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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중 경기 통해 팬의 소중함 확실히 느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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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코로나19로 프로농구 정규리그가 중단된 가운데 DB 허웅(왼쪽)과 KT 허훈 형제가 트레이닝 센터에서 함께 훈련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코로나19로 프로농구 정규리그가 중단된 가운데 DB 허웅(왼쪽)과 KT 허훈 형제가 트레이닝 센터에서 함께 훈련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8일 서울 청담동 S 퍼스널 트레이닝 센터.

코로나19 휴식중인 허웅·허훈 #프로농구 쉬지만 자체 훈련 계속 #떠난 외인선수, 인간적으로 이해 #부친 허재 아들들에 책임감 강조

“어휴! 1시간이 5시간처럼 느껴져.”(원주 DB 허웅·27) “현기증 날 것 같아. 그래도 형이랑 하니까 버틸만하고 재밌네.”(부산 KT 허훈·25)

형제는 전갈 자세와 이구아나 자세를 번갈아 반복했다. 동물의 동작을 따라 하는 ‘애니멀 플로우’라는 건데, 동적인 상황에서 몸을 컨트롤하는 훈련이다. 형제 표정은 이내 일그러졌다. 이어 “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프로농구 정규시즌이 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중단됐다. 4주간 쉬고 29일 재개될 예정이다.

예정에 없던 휴가가 생겼지만 쉴 수는 없다. 휴가 끝은 곧바로 시즌 재개이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건 훈련뿐이다. 형제는 지루함도 덜 겸 함께 훈련한다. 했다. 조승무 트레이너는 “웅이는 중학 3학년, 훈이는 중학 1학년 때부터 꾸준히 훈련해왔다. 잘 되는 선수에게는 다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허웅과 허훈 형제는 전갈 자세와 이구나아 자세를 반복했다. 동물의 동작을 따라하는 애니멀 플로우다. 우상조 기자

허웅과 허훈 형제는 전갈 자세와 이구나아 자세를 반복했다. 동물의 동작을 따라하는 애니멀 플로우다. 우상조 기자

허훈은 오랜만의 외출이다. 전주 KCC 선수단은 KT전을 하루 앞둔 지난달 28일 코로나19 확진자와 같은 호텔에 묵었다. 이를 모르고 경기를 치른 양 팀 선수단은 한동안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허훈은 “원래 KCC 경기가 끝나면 부산으로 이동이었다. 수원 숙소로 가서 격리 생활을 했다. 다행히 모두 건강하다”고 말했다.

KT 구단은 선수들에게 휴가를 주면서 7일까지 외출 자제를 권고했다. 8일 허훈은 형과 함께 운동하러 나왔다. 허웅은 “집에서 쉴 수도 있지만, 동생과 함께 컨디션 조절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컨디션 조절이라 하기에 훈련은 다소 ‘빡셌다’(빡빡했다). 형제는 1시간 동안 ‘빡세게’ 몸을 움직이며 땀을 흘렸다.

허웅(오른쪽)과 허훈(왼쪽)은 각각 중학 3학년, 중학 1학년 때부터 조승무 트레이너를 찾아가 꾸준히 훈련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허웅(오른쪽)과 허훈(왼쪽)은 각각 중학 3학년, 중학 1학년 때부터 조승무 트레이너를 찾아가 꾸준히 훈련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한창이던 리그가 중단된 데 대해 형제는 선수로서 어떻게 생각할까. 허훈은 “선수들이 많이 걱정했다. 무조건 중단한 건 잘한 것”이라고 말했다. 허웅도 “같은 생각이다. 그나저나 리그가 재개되면 외국인 선수가 떠난 팀은 많이 불리하다”고 말했다.

