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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이 먼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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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사회디렉터

김원배 사회디렉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세가 가파르다. 이런 위기 상황에선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판단과 결정, 국민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섣부른 대통령의 종식 발언 #달라진 국면에 제때 대응 못해 #위기엔 전문가 의견 따라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주요 대기업 총수가 참석한 경제계 간담회에서 “국외 유입 등 긴장해야 할 부분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국내 방역 관리는 안정적인 단계로 들어선 것 같다. 방역 당국이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세를 보면 이는 명백한 오판이다. 이날 대통령의 발언이 코로나19에 대한 경계심을 떨어뜨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21일 문 대통령은 내수·소비업계와의 간담회에서 “지역사회 감염이 엄중한 상황”이라면서도 “국민과 정부가 함께 힘을 모아 ‘방역’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 어느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에 그쳤다. 세계금융위기가 있었던 2009년 이후 최악의 성적표다. 취임 후 성장률이 뒷걸음질했던 문 대통령 입장에선 취임 4년 차를 맞아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고 싶었을 것이다. 더구나 4월엔 총선이 있다.

경제 살리기가 중요한 것은 맞지만 대구 확진자가 늘어나고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되는 국면에선 방역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방역을 제대로 해야 경제도 살릴 수 있다. 환자가 급격히 늘고 의료기관이 이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 어떤 대책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서소문 포럼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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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품이 된 마스크도 문제다. 21일 기획재정부가 낸 보도자료를 보면 하루에 1250만 개의 마스크를 생산한다고 한다. 마스크 구매 가능 매장 비율이 마트가 85.2%, 약국이 82.6%로 나오는 데 체감과는 너무 다르다. 며칠 전 정부가 운영하는 홈쇼핑에서 황사마스크를 팔았는데 구입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고 한다. 한 지인은 “수십 번 전화를 했는데 헛일이었다”라고 말했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마스크 공급 대책이 절실하다.

대구 등에선 식료품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보호 장구를 구할 수 있고, 제때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무너지면 영화에서나 보는 대혼란이 현실이 된다. 확진자가 크게 늘었을 때 시민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수만 명에 달하는 중국 유학생의 입국과 국내 생활 문제도 위험 요소다. 대한의사협회는 지속해서 입국 금지 확대를 얘기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당에선 대놓고 순수성을 의심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28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대한의사협회 같은 경우 매우 정치적 단체가 돼 있다. 대표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의사협회를 이끄는 최대집 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반대에 나섰고 문재인 정부의 의료정책에도 비판적이다. 국민의 생명이 걸려 있는 일에도 정치적 입장 차이가 문제가 된다는 것이 서글프지만 현실이다.

고려할 요소가 많겠지만 전국 확산이 시작된 지금은 방역·의료 전문가의 의견이 중요하다. 전문가 집단의 공감대가 있을 것이다. 정부는 이를 전향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정부는 사태 초기부터 과감한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조치는 거리가 있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진자가 600명을 넘어선 23일에야 감염병 위기 경보 단계를 ‘경계’에서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격상했다.

초기 대응을 잘했다는 평가가 있었던 것이 국면이 달라졌을 때 과감한 조치를 하지 못한 요인이 됐다고 본다. 혹시라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맞았던 박근혜 정부 때보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히면 오히려 잘못된 결정을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여러 번의 고비가 다가올 것이다. 확산 속도가 더 빨라지면 냉정하게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모든 것을 쥐려다 가장 중요한 걸 놓칠 수 있다. 그럴 때 현명한 결정을 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게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 지금은 총선·경제·외교보다 방역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문 대통령의 슬로건이 ‘사람이 먼저다’가 아닌가. 지금은 분명 방역이 먼저다.

김원배 사회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