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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치·종교 행사 자제하고 시민 의식 살려 전염병 잡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의심 환자가 3만 명에 육박하면서 전염병 충격이 국난(國難) 수준으로 커지고 있어 안타깝다. 이럴 때는 당리당략이나 진영 논리를 뛰어넘어 모든 국민이 마음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범투본 이 판국에 광화문 집회 강행 무리수 #신천지도 방역 및 경찰 조사에 잘 협조해야

감염병 전문가들은 바이러스 유입 차단, 환자 격리, 밀접 접촉 피하기를 주문한다. 이에 따르면 좁은 공간에서 다중이 모이는 실내 행사는 물론 대규모 옥외 정치·종교 집회는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미 조계종은 어제부터 한 달간 법회를 중단했다. 천주교는 전국 4개 교구에서 미사를 중단했다. 서울·부산·인천 등 대형 교회들도 예배를 취소하고 영상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침이 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성가대 대신 독창을 부르는 교회도 많다고 한다. 심지어 한국배구연맹과 한국여자프로농구연맹은 무관중 경기에 돌입했다.

그런데 ‘문재인 하야 범국민 투쟁본부(범투본)’는 이 와중에 지난 22~2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8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대규모 집회를 강행했다. 서울시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집회를 금지했지만 묵살했고, 결국 경찰에 고발됐다.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목사가 이끄는 이 단체는 오는 29일과 3월 1일에도 집회를 예고하고 있다. 고령자가 다수 참가하는 집회라 더 우려스럽다.

물론 법에 따라 집회·시위의 자유는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온 나라가 전염병 때문에 공황 상태로 치닫는 상황에서는 주최 측이 자율적으로 집회를 연기하는 것이 순리다. 전 목사는 “야외에서는 바이러스에 감염 안 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무증상 감염과 집단 감염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대단히 비상식적 발언이다.

대규모 확진자를 쏟아낸 신천지 교회도 “우리도 피해자”라고 항변할 때가 아니다. 그에 앞서 방역 당국에 최대한 협조해 이번 사태를 조기에 진정시켜야 한다. 전국적으로 25만 명이 넘는 신도를 거느린 초대형 종교단체에 걸맞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특히 아직도 소재가 파악되지 않은 신도 수백 명의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경찰 조사에 성실히 응해야 한다.

서울 강남과 홍대의 심야 클럽에는 이 와중에도 비좁은 공간에서 수백 명의 젊은이가 새벽까지 땀을 흘리며 춤추고 있다. 젊은 열정의 발산은 이해하지만 당분간은 좀 자제하면 어떨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번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매우 강하지만 치사율이 낮기에 개개인이 기본적인 위생 수칙만 잘 지켜도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규모 집회나 행사, 다중 이용 시설을 가급적 피하고 자가격리 지침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소나기가 내릴 때는 외출을 피하는 것이 비에 젖지 않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