소득은 여당에 나쁘지 않은 프레임"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여권 내에선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 주를 이룬다. 재원과 행정비용이 만만찮고 현금복지의 전례가 되어 국가재정운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위 종합정책질의에서 "우리 재정여건이나 여러 가지를 볼 때 당장 찬성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국회에서 관련 질의에 “효과는 있겠지만 재정건전성, 재원 문제가 있다. 선택하기 어려운 옵션이다”고 말했다. 국회 복지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너무 나갔다가 좌초되면 정부·여당이 역풍을 맞는다"고 했다.

여권에선 '선(先) 추경, 후(後) 재난기본소득 공론화' 기조가 다수라고 한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재난기본소득 논의로 여야 전선이 형성되면 야당에서 추경 처리에 어깃장을 놓을 수 있다"면서 "현재로선 추경 통과가 최우선이고 재난기본소득은 그 후 여론을 봐가며 공론화 과정을 거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각기 다른 목소리 내는 통합당

지난 2일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재난기본소득을 두고 ‘과감성 있는 대책’이라고 표현했다. 황 대표는 “우리 경제에 특효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재해·재난이라는 국가적 위기에선 정부가 시장 활성화를 위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태 통합당 의원이 1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김용태 의원 페이스북 캡처]

김용태 통합당 의원이 1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김용태 의원 페이스북 캡처]

하지만 심재철 통합당 원내대표가 10일 "한마디로 4·15 총선용 현금 살포다. 포퓰리즘의 전형"이라고 지적하면서 이견을 드러냈다. 같은 당 김용태 의원은 “답은 기본소득이 아닌 감세”라고 주장했다. "무차별 현금살포가 아닌 가장 힘든 경제주체부터 확실하게 제대로 챙기는 것이야말로 경제 추락을 막는 진정한 정책”이라면서다.

권영진 대구시장의 주장은 또 다소 결이 다르다. "재난기본소득을 환영한다. 다만 전국민에 나눠주는 것은 구두선에 그쳐 정쟁으로 끝날 수도 있다"며 대구·경북 등에 대한 선별적 지원론을 폈다.

이처럼 통합당에서 제각기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두고 현재 통합당이 처한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통합당 당론은 ‘퍼주기식 현금복지’를 반대하는 것이지만 지역기반인 대구·경북(TK) 지역에 코로나19 피해가 쏠리면서 반대할 수만은 없는 곤혹스런 상황이라는 것이다. 통합당 한 관계자는 "야권도 마냥 반대하긴 어려운 사안"이라고 말했다.

박해리·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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