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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사정관제서 비롯된 학종, 미국 ‘귤’ 한국 와 ‘탱자’ 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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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4호 16면

미 대입 컨설턴트 박영희

박영희 세쿼이아 대표는 지난달 11일 아시아 최초 미국 공인교육플래너를 취득했다. 그는 변질된 한국 학종을 "귤화위지"라고 했다. 김나윤 기자

박영희 세쿼이아 대표는 지난달 11일 아시아 최초 미국 공인교육플래너를 취득했다. 그는 변질된 한국 학종을 "귤화위지"라고 했다. 김나윤 기자

“정책 변화로 학생의 정성평가를 어렵게 해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지난 16일 각 대학의 입학처장들은 정부의 수능 확대 방침에 대해 이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학종의 기원은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도(입사관)다. 학교 성적뿐만 아니라 특별활동, 재능,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 인터뷰 등 다양한 요소를 평가해 학생을 선발하는 미국 입시제도다.
 한국에서도 기존 수능 위주의 입시에서 탈피하자는 취지에서 입사관이 2007년 국내 처음으로 도입됐다. 이후 입사관은 학종으로 이어졌다.

아시안 첫 미 공인교육플래너 #특별활동·자소서 등 입체 평가 #미국은 최적 학교 찾는 데 초점 #한국 컨설턴트는 입시학원 연계 #SKY 입학시키려 이력 쌓기 골몰 #지도층 ‘스펙 품앗이’ 관례도 문제 #대학 ‘명예코드’ 만들어 꼭 지켜야

미국 대입 컨설턴트 박영희 세쿼이아 대표는 이러한 현상을 ‘귤화위지(橘化爲枳·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심으면 탱자가 된다)’로 설명했다. 미국 입사관의 장점을 따 한국에 도입된 한국의 입사관·학종이 원래 제도의 취지를 상실한 채 변질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달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공인교육플래너협회(American Institute of Certificated Educational Planners, AICEP)가 인증하는 미국 공인교육플래너 자격을 땄다.

미국의 교육 컨설턴트와 한국의 입시 컨설턴트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한국의 교육 컨설턴트는 대부분 입시 학원과 연계돼 있다. 부모와 아이가 진학하길 원하는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지원 전략이나 필요한 봉사활동 등을 설계해준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 본 것처럼 학생이 원하는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사활을 건다. 미국의 교육컨설턴트는 학생의 능력, 전공적성, 학생 개인 혹은 가정의 특수성에 적합한 최적의 학교를 찾는데 초점을 맞춘다.”
한국 학종과 미국 입사관을 비교하자면.
“미국의 대학 입시는 학교 내신, 표준화시험(SAT), AP(Advanced Placement) 등 난이도 높은 수업 이수, 특별활동, 재능, 특기, 자기소개서, 교사추천서, 포트폴리오, 인터뷰 등 다양한 요소를 보고 균형잡힌 전인격을 갖춘 학생 (Well-Rounded Student)을 선발하려고 노력한다. 한국에선 한 가지만 잘 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하면서 강연·세미나·단기 연구과정·어학연수·인턴·봉사활동 등의 스펙을 보고 합격을 시켰다.”
미국 vs 한국 입학사정관제 비교

미국 vs 한국 입학사정관제 비교

미국에서도 지난해 대형 입시 부정이 있었다.
“중국계 학생이 명문 스탠퍼드대학에 요트 특기생으로 입학했는데, 베이징에 사는 부모가 뉴포트비치 소재 입시 컨설턴트에게 부정 입학의 대가로 650만 달러를 지불하는 등 대형 입시비리가 적발됐다. 체육특기생 선발에서 입학사무처보다 해당 코치의 입김이 세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특기생 역시 학업성적이 우수해야 하고 기타 서류도 완벽해야 하는 것이지 한 가지만 특별히 뛰어나다고 해서 선발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선 학종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미국에서 대입이 성적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은 상위권 대학을 향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학생의 경험치보다는 남보다 눈에 띄는 이력을 채우는 데 급급하다. 이를테면 리더십이라는 게 어떤 모임의 장을 해야만 생기는 게 아닌데 한국에서 학종에 리더십 이력을 쓰려면 학생회장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능은 공정하다고 한다.
“다양성은 미국의 핵심가치 중 하나다. 학생의 특징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학생마다 입사관에서 강점으로 내세우는 점이 역시 모두 다르다. 하지만 한국은 본인보다 부족한 학생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면 의심부터 하고 ‘깜깜이다’, ‘합격 기준이 고무줄이다’라고 한다. 공정이 마치 ‘너도나도 똑같이’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아이들을 위해 학부모끼리 이른바 ‘스펙 품앗이’하는 사례도 있는데.
“문제의 본질은 그런 행위가 도덕적으로 정직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고위공직자든 학자든 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할 어른들이 자녀 시험 답안을 대신 써주고, 본인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지금의 학종이 정착되려면.
“미국 대학은 명예코드(Honor Code)란 걸 중시한다. 대학 구성원에게 높은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강조한다. 이걸 위반하는 학생에 대해선 강력하게 처벌한다. 한국 대학이나 교육계 역시 명예코드나 직업윤리강령을 만들어 이를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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