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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럭셔리 도서관 ‘소전서림’…책 파묻혀 강연 듣고 와인 한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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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4호 26면

오늘 문 여는 ‘흰 벽돌, 책의 숲’ 

소전서림 안의 문학서가 모습. 왼쪽에 특별 제작한 ‘구스 체어’가 보인다. [사진 김인철·장미]

소전서림 안의 문학서가 모습. 왼쪽에 특별 제작한 ‘구스 체어’가 보인다. [사진 김인철·장미]

도서관인지 미술관인지 공연장인지 헷갈리는 공간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 22일 문을 연다.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제1회 문학 콘퍼런스를 여는 것으로 공식 운영에 들어가는 서울 영동대로 ‘소전서림’이다. 소전서림(素磚書林)은 ‘흰 벽돌로 둘러싸인 책의 숲’이라는 뜻. 문학 전문도서관을 표방한다. 그런데 숨소리도 들릴 만큼 연주자와 거리가 가까운 살롱 콘서트나 50명 규모 청중을 위한 강연이 가능한 공연 공간도 갖추고 있다. 벽에는 영국 현대미술의 대가로 꼽히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판화 등 유명 작품들이 걸려 있다. 입장료를 받는데, 금싸라기 땅 청담동(영동대로)이라는 입지에 걸맞게 절대 싸지 않다. 하루 입장료가 종일권(평일 오전 11시~오후 11시, 주말 오전 9시 30분~오후 6시 30분)은 5만원, 반일권이 3만원이나 한다(회비 66만원인 연간회원은 반값 할인). 도서관은 지하, 1층에는 와인바도 있다. 영화 ‘기생충’의 박 사장 부류가 호주머니 불안감 없이 읽고 마시고 듣고 볼 수 있는 그야말로 ‘고급진’ 공간이다.

기하학적 건축미 시원한 실내공간 #입장료 종일 5만원, 반일 3만원 #공연 공간에도 푹신한 명품 의자 #문학서적 3만 권 등 4만 권 갖춰 #유명 문인 50명과 자연스레 접촉

#의자 하나도 범상치 않아

문학서가 안의 1인용 부스. [사진 김인철·장미]

문학서가 안의 1인용 부스. [사진 김인철·장미]

책과 관련된 공간이 책 이외의 문화서비스를 제공하며 돈을 받는 형태는 이웃 일본에서 먼저 시작됐다. 하루 입장료 1500엔(약 1만6000원)을 받는 대신 정기적으로 미술 전시회를 여는 도쿄 롯폰기의 분키츠(文喫) 서점이 대표적이다. 책만 구입하는 실용 공간에서 책이 중심에 놓인 일종의 라이프 스타일 공간으로 서점과 도서관이 변모하는 현상은 국내에서도 실은 낯설지 않다. 입구가 따로 없어 누구나 서가에서 원하는 책을 꺼내 그 자리에서 읽을 수 있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의 오픈형 별마당 도서관(2017년), ‘식당+서점’ 개념의 아크앤북(2018년)이 각각 성업 중이다.

소전서림은 이를테면 이런 트렌드의 ‘끝판왕’. 이 도서관의 새로운 실험은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을까. 개관에 앞서 지난 14일 미리 다녀왔다.

도서관은 영동대교 남쪽 청담 자이 아파트 코앞에 있다. 건물 외관부터 심상치 않다. 기하학적이라고 할까. 구조가 독특하다. 외벽을 납작한 직사각형 모양의 밝은색 벽돌로 마감했다. 입구에 도착하자 도서관 황보유미(46) 관장이 반긴다. 안으로 들어서자 작은 규모 실내 체육관 만큼이나 천장이 높은 시원한 공간이 펼쳐진다. 남다른 도서관 건물의 안팎 모습은 내력이 있었다. 리움 미술관을 설계한 마리오 보타 사무소에서 경험을 쌓은 스위스 건축가 다비데 마쿨로가 건물을 설계했다. 이를 이어받아 까다로운 재벌가 주택 설계를 많이 한 원오원 아키텍츠 최욱 건축가가 인테리어를 맡았다. 독특한 외벽 마감 벽돌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공수한 길이 50㎝, 두께 4㎝가량의 특수 벽돌이었다.

다이스 체어. [사진 김인철·장미]

다이스 체어. [사진 김인철·장미]

도서관 바닥에 내려서자 심상치 않은 의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45㎝ 높이의 월넛 집성목 입방체를 통째로 사용하는 다이스 체어. 프로젝트 팀 ar3(이정형·임지수·최병석)에 의뢰해 특별 제작한 것이었다. 앉는 무게중심에 따라 의자가 앞으로 혹은 뒤로 기울어지게 돼 있다. 졸음 방지용일까.

