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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물론 신천지도 문제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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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무신론자인 내가 간증 영상까지 찾아보게 되다니.” “이건 종교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다.” 신흥종교 신천지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신천지 아웃’ 운동을 펴고 있는 CBS 유튜브 영상들에 달린 댓글들이다. 신천지에 빠져서 학업·직장을 관두거나 가출·이혼으로 가정이 파괴된 사례, 정체를 숨기고 친밀함의 덫을 놓는 교묘한 전도 방식, 교주를 신격화하는 비이성적 맹신 등이 충격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감염의 진원지로 지목된 신천지는 특유의 비밀주의·폐쇄주의로 방역 당국의 협조 요청에 수세적으로 대응해 더욱 공분을 샀다.

신흥 종교 해악 차단해야 하지만 #극단적 악마화도 방역 도움 안 돼 #기성 교회 자기 성찰도 필요한 때

신자가 24만 명이 넘는다는 신천지는 신도의 30~40%가 대학생 등 청년이라는 특성도 있다. 질병관리본부도 코로나19 확진자 중 20대가 29%로 가장 많다며 이를 “신천지 청년 신자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2일). 젊은 종교 인구의 급감이라는 현실에서 이례적인 현상이다. 전도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신천지가 애초부터 전도에 전념할 시간·건강·열정이 있는 청년층을 집중 전도 대상으로 공략한 결과다. 신천지는 맞춤형 심리상담·설문조사 등으로 마음을 얻으며 접근한다는데,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고민·상처가 많은 젊은이들이 속수무책이었을 것 같아 안타깝다.

신천지는 정치 쟁점으로도 부상하고 있다. 지자체장들이 신천지에 대한 강공에 나서며 선명성 대결을 벌였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살인죄’ 등으로 고소했다. 그러나 방역에 비협조적이라고 ‘살인집단’으로 ‘악마화’하는 방식에는 위험성도 있다. 일부러 바이러스를 퍼뜨리지 않는 한 그들도 보호받아야 할 국민이고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방역 당국 역시 경쟁적인 ‘검찰 수사’ 촉구가 신도들을 더욱 지하로 숨게 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방역에 총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신천지 때려잡기’ 모드 전환이라, 정부의 방역 실패를 물타기하려는 정치적 노림수란 의심도 나온다.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은 사과 기자회견을 하면서 보란 듯이 ‘박근혜 시계’를 차고 나와 정치 쟁점화에 기름을 부었다.

CBS 다큐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 등에 따르면, 신천지에 빠지는 사람은 대부분 기존 교회에 비판적이고 ‘말씀’ 공부에 목마른 기성 신도들이다. 7개월간 하루 세 시간씩 주 4회 교리 공부를 하고 시험을 통과해야 신천지 입교가 가능하다. 이 같은 종교적 열정을 기성 교회가 채워주지 못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다큐는 ‘헌금과 전도만 강조하는 교회, 교리보다 기복신앙에 매몰된 교회, 공공성 대신 몸집 키우기에 급급한 성장제일주의’가 신천지란 괴물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유아적 신앙과 깊은 신앙을 혼동하는 ‘반지성주의’도 한몫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UCLA) 옥성득 석좌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전도와 행동을 내세우는 대형 교회라는 토양이 있었기 때문에 신천지가 배태될 수 있었다. 국내 대형 개신교회와 신천지 간 차별성이 적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역설적으로 보여주듯 아직도 교회는 한국 사회에서 성업 중이다. 일부 근본주의적 교회들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극우 정치의 선봉에 서 있다. 초대형 교회의 담임목사직 부자 세습이나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탈세·횡령 등 비리, 목회자의 성적 타락은 어떠한가. 정치권력과의 유착이란 문제도 있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주일예배를 줄이자는 사회적 요청에 “전쟁 중에도 예배를 멈춘 적이 없다”고 답한 것은, 교회 밖 사람들에게는 “코로나는 신천지의 급성장을 저지하려는 마귀의 짓”(이만희), “예배에 오면 주님께서 바이러스를 물리쳐 주실 것”(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이란 광신의 언어와 별 차이가 없다. 지금은 ‘국민 밉상’ 신천지만 문제가 아니다. 더 크고 본질적인 의문에 기성 교회가 답해야 한다. 진짜 교회의 자리는 어디여야 하는지, 신천지를 이단으로 맹폭할 때 자기반성은 필요 없는지 묻고 싶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