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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한·일 상호 입국 통제… "도쿄 올림픽 특수 먹구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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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초치한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대사와 면담하기 위해 자리로 향하고 있다. [뉴스1]

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초치한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대사와 면담하기 위해 자리로 향하고 있다. [뉴스1]

9일부터 한ㆍ일 양국 간 이동이 사실상 전면 통제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이유로 상대방에 대한 입국 규제를 강화하면서다. 지난해 교역액 760억 달러(약 91조원)에 달하는 양국 간 경제 교류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외교부ㆍ법무부에 따르면 이날 0시부터 한ㆍ일 양국 간 사증(비자) 면제가 중단됐다. 관광 목적 등 90일간 단기 체류의 경우 서로 면제한 비자를 이달 말까지 중단했다. 이미 발급한 비자 효력도 정지했다. 일본에 입국하더라도 지정장소에서 2주간 격리를 거쳐야 한다.

일본은 지난해 기준 한국의 3위 교역국이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한 국가(지난해 558만명)이기도 하다. 국내 방문한 일본인(327만명)도 중국 다음으로 많다. 인적 교류 중단은 지난해 7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이후 꽁꽁 얼어붙었다가 연말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겨우 대화의 물꼬를 튼 상황에서 경제에 악재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일 주재한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인적 교류뿐만 아니라 교역 및 투자 등 경제활동에 제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단기적으로는 큰 영향이 없을 전망이다. 양국 조치가 사람의 이동을 제한하는 것이어서 당장 수출입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한국과 거래하는 일본 기업 다수가 합작ㆍ자회사 형태로 한국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고, 우리 기업도 일본에 법인을 둬 소통에는 문제가 없다. 특히 지난해 일본의 수출 규제를 계기로 우리 기업이 꾸준히 핵심 소재ㆍ부품 수입 다변화를 확대해왔기 때문에 만일의 상황에 따른 준비도 돼 있다.

하지만 장기화할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대(對)일 의존도가 높고 초기 설치부터 유지ㆍ정비까지 긴밀한 협업이 필요한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업계가 사업 차질을 우려한다. 한 디스플레이업체 관계자는 “장기 계약한 물량이 많아 당장은 영향이 없더라도 현지 출장길이 막히면 긴급 수요에 대처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한 전자업체 관계자는 “7월 ‘도쿄 올림픽’ 특수를 기대했는데 올림픽이 열릴지조차 불투명하다”며 “현지 마케팅에 돌입한 상황에서 현지 업체와 만나 구체적으로 협의하는 데 지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지 주재원이 있거나 화상회의 시스템을 잘 갖춘 대기업은 그나마 낫다. 인프라가 부족한 중소기업이 더 난감하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수출을 진행하려면 최종샘플 시연, 인허가 취득같이 현지에서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있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며 “현재 거래를 유지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지만 새로운 거래처를 뚫거나 설명회를 여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에 발이 묶였다”고 털어놨다.

상대적으로 일본보다 아쉬운 건 한국이다. 한일 국교를 정상화한 1965년부터 지난해까지 55년 동안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 누적액은 총 6237억 달러(약 742조원)에 달한다. 그동안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지난해 무역수지 적자 1위 국가도 일본(191억6300만 달러ㆍ약 22조8000억원)이다. 2~4위가 사우디ㆍ카타르ㆍ이란 같은 산유국이란 점을 고려하면 일본이 ‘대체 불가능한’ 무역국이란 점을 알 수 있다.

일본과 교역에서 적자가 큰 데는 기술력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산업의 몸집을 키워왔지만, 소재ㆍ부품 기술력은 여전히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대부분 장시간 축적한 기술력이 있어야 하는 제품으로, 일본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압도적이다. 안 그래도 지난해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 국가(수출우대국)에서 제외하면서 반도체 핵심 소재 등 일본으로부터 전략 물자 수입이 빡빡해졌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소재ㆍ부품을 수입해 중간재로 가공한 뒤 중국에서 최종 생산하는 경우가 많다”며 “입국 제한 조치가 장기화할 경우 수출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일본 언론도 경제 타격을 우려하고 나섰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이번 조치가 중국ㆍ한국 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대폭 제한해 감염 확산을 줄이려는 목적이지만 왕래 제약이 폭넓다”며 “경제 등에 큰 혼란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지난해 일본에 입국한 외국인 중 중국인이 742만명으로 가장 많고, 한국인은 534만명으로 두 번째”라면서도 “경제 활동이나 관광업의 타격이 불가피하지만, 국내 감염 확대를 우선했다”고 분석했다.

한ㆍ일 통상당국은 10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제8차 한ㆍ일 수출관리 정책 대화를 영상회의로 대체했다. 지난해 12월 일본 도쿄에서 7차 정책 대화를 연지 약 3개월 만이다. 지난해 대화에서 구체적인 성과가 없었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이번 대화를 기다려왔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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