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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 마틴 스코세이지, '단벌' 호아킨 피닉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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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간) 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은 전세계 영화인의 열기로 뜨거웠다. 누가 오스카 트로피의 주인이 될 지를 두고 긴장감이 고조되는 순간도 있었지만, 환호와 덕담이 오가는 축제의 장이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이모저모

자신의 트위터에 ‘기생충’ 수상 축하 소감을 남긴 산드라 오. [트위터 캡처]

자신의 트위터에 ‘기생충’ 수상 축하 소감을 남긴 산드라 오. [트위터 캡처]

◇‘기생충’ 수상에 물개 박수 산드라 오=이날 네 번째 상인 각본상 수상작으로 ‘기생충’이 호명되자 한국계 여배우 산드라 오가 발을 구르며 ‘물개 박수’를 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이날 산드라 오는 겹겹이 부풀린 거대한 퍼프 소매가 돋보이는 핑크 드레스를 입고 시상식에 참석했다. 산드라 오는 이후 자신의 트위터에 “축하해요. 한국인인 게 너무 자랑스러워요(Congratulation. so so proud to be Korean) ”라고 적은 뒤 태극기 이모티콘과 하트 이모티콘을 덧붙였다. 산드라 오는 한국계 이민 2세 캐나다 배우로 ABC방송 ‘그레이 아나토미’로 이름을 알렸고, 지난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아시아 배우 최초로 드라마(‘킬링 이브’)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연기상 후보는 여전히 ‘백인 잔치’=92번째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동안 지적된 ‘백인만의 잔치’(#OscarSoWhite)’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다양성에 대한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 애썼다. 축하무대에선 영화 ‘겨울왕국’의 주제가 ‘인투 디 언노운(Into the Unknown)’이 원곡 가수 이디네 멘젤을 비롯해 독일, 일본, 스페인, 태국 등 각국에서 더빙을 한 11명의 엘사에 의해 꾸며졌다. 이들은 영어가 아닌 각자의 언어로 불렀다.
또 아카데미 사상 처음으로 여성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눈길을 끄었다. 음악상 시상자로 나선 시고니 위버는 이에 대해 언급하며 “모든 여성은 슈퍼 히어로”라고 강조하기도 했다.하지만 연기상 부문 후보에 유색인종 배우가 거의 없다는 점은 여전한 ‘벽’으로 지적됐다. 남녀 주ㆍ조연상 후보에 오른 유색인종 후보는 여우주연상의 신시아 에리보(‘해리엇’) 한 명뿐이었다.

9일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EPA=연합뉴스

9일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EPA=연합뉴스

◇무관에 그친 마틴 스코세이지=평단과 관객의 두루 높은 평가를 받았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작품 ‘아이리시맨’은 10개 부문의 후보에 오르고도 모두 노미네이트에 그쳐 아쉬운 결과를 냈다. 작품상ㆍ감독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던 ‘1917’은 ‘기생충’의 파란에 밀려 시각효과ㆍ음향믹싱ㆍ촬영상 등 3관왕에 만족해야 했다. 남녀주연상은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와 ‘주디’의 르네 젤위거에게 돌아갔다. 할리우드의 대표적 연기파 배우로 꼽히지만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것은 처음이다. ‘글래디에이터’, ‘그녀’ 등에서 인상 깊은 연기력을 보였던 호아킨 피닉스는 ‘조커’에서 열연을 보이며  ‘다크 나이트’ 히스 레저의 흔적을 말끔히 지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브리짓 존스의 다이어리’로 잘 알려진 르네 젤위거는 ‘콜드 마운틴’ 이후 16년만에 도전에서 여우주연상의 기쁨을 안았다.

반짝이는 화이트 드레스를 입고 9일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르네 젤위거. [AP=연합뉴스]

반짝이는 화이트 드레스를 입고 9일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르네 젤위거. [AP=연합뉴스]

◇드레스는 골드&실버가 대세=아카데미 시상식의 레드카펫은 우아함과 화려함의 극치였다.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게 빛나는 오스카 트로피를 연상시키듯, 화려하게 반짝이면서도 과한 장식은 배제한 깔끔한 드레스 차림의 배우들이 레드 카펫을 밟았다. 지난달 골든 글로브 시상식과는 딴판이었다. 밝은 녹색부터 형광색까지 파격적인 컬러, 거대한 퍼프 소매, 대형 리본 등이 등장해 개성을 한껏 뽐냈던 골든글로브 때와는 달리 많은 여배우들이 아카데미에선 고전적이고 기품있는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오프닝 공연을 맡은 가수 겸 영화배우 자넬 모네는 스타워즈 커스텀 의상을 연상시키는 랄프 로렌의 실버 드레스로 등장했다. 스칼렛 요한슨은 보석 장식이 달린 끈으로 상의에 포인트를 준 메탈릭 드레스로, 르네 젤위거는 어깨를 드러내고 몸매 곡선을 살린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타일의 드레스를 선보였다. ‘기생충’의 조여정은 베이비 핑크 상의에 블랙 스커트의 단아한 스타일로 눈길을 끌었다.

호아킨 피닉스는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브랜드 '스텔라 매카트니'의 턱시도를 입고 9일 아카데미 시상식에 등장했다. [EPA=연합뉴스]

호아킨 피닉스는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브랜드 '스텔라 매카트니'의 턱시도를 입고 9일 아카데미 시상식에 등장했다. [EPA=연합뉴스]

◇호아킨 피닉스는 단벌 신사?=메시지를 담은 옷으로 주목을 받은 배우도 여럿이다.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는 지난 1월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브랜드로 유명한 스텔라 매카트니의 턱시도 한 벌로 이번 시즌 시상식 전체를 소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새 옷을 계속 만드는 게 지구 환경에 유해하다는 메시지를 알리기 위해서다. 역시나 이번 아카데미에도 스텔라 매카트니의 턱시도를 입고 등장했다. 케이틀린 디버와 레아 세이두는 친환경 섬유인 파이버 텐셀 소재로 만든 루이비통 드레스를 입었다. 두 사람의 드레스는 아카데미와 파트너쉽을 맺고 지속가능한 드레스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단체 ‘레드 카펫 그린 드레스’의 작품이다.
나탈리 포트만은 후보에 오르지 못한 여성 감독들의 이름을 새긴 드레스를 입고 참석했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9편이 모두 남성 감독의 작품임을 꼬집은 셈이었다.

이지영ㆍ유성운ㆍ유지연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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