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선2035

나쁜 부모의 죗값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채혜선 기자 중앙일보 기자
채혜선 사회2팀 기자

채혜선 사회2팀 기자

불교에서 말하는 10대 지옥 중 ‘한빙(寒氷)지옥’은 이승에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고, 가정에 화목하지 못한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이다. 쌍천만 관객몰이에 성공한 영화 ‘신과함께’의 원작 웹툰에서 한빙지옥은 망자 부모의 가슴을 엑스레이로 찍어 그 가슴에 박힌 못을 세며 생전의 불효를 따져보는 곳으로 그려졌다. 못이 많을수록 ‘불효자’로 판명 나고, 이 경우 한빙지옥 가장 깊숙한 곳에 던져졌다.

이처럼 불효자를 처벌한다는 생각은 종교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된 것인데 불효자의 반대 개념인 ‘나쁜 부모’를 벌주자는 논의는 비교적 최근 시작됐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를 압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들의 신상을 공개해 온 ‘배드파더스(Bad Fathers)’ 얘기다. 법원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사이트 관계자에게 지난달 15일 무죄를 선고하면서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다시 주목받았다.

배드파더스 재판 당시 증인 A씨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미리 준비해온 쪽지를 읽었다. “아이가 5세 때 면접 교섭을 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가 밥도 안 주고 시장 사과박스에 놓아두고, 여자친구랑 영화를 보러 갔다고 합니다. 이는 아이에게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자 10세가 된 지금까지도 생생한 상처로 남았습니다. 아이가 겪을 정서적 아픔도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아이를 홀로 키우느라 생활고를 겪었다는 A씨는 여성가족부 산하 양육비이행관리원을 거치는 등 나라에서 해줄 수 있는 구제절차는 다 해봤으나 결국 전남편에게 양육비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양육비 지급을 강제할 법적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한국의 양육비 이행률은 낮은 편이다. 여가부의 ‘2018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7명은 전 배우자에게서 양육비를 한 번도 받은 적 없다고 답했다. 현재 국회에는 양육비 지급 이행을 위한 각종 법안이 10여 건 발의돼있지만, 계류 중이다. 그 사이 배드파더스에 올라온 양육비 지급 해결 건수는 재판 당시 113건에서 123건(9일 기준)으로 늘었다.

박힌 못이야 빼낼 수 있지만, 구멍은 계속 남는다. 아이 가슴에 남는 구멍들을 생각했을 때 어른들이 아이에게 지은 죄는 너무도 크다. ‘내리사랑만 있고 치사랑은 없다’는 말도 있는데 법은 어디로 흐르고 있는 것일까.

채혜선 사회2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