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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세 무형문화재 보유자 강선영씨 미국 링컨센터서 더덩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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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걷는 모양도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허리도 꾸부정, 걸음 걸이도 엉금엉금. "오늘처럼 비만 내리면 무릎이 너무 쑤셔요"라고도 했다. 어찌 이런 노구를 이끌고 무대에 설 수 있을까. "나도 신기해요. 굿가락만 나오면 시큰거리던 발목이 저절로 꿈틀대요."

무형문화재 92호 태평무 보유자 강선영(82) 선생. 팔순을 넘긴 강선생이 다음달 8일 세계 공연 예술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 오른다. 한국 전통 무용으론 처음이요, 한국 공연계를 통틀어도 세번째다. 뮤지컬 '명성황후'.유니버설 발레단 '심청' 다음이다.

"1970년대 중반 뉴욕 거리를 걷다 우연히 링컨 센터를 보았죠. '나도 살아 생전 저런 무대에 설 수 있을까'라고 꿈꾸었는데 30년 만에 현실이 됐네요. 제 개인이 아닌 한국 무용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돼 너무 기뻐요."

공연의 제목은 '전통의 유산'(A Legacy in Tradition.뉴욕 중앙일보 주관). 공연장은 2700석 규모의 링컨 센터 뉴욕주립극장이다. 2부로 구성되며 모두 11가지의 전통 춤사위가 무대를 휘감는다. 강선생은 1부에선 살풀이춤을, 2부에선 전매 특허인 태평무를 춘다.

비록 초청이 아닌 대관 공연이지만 링컨 센터는 심사가 까다롭기로 소문나 있다. 공연이 성사된 계기가 있다. 지난해 국립극장에서 열린 '강선영 70주년 기념 공연'의 실황이 담긴 CD 덕분이다. 그녀의 외손자가 링컨 센터에 가지고 갔었다. 링컨 센터가 공연장을 내주면서 밝힌 이유는 세 가지. "돈을 벌려는 흥행업자가 아닌 가족이 움직이는 게 특이하다. 한국 무용의 장중함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나이 80을 넘긴 사람이 이런 빠른 발놀림을 구사한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태평무는 1930년대 완성됐다. '명인 고수(鼓手)'로 불리던 그녀의 스승 한성준 옹에 의해서다. 가락은 경기도 도당굿에 바탕을 둬 서민적이면서도 복잡한 장단이지만 왕비의 옷을 입은 채 귀족적인 춤을 춘다. 전문가들은 태평무를 가리켜 "평민과 왕족의 정서가 결합된, 진정한 계급 통합의 무대"라고 평가한다. 특히 왕비가 자신의 신분을 잠시 잊고 자유롭게 춤을 추는 부분이 클라이맥스. 36박자의 숨 돌릴 틈 없이 빠른 발디딤새로 유명하다. '공중에 발이 떠 있다'란 극찬도 잇따랐다. "11세때 처음 춤을 추기 시작했죠. 발이 시리도록 아무리 연습해도 20,30대 때는 도저히 그 박자를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마흔살을 넘기자 발에 익기 시작했죠."

강선생은 무용가로는 드물게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 회장과 국회의원(14대) 등을 역임했다. 행정가로서의 활동은 전통 예술을 제도권으로 편입시키는 데 일조했다. 과거 전통춤에 덧씌워진 '기생의 춤'이란 선입견을 불식시킨 덕분이다. "후배들에게 연극 보고, 발레 보고, 책 읽으라고 다그쳐요. 담으면 담을수록 쏟아낼 것도 많아지잖아요. 정치나 행정도 제 무용 인생의 외연을 넓혀주었죠."

무용평론가 성기숙씨는 "전통의 복잡한 춤사위를 통합하고, 현대적으로 해석해 강선영만의 '태평무'를 탄생시켰다. 링컨 센터 공연은 한국 전통의 세계화라는 데 의의가 있다"라고 말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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