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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긱(Gig) 워크' 시대, 즐길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영재의 은퇴와 Jobs(64)  

김희철(50세)씨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광고회사에서 15년간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초년병 시절에는 기라성 같은 선배들 아래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 수많은 밤을 하얗게 새면서 다양한 분야의 광고 카피를 썼고, 능력도 인정받았다. 경력이 쌓이면서는 광고 카피를 쓰는 것뿐만 아니라 영상, 그래픽, 음향, 마케팅까지 고민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전반적인 제작을 총괄하는 위치까지 성장했다.

하지만 40대 중반이 되면서 본인의 한계도 느꼈고, 조직의 부품으로 전락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독립했다. 처음에는 프로젝트별로 계약해서 프리랜서로 활동했으나,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만 살아가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계절적인 영향도 있었고, 수입이 불안정했다. 김씨는 본인의 잘하는 글 쓰는 능력과 관련된 일을 찾기 시작했다.

먼저 1인 출판사를 차렸다. 직원을 고용하지 않고 본인이 출판 시장의 흐름에 맞춰 도서를 기획하고, 필요한 작가와 출판디자이너 등을 섭외해 작업팀을 구성한다. 일정 기간 책을 출간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들은 출판업계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실력자들이다. 함께 모일 시간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작가는 완성된 원고를 김씨의 클라우드에 올리고, 편집자는 그 내용을 확인해서 편집한다. 디자이너는 필요한 작업을 해서 그 결과물을 다시 클라우드에 올린다. 일련의 작업을 끝낸 후 김씨가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그 내용을 인쇄소에서 다운받으면 한권의 책이 만들어진다. 그 후 참석자들에게 소정의 대가를 지불하면 된다. 김씨는 사무실도, 직원도 필요 없다. 다행히도 몇 권은 시장에서 반응이 좋아서 김씨의 수입도 짭짤하다.

프리랜서 김씨는 카피를 쓰고, 책을 출간하고, 자서전을 대필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자서전에 대해 강의하는 일련의 활동이 너무나 즐겁다. 비록 불안정하고 보장된 것은 없지만, 40대 중반에 일찍 시작한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다. [사진 Pixabay]

프리랜서 김씨는 카피를 쓰고, 책을 출간하고, 자서전을 대필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자서전에 대해 강의하는 일련의 활동이 너무나 즐겁다. 비록 불안정하고 보장된 것은 없지만, 40대 중반에 일찍 시작한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다. [사진 Pixabay]

김씨는 자서전 대필 작업도 한다. 본인의 자서전을 만들고 싶지만 글 쓰는 능력이나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관련된 자료를 모아서 만들어준다. 물론 저자로 이름을 남길 수는 없지만 김씨의 능력을 살려서 수입도 올릴 수 있고, 책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도 느낀다.

자서전 대필 경험을 살려서 백화점 문화센터에 자서전 쓰기 강좌를 개설했다. 3개월 동안 수강생들이 살아온 삶을 정리하게 하고, 내용을 구조화시키고, 바른 글을 쓰는 방법을 강의한다. 강의가 끝난 후 본인이 출판을 원하면 출판사 소개 등 일련의 서비스를 추가로 제공한다. 물론 무료는 아니다. 필요한 경비를 받는다.

김씨는 카피를 쓰고, 책을 출간하고, 자서전을 대필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자서전에 대해 강의하는 일련의 활동이 너무나 즐겁다. 김씨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록 불안정하고 보장된 것은 없지만, 40대 중반에 일찍 시작한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다.

요즘 긱 이코노미(Gig Economy)가 만들어 낸 일자리를 의미하는 긱 워크(Gig Work)에 대한 관심이 많다. 4대 보험이 되는 안정적인 정규직이나 평생직장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긱 워크는 항상 연주자를 동행할 수 없는 재즈보컬리스트가 뉴욕 맨해튼에서 주말 공연을 잡았을 때, 그곳에 있는 실력 있는 연주자와 주말에만 공연하는 것으로 계약하고 공연 후 다시 뿔뿔이 헤어지는 형태의 계약을 말한다. 이렇게 단기 연주 계약을 맺은 연주자를 ‘긱(Gig)’이라고 불렀다. 긱 이코노미는 기업이 필요에 따라 단기 계약직이나 임시직으로 인력을 충원하고 대가를 치르는 형태의 경제를 의미한다.

청년 채용에 있어서도 대기업은 정기 공채에서 필요한 시점에 직원을 채용하는 수시 채용의 비율이 높아졌고, 정규직 채용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 중장년 반퇴세대는 더 불리하다. 구직시장에서 나이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고, 중장년 일자리 대부분이 단순 노무직, 기계장치조립임을 고려할 때 불리한 상태에서 원하지 않는 일에 종사하는 것보다는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서 내가 좋아하는 일이나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미국의 프리랜서 구인·구직 기업과 미국프리랜서협회가 공동으로 조사한 ‘Freelancing in America 2018’에 따르면 2018년 미국 전체 노동자의 3명 중 1명(35%)인 5670만명이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또 장기적으로 경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프리랜서를 선택한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전업 프리랜서로 가지 못하는 이유는 수입이 예측 안 됨,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 수도 있음, 건강보험이나 유급휴가 등 회사가 제공하는 혜택을 포기해야 함, 먹고 살 만큼 일거리가 있을지 의문임, 일거리 찾기가 어려움 등으로 나타났다.

중장년 반퇴세대는 경제 활황기인 1980~1990년대에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은연중에 정규직과 평생직장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다. 2020년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 두려움이 많고 아쉬운 것도 많겠지만, 과거에 누렸던 것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다양한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

한국은퇴생활연구소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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