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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안 맞는게 잘 맞는 것" 국악 매력 전하는 지휘자 김성진

중앙일보

입력

2010년 국립국악관현악단이 공연한 '어부사시사'. 국악과 합창의 만남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올해 '시조 칸타타'는 여기에서 규모를 키웠다. [사진 국립극장]

2010년 국립국악관현악단이 공연한 '어부사시사'. 국악과 합창의 만남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올해 '시조 칸타타'는 여기에서 규모를 키웠다. [사진 국립극장]

관현악단 70명, 합창단 80명, 소프라노, 테너가 한 무대에 선다.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이 연상된다”는 말에 국립국악관현악단 김성진(65) 예술감독은 “서양음악에 익숙한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곤 하지만,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다음 달 여는 공연 ‘시조 칸타타’에 대한 설명이다.

드문 형식의 공연이다. 가야금ㆍ거문고ㆍ피리ㆍ대금 등 국악기가 모인 관현악단, 서양식 노래를 하는 합창단, 클래식 음악을 부르는 성악가들이 한 무대에 선다. 여기에 우리 노래인 정가(正歌, 시조로 된 노래) 가창자는 내레이터 역할을 한다. 서양 음악을 공부했지만, 우리 음악에 관심을 가져온 작곡가 이영조(77)가 위촉받아 완성했다. 효ㆍ사랑ㆍ자연 등을 주제로 한 옛 우리 시조를 가사로 쓰고  ‘칸타타’라는 바흐ㆍ헨델 시대부터 쓰이던 서양 전통 합창 음악을 결합했다.

지난해 국립국악관현악단에 취임한 김성진 예술감독. [사진 국립극장]

지난해 국립국악관현악단에 취임한 김성진 예술감독. [사진 국립극장]

모든 혼합이 그렇듯 비판도 있다. 김 감독은 “국악 관현악에 웬 합창이냐는 말이 많았다”고 했다. 10년 전 고(故) 황병기 선생이 국악관현악단의 예술감독 일 때 시도했던 ‘어부사시사’ 이후 국악 칸타타의 공연이 뜸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김 감독은 “한국식 합창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영국식, 미국식 합창이 다 다른데 한국 합창은 뭘까 생각했는데 합창단이 우리 말로 가곡이나 옛날 노래를 부르는 걸 보면 정확히 한국식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면서 "서양식 합창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서와 말을 살릴 수 있는 음악이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우리식 합창을 계획하며 서양 음악을 해온 합창단에게 가장 강조한 것은 “매끄럽게 맞추려 하지 마라”는 것이었다. 합창단원들이 같은 음을 동시에 부르며 지속하는 부분에서도 한국 음악에서는 음정을 흔들듯이 변화시켜야 한다. 국악기에서 농현(弄絃)과 같은 것으로, 서양 음악에는 없는 기법이다. “합창단원 수십명이 서로 다른 방법으로 음을 흔들어야 하는데 이걸 딱 맞추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 한국 음악에서는 맞지 않는 게 맞다.” 김 감독은 “서양 음악을 공부한 사람이 국악을 하면 어긋남을 못 견디고 딱 맞추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걸 벗어나야 된다”고 덧붙였다.

한국 음악을 기반으로 하고 서양 음악의 편리성을 도입하면 어설픈 ‘합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국악의 정가라는 원형을 남겨놓고 거기에 서양 음악색의 화성을 더하는 작품을 추구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멋진 전통 한옥이지만 들어가 보면 수세식 주방 같은 편리함이 있는 결합을 상상하면 된다.” 이영조 작곡가도 여기에 동의해 서양 현대음악의 기법을 도입하되 한국 음악의 뼈대는 남겨놓은 작품을 완성했다.

지난해 3월 국립국악관현악단에 취임한 후 그는 이처럼 서양음악의 여러 장르를 국악에 도입해보고 있다. 일종의 실험으로 파이프 오르간과 함께하는 작품도 위촉해봤다. 앞으로는 연극, 영화, 무용 등 여러 분야로 국악관현악단의 확장을 고민하고 있다. “서양에 나가서 국악을 공연하고 나면 그 나라 음악가들이 세미나를 열자고 할 정도로, 외국 작곡가들은 한국 전통 음악을 미래형 소재로 여긴다.” 소재의 고갈을 느끼는 작곡가들이 한국 음악의 무정 형성, 불확정성에 매력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그는 “현대화한 국악으로 세계 시장을 노려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서양 음악이 아스팔트 길이면 한국 음악은 정해져 있지 않은 산길”이라고 비유했다. “잘 짜인 구조 위에서 안정감을 느끼던 사람들에게 산길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웅덩이도 만나고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좋아하게 된다.” 클래식 음악의 작곡ㆍ지휘를 공부하고 미국 유학을 마친 그는 1993년 KBS 국악관현악단을 처음 지휘하고 한국 음악에 빠졌고, 2000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단장을 맡으며 방향을 잡았다. “이슬비가 꽃잎을 스치는 정도로 연주해달라는 지휘자의 부탁이 국악관현악단에서는 실현할 수 있다. 지휘자로서 이 매력에 빠지고는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고 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시조 칸타타’ 공연은 다음 달 26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창원시립합창단, 테너 신동원, 소프라노 이유라, 정가 하윤주가 함께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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