공연 공간의 이름은 ‘예담(藝談)’이었다. 이곳에 놓인 의자들 상당수도 프리미엄 가구 브랜드 제품이라고 했다. 덴마크제 핀율(Finn Juhl) 의자도 있었다. 앉아 봤다. 푹신하면서도 반발력이 있어 꼭 남의 살 위에 올라탄 것 같다.

왜 이렇게 의자에 신경을 쓸까. 황보 관장에게 물었다.

“도서관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는 역시 책을 읽는 일 아닌가. 가장 편안하게 앉는 경험을 제공해주고 싶었다. 과거에 비해 우리 경제 수준은 크게 좋아졌다. 그에 맞춰 문화 수준도 높아져야 하지 않을까.”

#해외 문학 잡지 정보도 실시간 제공

도서관 외관. [사진 김인철·장미]

도서관 외관. [사진 김인철·장미]

도서관은 유명 문인을 적극 유치할 계획이다. 일반 이용자와 문인들이 어울리는 느슨한 커뮤니티의 모습을 그리는 듯했다. “문인만을 위한 별도 공간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서너 평 넓이의 ‘청담(靑談)’이다. 국제공항의 VIP 라운지처럼 와인 등 간단한 식음료를 제공하는데, 세미나를 하거나 휴식도 취할 수 있다. 도서관이 특별회원으로 위촉한 50명 문인이 이곳을 단골로 이용한다면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반 이용자와 접촉하게 된다. 도서관이 바라는 상황이다. 특별회원은 이용료도 면제다.

장서는 4만 권. 이 가운데 3만 권이 문학 서적, 나머지가 인문학과 각종 예술서적, 미술 도록 등이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서평가 이현우씨, 천문학자 이명현씨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장서를 선정해 "없는 책은 있어도 반드시 있으면 좋은 책 가운데 빠진 책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게 황보 관장의 설명이다. 세 명의 북 도슨트가 도서관을 지키며 이용자가 요청할 경우 독서 경험·수준에 맞는 도서 추천 서비스도 한다.

다른 도서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파리 리뷰·그란타 등 해외 문학 잡지, 해외 전시 동향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전담 큐레이터가 챙기는 최신 전시 도록도 마련했다.

#관건은 결국 프로그램

건물 1층에 있는 와인바 ‘2x2(투바이투)’. 오른쪽은 황보유미 관장. [사진 김인철·장미]

건물 1층에 있는 와인바 ‘2x2(투바이투)’. 오른쪽은 황보유미 관장. [사진 김인철·장미]

박사장에게는 아니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역시 이용료가 부담스럽다. 1층 와인바의 잔술 가격은 1만원 후반대에서 2만원 초반대. 종일권을 끊고 입장해 책 읽다가 싫증 나서 와인 한잔한다면 간단히 10만원 지출은 각오해야 한다.

황보 관장은 “그래서 초기에는 일주일에 두세 차례, 자리가 잡히면 매일, 다양한 수준의 각종 강연을 개최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청담동 지역 주민을 먼저 사로잡아 기틀을 다지는 기반으로 삼되 멀리서 방문하는 고급 강연 수요도 동시에 만족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도서관 건물은 원래 미술관으로 쓰였다. 4m가 넘는 천장 높이는 그래서 가능했다. 스크린 골프 업계 1위 기업인 골프존을 창업한 김원일씨가 관련돼 있다. 김씨가 이사장인 더블유에이피파운데이션(WAP Foundation)에서 도서관을 후원한다. 미술관에서 도서관으로, 그것도 하필 문학 도서관으로 방향을 전환한 까닭은 뭘까.

“책과 좋은 사람들을 통해 재미있게 살자. 그 생각 외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문학이 뭔가. 인간의 모든 삶이 문학 안에 다 들어 있다.”

황보 관장은 “문학도서관이 잘될 경우 역사·철학 등으로 분야를 넓혀 제2, 제3의 전문 도서관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러려면 물론 소전서림이 잘돼야 한다. 결국 ‘문턱’으로 느껴지는 싸지 않은 입장료가 관건이지 않을까. 그게 아깝지 않을 만큼 알찬 프로그램을 얼마나 활발하게 제공하느냐에 도서관 성패가 달린 것으로 보인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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