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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크루즈선 한국인 승객, "언제쯤 배에서 나갈 수 있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 요코하마(横浜)항에 정박 중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호에 탑승한 한국인이 총 14명으로 확인된 가운데 외교당국은 이들의 신원을 전원 파악하고 건강 상태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국인 승객 9명 승조원 5명 등 14명 신원 파악 #"집에 곧바로 갈 수 있나" 등 문의, 답답함 호소 #일단 관할국 조치 협조...타국 상황 등 종합적 검토 #크루즈선 총 64명 감염 "나도 옮은 것 아니냐" 불안 #3600명 승객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도 우려 #80%가 60대, 의약품 500명분 우선 투입 #

9일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크루즈선에 탑승 중인 한국인은 승객 9명과 선원 5명으로, 현재까지 건강에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요코하마항에 정박죽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9일 현재 이 배에서 총 64명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환자가 확인됐다. [교도=연합뉴스]

요코하마항에 정박죽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9일 현재 이 배에서 총 64명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환자가 확인됐다. [교도=연합뉴스]

주일 한국대사관이 선사를 통해 승객 9명의 신원을 전원 파악해 접촉한 결과 이들은 “언제쯤 나갈 수 있는 건지 몰라 답답하다”, “배에서 나가면 집에는 곧바로 갈 수 있는 건가” 등을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탑승객들로부터 “배에서 꺼내달라”는 요구는 직접 전달된 것은 아니지만, 외교당국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다.

주일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는 세계보건기구(WHO)의 IHR(International Health Regulation)에 따라 관할국의 검역 조치에 협조하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면서 “다른 나라의 상황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환자 발생으로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내 선실에 격리된 승객들. [EPA=연합뉴스]

선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환자 발생으로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내 선실에 격리된 승객들. [EPA=연합뉴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후생노동상은 로이터 통신에 “미국 측도 최종적으로는 현 상황에서 일본의 대응에 맡기겠다는 입장이다. 미국 국적 승객도 일본인 승객과 함께 계속해서 (선내에) 머물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크루즈선에서 감염자가 64명이나 확인되면서 배 안에서는 “구출해달라”는 요청이 빗발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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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남성 데이빗 에이블은 8일 BBC 방송에 “영국 정부는 배나 비행기를 파견해서 우리를 데려가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남성은 아내와 함께 크루즈선에 탑승 중으로 “격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서도 “배 안에서 감정을 악화시킬 거라면 영국에서 관리되는 환경 하에 놓이는 편이 훨씬 낫다”고 호소했다.

앞서 CNN 인터뷰에 응한 한 미국인 부부도 미국 정부를 향해 “도널드 트럼프가 우리를 구하라. 정부 비행기를 보내 우리를 배에서 나오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크루즈선 안에는 아직도 약 3600명이 감금 아닌 감금 생활을 하고 있다. 승객들 사이에선 “나도 감염된 것 아니냐”, “의심자뿐 아니라 승객 전원을 검사해달라”는 불안과 공포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7일 요코하마에 정박중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앞으로 앰뷸런스 1대가 지나가고 있다. 이 배에서만 총 64명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확인됐다. [EPA=연합뉴스]

지난 7일 요코하마에 정박중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앞으로 앰뷸런스 1대가 지나가고 있다. 이 배에서만 총 64명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확인됐다. [EPA=연합뉴스]

한 60대 남성은 요미우리 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많은 감염자가 나올 줄 몰랐다. 나도 감염된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이 남성은 함께 투어에 참가했던 1명이 두통을 호소하며 의무실에 연락했으나 의사가 온 것은 그로부터 2시간이나 뒤였다고 한다.

이 남성은 “이런 상태로는 점점 몸 상태가 망가지는 사람이 늘어날 것 같다. 최소한 배 안에서의 의료 체계라도 정비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창문이 없는 객실에 있는 승객들은 17㎡(약 5평)의 좁은 공간에서 장기간 생활하면서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의 위험성도 제기하고 있다.

간사이복지대학 가쓰다 요시아키(勝田吉彰) 교수는 산케이 신문에 “방에서 나올 수 없는 환경이 계속되면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의 위험성이 커진다. 넓은 공간에 운동기구를 놓고 승객들이 반경 2m 간격을 유지하면서 운동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발생으로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선실에 승객들을 격리했다. 사진은 격리 객실 안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발생으로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선실에 승객들을 격리했다. 사진은 격리 객실 안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배 안에는 승객 80%가 60대 이상으로, 90대도 11명이나 있다. 승객 중엔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 지병을 갖고 있어 약 부족 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부는 일단 9일 오전 500명분의 의약품을 선내로 반입했다.

가토 후생노동성 장관은 “특별히 긴급 대응이 필요한 분부터 우선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면서 “헬리콥터를 활용해 약을 전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부부가 동승한 한 60대 여성은 “남편이 7일 밤부터 가끔 열이 38도를 넘어 의사의 진료를 받고 싶다고 연락했지만, 대응이 안 되고 있다. 주치의와 전화로 연락은 하고 있지만, 아직도 약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NHK는 보도했다.

이 여성은 “어쨌든 빨리 남편을 병원으로 보내주길 바란다. 신종 코로나만 중요한 게 아니라 고위험병의 사람도 병원에 가지 않으면 대응이 시간에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의사 수가 적고 진찰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어떻게든 대응해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요코하마에 정박 중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발코니 난간에 '심각 약 부족'이라고 쓰인 일장기가 걸려 있다. [EPA=연합뉴스]

요코하마에 정박 중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발코니 난간에 '심각 약 부족'이라고 쓰인 일장기가 걸려 있다. [EPA=연합뉴스]

배 안에서의 대응도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전날 크루즈선 내 감염자가 추가로 3명이 나왔다. 이미 7일 감염 의심자 273명에 대한 검사가 다 끝난 뒤에 나온 것이다. 3명 가운데 한 명은 발열 증상을 보였던 확진자와 같은 방을 썼던 중국인 여성으로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지 않아 검사 대상에서 제외됐던 것이다.

당초 ‘1호 감염자’인 홍콩 남성의 탑승이 확인된 1일 곧바로 격리조치를 취하지 않고 3일 저녁에서야 감염자 발생 사실을 승객들에게 알리는 등 초동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초기 검사 대상자 선별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구도 고이치로(工藤宏一郎) 전 국립국제의료센터 국제치병센터장은 “배 안에서 (감염된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감염시키는) 3차 감염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국가별 감염자 사망자 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신종 코로나 국가별 감염자 사망자 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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