허훈의 팀 동료였던 KT 외국인 선수 더햄과 멀린스는 지난달 “코로나가 무섭다”며 한국을 떠났다. 허훈은 “우리 팀이 3연승 중이었다. 더햄이 떠나도 멀린스가 골 밑에서 비벼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달 27일) SK전을 앞두고 멀린스가 버스에 안 탔다. 이어 ‘멀린스가 집에 간다더라’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허웅과 함께 뛰던 DB 오누아쿠와 그린도 ‘코로나19 상황이 호전되면 돌아오겠다’며 최근 미국으로 돌아갔다.

허웅은 “미국이 한국의 코로나 위험 국가 단계를 올릴 경우 귀국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더라. 가족도 걱정을 많이 한다던데, 선수를 떠나 인간적으로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허웅이 “외국인 선수들이 국내 선수를 불러 ‘1년간 너무 좋았다’고 했다”고 전하자, 허훈은 “우리 (외국인 선수)는 말도 없이 가버렸어”라고 말했다.

허훈은 올 시즌 프로농구 최초의 20점 20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형 허웅은 SK전에서 홀로 35점을 몰아쳤다. 우상조 기자

허훈은 올 시즌 프로농구 최초의 20점 20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형 허웅은 SK전에서 홀로 35점을 몰아쳤다. 우상조 기자

외국인 선수가 모두 빠진 KT는 SK와 KCC에 대패했다. 허웅은 “KT 선수들이 안쓰러웠다. KT의 상대 팀은 외국인 선수에게 다 띄워주더라. 외국인 선수가 떠난 게 구단 책임도 아닌데 불공평하다. 리그가 재개되면 외국인 선수가 남은 팀은 다 순위가 올라갈 거다. 부상도 참아가며 뛰었는데, 순위가 내려가면 억울할 것 같다”고 말했다. DB 외국인 선수의 복귀도 그때가 돼봐야 할 것 같다. 공동 선두인 서울 SK의 헤인즈와 워니도 복귀를 약속하고 귀국했다.

허훈은 지난달 9일 프로농구 최초의 20점-20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맹활약하며 최우수선수(MVP) 후보로 거론됐다. 허훈은 “(외국인 선수가 떠난 뒤로) 기록이 쭉쭉 깎였다. 국내 선수 득점 순위도 2위로 밀렸다. 이제 내려놓았다”며 웃었다. 국내 선수로만 잔여 시즌을 치르거나, 플레이오프를 축소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요즘 예능에서 활약 중인 허재 전 농구대표팀 감독과 장남 허웅과 차남 허훈. [중앙포토]

요즘 예능에서 활약 중인 허재 전 농구대표팀 감독과 장남 허웅과 차남 허훈. [중앙포토]

허재(55) 전 농구대표팀 감독은 현재 상황에 대해 뭐라고 했을까. 허웅은 “아버지가 중계권과 스폰서십을 고려하면 시즌을 아예 끝내기는 힘들 거로 전망하셨다. 그러면서 ‘리그 재개되면 책임감을 갖고 뛰라’고만 하셨다”고 전했다.

이상범(51) DB 감독은 얼마 전 “허웅과 허훈이 허재 형한테서 좋은 몸을 받았다. 형이 하루만 더 집에 들어가서 아들 하나 더 낳았다면”이라고 말했다. 허훈은 “우리 형제가 5명이었어도 다 농구를 했을 거다, 이 감독님이 말씀을 재미있게 하신다. 김승기 KGC 인삼공사 감독님도 KT에 지면 ‘허훈한테 졌다’고 말씀하신다”며 웃었다. 허웅도 “김승기 감독님이 ‘훈이는 우리와 (경기)하면 잘하고, 웅이는 우리와 하면 다치고. 제발 그만 좀 다쳐라. 나 네 아빠한테 죽는다’고 농담하셨다”고 소개했다.

무관중 경기를 해 본 허훈은 “진짜 경기할 맛 안 난다. 아무 소리가 안 들리니 뭐 하고 있나 싶었다. 팬의 소중함을 확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허웅은 “3주 후에는 꼭 코로나가 사라져 팬들 앞에서 경기하고 싶다. 아버지 말씀처럼 책임감 갖고 뛰겠다”고 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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