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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안 벗으니 매출 2배”…골목식당 바꾸는 ‘인생 컨설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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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에서 '그집'을 운영하는 김정순씨. 백반집에서 가정식 뷔페로 바꿨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에서 '그집'을 운영하는 김정순씨. 백반집에서 가정식 뷔페로 바꿨다.

김정순(55·여)씨가 서울 영등포동에 백반집 ‘그집’을 연 건 2013년 여름이다. 그 전엔 남대문시장에서 견과류 장사를 했지만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보살피려면 작은 방이 딸린 가게가 나았다. 점포를 계약하고 보니 주변에 변변한 식당이 없었다. 장사 메뉴를 백반집으로 정했다.

‘미소금융’하는 서민금융진흥원 #2010년부터 자영업 컨설팅도 #지난해 저축은행 고객까지 확대 #경험자 47% “컨설팅후 매출 증가”

7년 가까이 장사를 하지만 손에 남는 건 거의 없었다. 모든 반찬을 직접 만들어 팔면서 원가율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재료비와 인건비는 올랐지만 백반 가격은 5000원 그대로였다. 가격 인상이 손님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서였다. 팔수록 손해인 날이 늘었다.

지난해 경기가 확연히 나빠졌다. 고정 운영비 충당조차 어려워진 김씨는 저축은행을 찾았다. 지난해 7월 SBI저축은행에서 자영업자 햇살론 대출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 저축은행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서민금융진흥원이 햇살론 고객에 제공하는 자영업 컨설팅 서비스를 받아보겠느냐는 것이었다. 김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수락했다.

김응요 컨설턴트

김응요 컨설턴트

지난달 29일 컨설턴트인 김응요(59) 수와연 대표가 김씨 가게를 찾았다. 가게 사정을 들은 김 대표는 “장사는 돈 벌려고 하는 것인 만큼 돈 안 되는 습관은 다 갖다 버리라”며 “메뉴부터 시작해 모든 걸 싹 다 바꾸자”고 말했다.

김씨와 김 대표는 대수술에 나섰다. 점심 주메뉴인 백반을 아예 없애고 기본 반찬을 포함한 10가지 메뉴 구성의 가정식 뷔페를 운영하기로 했다. 7년간 유지한 아침 장사 대신 저녁 장사를 하되, 메뉴는 100g당 800원 수준의 수입 삼겹살을 활용한 두루치기와 부대찌개로 단순화하기로 했다.

포털사이트 ‘플레이스’ 플랫폼에 가게를 등록해 인터넷 상 홍보 수단도 만들기로 했다. 김 대표는 “지금 ‘그집’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8년 전 문 닫은 고깃집이 검색된다”며 “가게를 포털에 제대로 등록하는 것만으로도 홍보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메뉴 바꾸고 포털에 홍보하고

생각지 못한 부분의 조언도 있었다. 고객이 신발을 벗어야만 하는 구조를 신발 신고 들어올 수 있게 바꾸란 것이다. 김 대표는 “점심 장사는 회전율이 중요한데 입구에서 신발을 신고 벗으면 그만큼 시간이 지체된다”며 “구로디지털단지의 한 가게는 신발을 신고 들어가게 바꾸자 매출이 2배 뛰었다”고 말했다.

컨설팅을 받은 김씨는 “뷔페나 저녁 장사는 수없이 고민했지만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실행하지 못했던 것”이라며 “전문가가 구체적인 방법을 함께 고민해주니 용기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런 컨설팅은 실제 효과가 있을까? 서민금융진흥원은 2010년부터 미소금융 이용자를 대상으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난해부터는 햇살론 등 저축은행 이용 고객에도 컨설팅을 시작했다.

진흥원이 지난해 11월 약 58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한 결과, 컨설팅을 받은 자영업자 가운데 47.3%가 매출 증가 효과를 봤다. 해당 컨설턴트에게 계속 도움을 받고 싶다는 응답도 89.3%에 달했다.

서울 은평구 불광동 메밀요리점 '황금메밀가'의 양순진씨. 컨설팅 이후 '맛집'이 됐다.

서울 은평구 불광동 메밀요리점 '황금메밀가'의 양순진씨. 컨설팅 이후 '맛집'이 됐다.

서울 불광동에서 메밀요리점 ‘황금메밀가’를 운영하는 양순진(56·여)씨가 그런 경우다. 보험사 직원이었던 양씨는 2016년 창업에 나섰다. 준비라곤 6개월 동안 요리학원에 다닌 게 전부였다. 메밀요리집을 열기로 한 건 본인이 메밀요리를 좋아해서였다.

북한산 자락에 있는 식당을 찾는 손님은 많지 않았다. 메뉴의 문제인가 싶어 갈비탕, 닭볶음탕, 파전에 찐빵까지 팔아봤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손님이 하나도 없었던 2017년엔 휴업신고를 할 정도였다. 그런 식당이 달라진 건 지난해 1월 서민금융진흥원에서 미소금융 대출과 함께 컨설팅을 지원받으면서다.

컨설팅 뒤 월 매출 600만→1000만원

컨설턴트는 먼저 메밀이 들어가지 않은 모든 메뉴를 없앴다. 요리 기술도 알려줬다. 들깨칼국수에 들어가는 메밀 면 반죽에 전분과 설탕, 밀가루, 소금을 넣고 하루 8시간 이상씩 숙성시켜야 한다는 건 양씨가 몰랐던 기술이었다. 가게 바로 앞에 목줄을 달아 키우던 큰 개는 옮기도록 했다. 동절기 영업시간을 탄력적으로 바꿨고 가게를 확장해 좌석을 늘리게 했다.

컨설팅 이후 양씨의 가게는 동네에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예전에는 북한산 등산객 발끝만 바라보다 하루가 다 갔다면 지금은 손님들이 찾아서 온다. 컨설팅 전 600만원을 넘기기가 어려웠던 월 매출은 지난해 1000만원 이상으로 올랐다. 양씨는 지난해 10월 한 차례 더 컨설팅을 받아 겨울용 신메뉴 개발에 도움을 받았다. 양씨는 “혼자서는 음식만 만들어 팔기 바빴지 메뉴나 컨셉까지 신경 쓰며 가게 전반을 꾸려가긴 버거웠다”며 “컨설팅 덕분에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고 미래를 바라보고 계획할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양씨는 올해 한 번 더 컨설팅을 신청할 계획이다. 건물주와의 갈등으로 새 가게를 알아봐야 하는데, 상권 분석과 점포 계약 과정에서 조언을 받고 싶어서다.

이인호 서민금융진흥원 컨설팅취업부 부장은 “자영업자의 자립을 위해서는 일률적인 일회성 지원보다는 일대일 맞춤형 서비스와 사후관리가 효과적”이라며 “지속적인 소통으로 컨설팅 효과를 극대화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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