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때처럼 한시 규제를…‘주가 뇌관’ 공매도 도마에

중앙선데이

입력 2020.03.07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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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6호 15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증시 하락이 뻔히 보이는 만큼 일반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해야 한다” “국가적 비상 상황인 만큼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공매도를 금지해야 한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공매도 금지 관련 글이다. 코로나19 공포로 코스피가 급락세를 보이자 공매도(空賣渡) 금지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주식시장 안정을 위해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련 규제가 이미 다른 나라보다 강하므로 추가 규제는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코로나 증시, 주가 하락 잇단 베팅
두 달 새 두 배 넘어 개미들 공포

거래량 늘리고 과열 억제 효과도
금융위는 “이미 규제 강해” 신중

개인도 주식 쉽게 빌리게 하고
불법 무차입 공매도 처벌 강화를

#공매도는 주식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와 우선 판 뒤, 주가가 떨어지면 싼값에 사서 갚는 투자 방식이다. 주가 하락폭 만큼 수익이 생기는 것으로, 국내뿐 해외에서도 쓰는 투자 기법이다. 하지만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특성상 공매도가 늘면 시장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국내에선 특히 공매도가 사실상 자본·정보력을 갖춘 기관·외국인의 전유물로 변질돼 공매도가 급증하면 정보력이 떨어지는 개인투자자가 느끼는 공포감은 더 크다.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요즘이 딱 그렇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일평균 공매도 거래액은 5091억원으로, 지난해 12월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가팔라진 2월 마지막 주만 놓고 보면 일평균 공매도 거래액이 7779억원에 이른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시장에서 공매도의 선행지표로 여기는 주식대차거래잔액도 증가 추세다. 대차잔액은 주식을 빌린 뒤 갚지 않고 남아 있는 상태의 주식평가액이다. 지난달 말 기준 대차잔액은 60조1689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조6000억원가량 증가했다. 이는 일본의 수출 규제와 미·중 무역갈등으로 증시가 폭락한 지난해 8월(58조2068억원)을 넘는 수준이다. 한시적 공매도 금지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과 같은 하락장에선 공매도가 패닉셀링(투매)을 일으켜 개인투자자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도 공매도를 할 수는 있지만 주식을 빌리기가 쉽지 않다. 기관과 외국인은 한국예탁결제원의 주식 대차 시스템에서 언제든 다른 기관의 주식을 빌릴 수 있다. 개인은 한국증권금융에서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아 높은 이자를 부담해야 해서 접근이 쉽지 않다. 지난해 전체 공매도 거래액 103조원 가운데 개인투자자 비중은 1.1%(1조원)에 그쳤다. 외국인 비중은 62.8%(65조원), 기관 비중은 36.1%(37조원)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에서도 공매도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병욱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최근 국회 금융위원회에 “투자자 심리 안정 차원에서 한시적 공매도 금지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내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당시 한시적 공매도 금지 조치를 시행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보의 불균형 문제 등을 해소할 없기 때문에 한시 금지가 아니라 아예 폐지하는 게 시장 건전성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개인투자자의 불만이 커지자 금융감독원은 최근 홍콩처럼 공매도 가능 종목을 일정 기준에 따라 지정하는 ‘공매도 가능 종목 지정’ 제도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홍콩 증시에서는 시가총액이 30억 홍콩달러(약 4500억원) 이상이면서 12개월 회전율(주식 보유자가 바뀌는 비율)이 60% 이상인 종목 등만 공매도가 가능하다. 홍콩은 수시로 지정 종목을 점검해 변경하는데, 지난해 10월 기준 공매도 가능 종목은 전체의 29.2%(712개)에 그친다.

하지만 공매도 규제를 지금보다 강화하는 것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이미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규제가 강한 편이기 때문이다. 당장 공매도 가능 종목 지정제 도입 여부를 결정할 금융위원회가 신중한 반응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홍콩 외에는 이 제도를 도입한 곳이 없고,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기관 투자자의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매도에 대한 순기능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공매도는 거래량을 늘려 시장의 실탄인 유동성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 과도한 주가 상승을 억제하는 자연스런 통제장치 기능도 있다. 지난해 여름 주가가 폭락한 신라젠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시장에선 임상 실패 가능성을 반영한 공매도가 없었다면 주가가 더 올라 개인 투자자의 피해 또한 더 컸을 것으로 본다. 당시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도 “공매도가 없었으면 거품이 더 크지 않았겠느냐”고 언급하기도 했다. 공매도를 금지한다고 해서 주가 하락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매도를 금지한 2008년과 2011년 코스피는 각각 3.4%, 12.1% 떨어졌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규제보단 개인투자자도 공매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야 한다”며 “일본처럼 공적 성격의 금융회사를 만들어 개인 투자자에게도 주식 대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고려할 만 하다”고 말했다. 미공개 중요 정보 이용 행위나 무차입 공매도(주식을 빌리지 않고 공매도를 하는 행위)와 같은 불공정 행위에 대한 제재 강화 필요성도 제기된다. 임현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부연구위원은 “전산상의 조작 등을 통해 무차입 공매도가 이뤄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사건이 반복돼 발생하고 있다”며 “이 같은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징벌적 처벌과 재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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