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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 성전환 합격, 두쪽난 여대···페미 단체 "1만명 반대 서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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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자대학교 제1캠퍼스 정문. 정은혜 기자

숙명여자대학교 제1캠퍼스 정문. 정은혜 기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트랜스젠더 20대가 숙명여대에 합격한 소식이 알려진 뒤 관련 논쟁이 학교 외부로 번지고 있다. 4일 서울권 여대 페미니즘 21개 단체는 "여성의 권리를 위협하는 성별 변경에 반대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트랜스젠더 A씨(22)의 숙명여대 입학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성이 여성 공간에 침입한 것"

덕성·동덕·서울·성신·숙명·이화 등 6개 대학 소속 단체와 여대연합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는 A씨의 숙명여대 입학은 '남성이 여성의 공간을 침범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여대는 남성중심 사회에서 차별받고 기회를 박탈당하는 여성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라며 "본인을 여자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은 여성혐오 사회에서의 여자의 공간과 기회를 빼앗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에서의 성별 변경은 판사의 자의적 판단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느낌'을 이유로 여성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이는 여성의 권리와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이날 오후 온라인을 통해 A씨의 입학을 반대하는 여대생 연서명을 받았다. 단체 대표는 중앙일보에 "오후 6시 현재 연서명에 참여한 여대생이 1만명 가량 모였다"며 "숙명여대생은 1000명 정도"라고 밝혔다. 성명서를 작성한 관계자는 "서울권 여대 단체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은 이번 사건이 숙명여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라며 "우리들 중 누구도 자신을 '여자'라고 느끼는 사람이 없다. 스스로 여성성을 느낀다는 이유로 여자가 될 수 있다면 여성의 정의부터 다시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소수자, 사회 구성원으로 맞이해야" 

국내 성소수자 인권단체도 이날 오후 성명을 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39개 단체로 이뤄진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131개 단체로 이뤄진 차별금지법제정반대 공동 명의로 "트랜스젠더 여성의 숙명여대 입학을 환영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이들은 "그녀는 자신의 구체적인 삶을 드러내는 부단한 시도들은 사회의 변화를 요구할 뿐 아니라 차별과 배제에 도전하는 자신의 용기가 타인의 삶에도 연결돼 있음을 알리고 있다"며 "이는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를 사회 구성원으로 맞이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전면적인 신호탄"이라고 주장했다.

숙명여대 내부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숙명여대 졸업생 등 100여명은 "A씨의 입학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발표했고 재학생들은 여전히 학교 측에 항의 전화를 하고 있다. 재학생들 일부는 합격생의 입학을 반대하기 위해 까다로운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는 단톡방을 만들어 전면적 활동을 예고하고 있다. 숙명여대 성소수자 단체인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학소위)는 지난 2일 페이스북에 A씨의 입학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발표했고 오는 6~7일 학내 대자보를 게시할 계획이다.

학교 측은 내부 논의 중이지만 여전히 A씨의 입학이 정해지기 전에는 어떤 내용도 공식화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숙명여자대학교. 정은혜 기자

숙명여자대학교. 정은혜 기자

"여성 되려는 욕구 존중돼야" VS "주관적 여성성이 근거 아냐"   

A씨의 입학을 둘러싼 논쟁은 크게는 A씨를 여성으로 인정하는 입장과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A써처럼 성전환 수술을 한 이들을 여성으로 보는 입장은 이들이 여대생, 여군 등 사회적 지위를 통해 여성의 삶을 획득하고자 하는 시도와 욕구가 사회적으로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소수자 단체에서 활동 중인 트랜스젠더 B씨는 "여성으로 성전환한 트랜스젠더 중 그 누구도 남성의 몸으로 태어나길 바란 사람은 없다"며 "래디컬 페미니즘 단체는 트랜스젠더들이 남성의 삶을 누려놓고 여성의 공간에 침투한다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성정체성 혼란으로 어려서부터 남성의 세계에 섞이지 못해 차별받아온 이방인들"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A씨를 여성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들은 A씨가 느끼는 주관적 여성성이 여성이 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A씨가 성기를 제거했다는 점도 여성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트랜스젠더를 조선시대 환관(궁에서 일하기 위해 거세한 남성)과 다를 바 없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서울권 여대 재학생 C씨는 "성기를 제거한 남성과 기숙사, 화장실 등 같은 공간에서 생활한다고 생각해보라"며 "이래도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을 이해할 수 없겠는가"라고 말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을 감행한 트랜스젠더들에게는 여성의 공간도 남성의 공간도 아닌 제3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이번 논의가 트랜스젠더를 여성이 여성의 공간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없는가로 번지는 경향이 있다"며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한 트랜스젠더도 남성의 공간에 섞이는 데 한계가 있기도 하다. 사회가 트랜스젠더를 위한 공간 마련을 놓고 고민해야 할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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