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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포장 '일련번호'에 속았다···美마크 달린 N95마스크의 배신

중앙일보

입력

7일 오후 인천시 남동구 가천대 길병원에서 통제요원들이 고글과 고성능 N95 마스크를 착용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예방을 위해 내원객들의 감염 국가 방문 이력을 조사하고 있다. [뉴시스]

7일 오후 인천시 남동구 가천대 길병원에서 통제요원들이 고글과 고성능 N95 마스크를 착용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예방을 위해 내원객들의 감염 국가 방문 이력을 조사하고 있다. [뉴시스]

“유사품에 속지 마세요! 제조사, 유통기한, 인증번호, 원산지가 미표기된 불법 가품이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습니다.”

22일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는 ‘N95 마스크’의 상품 설명란에 올라온 글이다. 해당 업체는 “꼭 정품으로 인증된 제품인지 확인하라”면서 정품 N95 마스크 구별법은 물론 가짜 N95 마스크 예시 사진을 첨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매점매석을 넘어 가짜 마스크 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된 건 한국 식약처가 아닌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인증을 받은 N95 마스크다.

22일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는 'N95 마스크'의 상품 설명글. 정품 인증 번호를 확인하라는 경고문구가 적혀 있다. [온라인 쇼핑몰 캡쳐]

22일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는 'N95 마스크'의 상품 설명글. 정품 인증 번호를 확인하라는 경고문구가 적혀 있다. [온라인 쇼핑몰 캡쳐]

KF는 한국 식약처 허가 제품…N95는 미국 CDC 인증

국내 소비자들이 흔히 시중에서 접하는 보건용 마스크는 KF(Korean Filter) 마크가 붙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인증 제품이다. 마스크 포장지 겉면에 ‘의약외품’으로 표기된 이 마스크는 기능에 따라 KF80, KF94, KF99로 나뉘는데 KF80은 평균 0.6㎛ 크기의 미세입자를 80% 이상 차단하며 KF94ㆍKF99는 평균 0.4㎛ 크기의 입자를 각각 94%, 99% 걸러낸다.

반면 의료용 마스크로 알려진 N95 마스크는 한국이 아닌 미국 CDC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에서 인증한 제품이다. 평균 0.02~0.2㎛ 크기인 바이러스의 침투를 차단해 주로 호흡기 감염을 막기 위해 사용되며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의료진들이 사용하는 마스크로 알려져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는 가짜 N95 마스크. [온라인 쇼핑몰 캡쳐]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는 가짜 N95 마스크. [온라인 쇼핑몰 캡쳐]

N95 정식 제품 마스크 겉면엔 인증번호 적혀 있어 

하지만 N95 마스크를 수입하는 유통업체 대표 A씨는 “최근 온라인 쇼핑몰에 정식 인증마크를 달지 않은 가짜 제품이 난무하다”고 전했다. 실제 국내 한 소셜 커머스 홈페이지에서 ‘N95 4중막 마스크’라고 소개된 제품의 상세 설명을 확인하자 제목에 홍보 문구로 있던 ‘N95’가 아니라 중국 식약청 인증 기준인 ‘KN95’ 마크를 받은 제품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른 게시글에서도 '황사 방역 N95 KF94 마스크'라는 제품이 개당 1만 9900원에 판매되고 있었으나 미국 식약처 인증 마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A씨는 “N95 마스크가 정품인 경우 NIOSH 마크와 제조사, 모델 번호 등 인증번호가 ‘TC-84A-XXXX’ 같은 형태로 찍혀 있다”면서 “구매할 때 포장지는 물론 마스크에도 해당 인증 번호가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와 더불어 CDC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인증을 받은 전체 제조사 및 판매사, 상품 번호 리스트가 올라와 있고 가짜제품으로 적발된 마스크 사진도 올라와 있어 소비자가 확인할 수 있다.

미국 CDC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 홈페이지에서 인증한 N95 마스크의 제조회사와 제품 번호 리스트. [CDC 홈페이지 캡쳐]

미국 CDC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 홈페이지에서 인증한 N95 마스크의 제조회사와 제품 번호 리스트. [CDC 홈페이지 캡쳐]

다만 A씨는 “일부 업체에서 우리가 수입해 판매하는 N95 마스크의 포장 박스의 글자체까지 똑같이 베껴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중국, 베트남 등에서 대량 수입한 일반 마스크를 겉 포장지만 갈아 불법 유통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마스크 사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의 단속은 쉽지 않아 보인다. A씨 역시 국민 신문고와 식약처에 관련 사실을 제보했으나 식약처 쪽에선 N95 마스크의 경우 외국에서 수입되는 공산품이기 때문에 산업자원부에 문의하라고 한 반면 국민 신문고 쪽에선 식약처에 확인하라며 떠넘기기가 계속됐다고 했다.

식약처 한 관계자는 “의약외품으로 등록하려면 KF 기준에 맞는 인증을 따로 받아야 한다”면서 “N95 마스크의 경우 승인 자체가 식약처에서 받은 게 아니라서 규제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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