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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안가리고…코로나에 뚫린 '공포의 여의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치와 금융의 중심지 여의도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뚫렸다. 여의도에 자리잡은 수백개 기업과 수십만 직장인들은 코로나 공포에 긴장하고 있다.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수출입은행 본점에서 비상근무를 위해 출근한 직원들이 방호복과 마스크 등을 착용한 뒤 건물 내 비상 근무 지정 장소로 들어가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본점 직원의 코로나19 확진 판정으로 건물 전체를 폐쇄했다. 연합뉴스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수출입은행 본점에서 비상근무를 위해 출근한 직원들이 방호복과 마스크 등을 착용한 뒤 건물 내 비상 근무 지정 장소로 들어가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본점 직원의 코로나19 확진 판정으로 건물 전체를 폐쇄했다. 연합뉴스

국책은행ㆍ국회 있는 서여의도 '비상'

28일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서울 여의도 내 수은 본점 직원 1명이 전날 코로나19 확진 통보를 받았다. 이 직원은 발열이나 호흡기 증세를 동반하지 않은 오한 증세를 느껴 지난 26일 퇴근 후 코로나19 검진을 받았고, 하루 뒤인 27일 최종 확진 판명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전경. 임현동 기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전경. 임현동 기자

수은은 즉시 비상업무계획(BCP)을 가동했다. 해당 직원의 확진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본점 전체를 폐쇄하고 방역 작업을 실시했다. 800여명의 본점 직원들에겐 28일 재택근무를 하도록 지시했으며, 주말 이후 본점 근무를 정상 재개한다는 계획이다.

수은으로부터 직선으로 400m 거리에 있는 국회도 며칠 전 코로나19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지난 19일 오후 4시 국회 내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했던 하윤수 한국교총 회장이 23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실이 알려져서다. 국회사무처는 지난 24일 오후부터 국회 청사를 24시간 폐쇄하고 긴급 방역을 실시했다. 국회도서관도 임시 휴관에 들어갔다.

유동인구 많은 동여의도, 공사현장·쇼핑몰 폐쇄

수은과 국회는 여의도공원을 기준으로 서쪽인 '서(西)여의도'에 위치했다. 그 반대편, 증권가와 주거지가 밀집한 '동(東)여의도' 역시 안전하지 않다. 동여의도에서도 이미 확진자가 한 차례 발생했고, 확진자의 방문으로 대형 쇼핑몰 전체가 폐쇄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여의도공원을 중심으로 동여의도와 서여의도로 나뉘는 여의도 사진. 네이버 지도 캡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여의도공원을 중심으로 동여의도와 서여의도로 나뉘는 여의도 사진. 네이버 지도 캡처

동여의도 내 가장 많은 큰 오피스 건물이자 가장 많은 유동인구가 몰리는 국제금융센터(IFC)는 28일 오후 4시부터 쇼핑몰인 IFC몰을 임시 휴점했다. 이날 오후 2시 30분에 영등포구청으로부터 코로나19 확진자인 한국수출입은행 직원이 IFC몰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통지받은 데 따른 결정이다. IFC몰 홍보대행사 측은 "확진자의 구체적 동선과 접촉자 등은 보건당국에서 역학 조사 중"이라며 "몰 내부와 지하철 연결통로까지 몰 전체 방역을 마친 뒤 관계기관 확인을 거쳐 3월1일 정상 영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IFC에서 입주사들을 대상으로 28일 배포한 안내문. 독자 제공

IFC에서 입주사들을 대상으로 28일 배포한 안내문. 독자 제공

이뿐 아니다. IFC몰 바로 옆에 건축 중인 '여의도 파크원' 건설 현장에서는 지난 27일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포스코건설 등에 따르면 이 확진자는 파크원 현장사무실에서 현장관리업무를 하고 있는 본사 소속 직원이다. 이 직원은 평일 중 여의도 숙소에 머물렀으며 동여의도내 식당 여러곳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크원 현장은 이날 오후 즉시 폐쇄됐다.

증권사 긴장…"약속 전부 취소, 만남 꺼려" 

여의도 전체로 퍼진 현실적인 '코로나 공포'에 여의도 직장인들은 바짝 긴장했다. 한국투자증권 여의도 본점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지난주부터 저녁 식사는 전부 취소하고 있으며, 꼭 필요한 업무상 미팅도 화상회의 또는 컨퍼런스콜(전화)로 대체하고 있다"며 "회사 입구엔 열화상카메라를 설치해 직원 외 사람들의 출입을 완전히 막고 있는데 어차피 외부 사람들도 굳이 만나려 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 직원은 "직원들은 사무실 내에서도 전부 마스크를 쓰고 근무하며, 부서에 따라 꼭 필요한 인력만을 가지고 벌써 교대근무를 시작한 곳도 있다"며 "외부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 회사도 며칠 전 의심 환자가 발생해 해당 층을 전부 폐쇄하고 격리하는 등 소동을 벌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 전경.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증권가 전경. 연합뉴스

신한금융투자는 '행동'에 들어갔다. 이 회사에 다니는 한 직원은 "회사는 지금 직원들을 출근조-재택근무조 등 2개로 나눠 2주 단위로 교대 근무하게 하고 있다"며 "본사에서 확진자가 나오는 순간 기존 본사(동여의도) 출근 인원은 모두 재택근무에 돌입하고, 기존 재택근무 인원이 본사가 아닌 서여의도에 별도 마련한 오피스로 출근해 원격근무 중심으로 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주로 소독" 농담, 싹 사라졌다  

공공기관도 예외는 없다. 금융감독원은 BCP에 따라 28일부터 기존 저층·고층으로 나눠 운영하던 엘리베이터를 저짝수층·저홀수층·고짝수층·고홀수층 등 세분화해 나눠 운영하는 한편 20층 구내식당도 층별로 시간대를 나눠 출입하도록 했다. 지난주부터는 오전 오후 전 직원의 체온을 재는 등 코로나19 확산 예방에 힘쓰는 중이다. 한 금융감독원 직원은 "지금 현장에 나가야 하는 검사 업무 등은 코로나19 때문에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의도가 바짝 긴장하기 시작한 건 최근이다. 여의도 내 대형 증권사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이미 여의도 내에선 2~3주 전부터 '모 회사에 감염 의심자가 발생했다더라'는 식의 찌라시가 수차례 돌았는데도 사람들이 크게 긴장하지는 않았다"며 "평소처럼 모여 '하도 소주들을 많이 먹어서 자동 알콜 소독이 되나보다' 하며 농담하던 사람들이 파크원 현장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한 뒤부터는 그런 농담을 한 마디도 못하고 바짝 긴장해 있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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