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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약국 번호표, 30분만에 소진···허탈한 마스크 5부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9일 오전 11시 50분쯤 서울 행당동 소재 한 약국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이 약국은 낮 12시부터 마스크를 판매했다. 정희윤 기자

9일 오전 11시 50분쯤 서울 행당동 소재 한 약국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이 약국은 낮 12시부터 마스크를 판매했다. 정희윤 기자

9일 오전 9시부터 30분여 동안 서울 성동구 응봉동의 한 약국엔 30명이 넘는 시민이 약국을 찾았다. 마스크가 입고되기도 전부터 1분에 1명꼴로 약국에 찾아 마스크 재고를 물었다. 이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는 “마스크가 아직 안 들어왔다”는 말만 반복해야 했다.
마스크 5부제 시행 첫날이다 보니 출생연도만 맞으면 마스크를 살 수 있다고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2006년생인 허모씨는 신분증이 없어 여권을 들고 약국을 찾았지만 마스크가 아직 약국에 입고되기 전이라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허씨는 “괜히 일찍 왔나 싶다”며 “밖에 나갈 때 쓸 마스크가 없다 보니 매주 월요일마다 약국에 들를 예정이다”고 말했다.

출생연도 끝자리에 따라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는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된 첫날, 약국들엔 사람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월요일인 9일은 출생연도 끝자리가 1과 6이어야만 약국에서 마스크를 살 수 있었다. 이를 알고 찾아온 시민부터 5부제 시행으로 인한 마스크 구매 가능 요일을 이해하지 못한 시민들까지 약국에 몰렸다.

"오늘 못 사면 1주일 기다려야"

서울 서초구의 한 약국도 이날 오전 8시30분에 문을 열고 청소를 시작하자마자 마스크를 찾는 손님이 몰렸다. 박범주(69)씨는 “51년생이기 때문에 월요일인 오늘 마스크를 꼭 사야만 한다”며 “오늘 마스크를 못 구하면 1주일은 마스크를 사지 못하는 게 아니냐”고 우려했다. 또 그는 “마스크가 언제 들어올지 몰라 수시로 약국을 들러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9일 오후 서울 행당동 소재 한 약국 앞에 오늘자 공적 마스크가 품절됐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정희윤 기자

9일 오후 서울 행당동 소재 한 약국 앞에 오늘자 공적 마스크가 품절됐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정희윤 기자

5부제에도 순식간에 동나

서울 성동구의 한 약국은 오전 7시부터 번호표를 나눠줬는데 30분 만에 준비한 번호표가 모두 소진됐다. 이 약국의 약사는 “생각보다 금방 번호표가 다 나갔다”고 말했다. 출생연도 끝자리를 제한해 판매하더라도 재고 소진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발만 동동거리는 손님도 보였다.

61년생 조모씨는 “지금 약국만 세 군데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다 마스크가 없다고 해서 큰일이다”며 “여분 마스크가 없는데 오늘 못 사면 다음 주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56년생 박병옥씨도 “마스크를 쓰고 싶어도 없어서 아예 쓸 수가 없다”며 “5부제 시행이라 당연히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매진이라니 당혹스럽다”고 토로했다. 그는 "대체 몇시에 약국에 가야 마스크를 살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출생연도 끝자리인지, 생일 끝자리인지…"

마스크 5부제 시행 첫날이다 보니 제도를 이해하지 못한 시민도 상당수 있었다.
35년생 황모씨는 약사에게 “신분증 남바(주민등록번호) 좀 봐 달라”고 하고 마스크 구매가 가능한지 물었다가 살 수 없다는 말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는 “아내 장애인등록증을 갖고 왔는데 내가 사 줄 수 있냐”고 물었으나 황씨의 부인은 40년생이라 금요일에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 약국의 약사는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며 “설명을 계속해드리는데 혹시 무작정 화내시는 분들이 있을까 봐 걱정이다”고 토로했다.
왕모(74)씨는 “뉴스를 보긴 했는데 이해를 못 하겠어서 신분증 들고 무작정 약국 와봤는데 다행히 살 수 있는 날이라고 한다”며 “태어난 날짜 끝자리로 치는 건지 출생연도 끝자리로 봐야 하는 건지 몰랐다”고 했다.

어린 자녀의 마스크 대리구매를 위해 주민등록등본을 챙겨 온 손님도 있었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김모(36)씨는 “5살 딸 마스크를 대리구매 했다”며 “56년생 어머니의 마스크도 같이 사려고 했는데 주민등록등본에 있어도 대리 구매가 안 된다고 하더라”고 했다. 대리구매 대상은 만10세 이하 어린이, 만80세 이상 노인으로 제한됐다.

서울 행당동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김모 약사는 “거동 불편한 어르신을 대리해 마스크를 사러 온 손님들이 많은데 주민등록상 같이 사는 게 확인이 돼야만 마스크를 드릴 수가 있어서 안타깝다”고 했다.

"판매 시각은 일정해야" 목소리 

약국에 마스크를 구입하러 온 이들 사이에서는 "마스크 공급 한계상 물량 부족은 어쩔 수 없더라도 판매 시각은 일정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컸다. 이날 마스크 구매가 가능한 출생연도인 91년생 직장인 최완수씨는 "일을 해야 하는데 하염없이 약국에서 기다릴 수는 없다"며 "약국의 마스크 판매 시각이 일정하면 스케줄을 조정해서라도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약국에 마스크를 오후 6시부터 선착순 판매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정진호 기자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약국에 마스크를 오후 6시부터 선착순 판매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정진호 기자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약국은 마스크 판매 시각을 자체적으로 오후 6시로 정하기도 했다 마스크가 입고되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손님들이 수시로 약국을 왔다 돌아가는 일이 생겨 시간을 정해놓고 판매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 약국의 약사는 "마스크가 몇시에 몇장이나 들어오는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최소한 오후 6시 전에는 입고된다"며 "판매시각을 정해놓으니 고객들은 헛걸음하지 않아서 좋고 약국 입장에서도 부담을 덜 수 있다"고 했다.

정진호·정희윤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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