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물려주려 외갓집 모였는데···화마가 앗아간 7세 4세 아이들

중앙일보

입력 2020.03.04 21:36

업데이트 2020.03.04 22:14

4일 서울 강동구 한 상가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숨진 어린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발이 남겨져 있다. [연합뉴스]

4일 서울 강동구 한 상가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숨진 어린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발이 남겨져 있다. [연합뉴스]

서울의 상가주택에서 불이 나 어린이 3명이 숨졌다. 어른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참변을 당했다.

4일 서울 강동소방서와 강동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2분 강동구 고덕동 상가주택 3층 한 가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3층에는 두 가구가 있다. 4층 주민이 “아래층에서 불이 났다”고 신고했고, 출동한 소방당국(소방차 23대·소방관 84명 등)은 화재 발생 19분 만에 완전히 진화했다.

불난 집은 전부 탔다. 건물 입구로 들어가니 3층까지 올라가는 계단이 물과 재로 뒤덮여 질척했다. 건물 외부에서 보니 외장재는 말끔했다. 불이 건물 전체로 번지기 전에 꺼졌다는 의미다.

"이웃들 문 열려고 했지만 열리지 않아"

집 안 거실에서 함께 발견된 A군(4)과 B양(7), C양(4)은 전신에 2~3도 화상을 입은 채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모두 숨졌다. 경찰은 사인을 질식사로 추정하고 있다. 여자 아이들은 자매 사이고 이들과 A군은 이종사촌이다.

화재 진압 과정을 지켜본 박모(90)씨는 중앙일보에 “소방관이 들어갈 때 B양 자매의 엄마로 추정되는 여성이 ‘애들 끌어내 주세요’라고 악을 썼다”며 “너무 끔찍했다”고 말했다. 다른 이웃은 “이웃들이 불난 집 문을 열려고 했지만 열리지 않아 답답했다”고 말했다.

화재 발생 주택 입구 [연합뉴스]

화재 발생 주택 입구 [연합뉴스]

외할머니 전기난로 켜놓고 나간 사이…

아이들은 외할머니 집에 머물다 변을 당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사고 당시 외할머니는 전기난로를 켜 놓은 채 잠시 외출 중이었다. B양 자매의 어머니도 부재중이었다.

소방당국은 불이 난 집 안에 전기난로가 있었던 점과 “화재 직전 난로가 엎어진 것 같다”는 유족 진술 등을 토대로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화재 건물 1층에서 택배 사무실을 운영하는 최모(59)씨는 “불이 났을 때 사무실 안에 있었는데 유리창이 ‘팡’ 하고 깨지는 소리가 났다”며 “밖으로 나와서 보니 연기가 많이 나고 있었다”고 전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만일 전기난로가 진짜 넘어졌다면 열기 때문에 바닥에 불이 났을 수 있다”며 “화재가 많이 진행되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이 사망한 것을 보면 사인은 유독 가스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사고 주택 바닥이 폴리에스터 소재의 장판이었다면 단기간에 유독가스가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경찰에 따르면 두 자매의 어머니는 이사를 앞두고 아이들 옷을 큰 언니 자녀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두 아이와 함께 외할머니 집에 들렀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난로가 넘어지면서 방에 쌓아 둔 옷들에 불이 붙어 유독가스가 퍼졌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정확한 사건 경위는 이르면 5일 밝혀질 전망이다. 경찰 관계자는 “유족이 충격을 받아 조사받기를 힘들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5일 오전 합동감식을 실시할 예정이다. 부검 여부는 합동감식 결과를 지켜본 뒤 유족·검찰과 협의해 결정할 예정이다.

화재 현장의 모습. [연합뉴스]

화재 현장의 모습. [연합뉴스]

신종코로나로 어린이집 닫은 영향 있나

아이들이 외할머니 집에 모인 이유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문이라는 언급도 나왔다. 사고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숨진 아이들이 최근 신종코로나 확산으로 어린이집에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이웃은 “원래 아이들은 주말에만 보이다가 최근에는 평일에도 보였다”며 “신종코로나 사태의 영향으로 보인다”고 안타까워했다.

김민중·정희윤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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