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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현상의 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사드도 메르스도 이겨냈다…콘텐트로 승부할 수밖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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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남이섬 전명준 사장 

전명준 ㈜남이섬 사장(오른쪽)이 산책로를 청소하던 70대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남이섬은 1차 정년 60세를 넘는 직원도 심사를 거쳐 2차 정년 80세까지 일할 수 있다. 최정동 기자

전명준 ㈜남이섬 사장(오른쪽)이 산책로를 청소하던 70대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남이섬은 1차 정년 60세를 넘는 직원도 심사를 거쳐 2차 정년 80세까지 일할 수 있다. 최정동 기자

겨울 평일인데도 섬으로 들어가는 배에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갑판 위 대화는 대부분 외국어다. 유난히 크게 들리는 중국어는 아무래도 기분 탓일까. 승객들은 거의 다 마스크를 하고 있었지만, 별다른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연이어 확진자가 나타나고 있다는 뉴스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분위기다. 전명준(58) ㈜남이섬 사장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걱정이 많겠다”고 질문했다. 돌아오는 답이 의외다. “신경은 쓰이지만, 큰 걱정은 않는다.”

사드로 중국 관광객 이미 크게 줄어 #동남아 등 고객 유치 다변화로 극복 #정년 80세에 전 직원 정규직화 화제 #“직원 신명 나야 일류 서비스 나온다”

너무 안심하는 것 아닌가.
“하루 3000명 정도의 외국인 내방 수준은 꺾이지 않았다. 국내에선 크게 긴장하고 있지만, 외국에서는 한국이 발원지가 아니라서 그런지 크게 염두에 두는 것 같지는 않다. 야외에선 마스크만 하면 감염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소독과 방역 등 철저하게 대비는 하고 있다.”
중국 관광객이 많지 않나.
“2016년 사드 사태 이후 중국인 손님 비중이 크게 줄었다. 중국 단체 관광객은 아예 없어졌다. 우리 섬을 찾는 한 해 300만 명 손님 중 3분이 1 이상이 외국인이다. 130개국 가까운 나라에서 오는데, 일본과 중국은 10위권 밖이다. 대신 필리핀·베트남·태국·말레이시아·대만·홍콩 등 동남아 손님들이 많다. 나라별로 분산이 잘 돼 있는 편이다.”

남이섬은 대표적 한류 관광지다. 지난해 방한 외국인이 1750만 명(한국관광공사 집계)이었다니 이들 중 7% 가까이 이 섬을 찾았다는 이야기다. 강원도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60%가 들른다는 통계도 있다. 그런 남이섬도 2015년 메르스와 2016년 사드 사태 때는 타격을 받았다. 특히 사드 보복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빠지자 2017년 매출이 전해보다 10% 이상 빠지고, 영업이익도 반 토막 났다.

회복이 쉽지 않았을 텐데.
“관광업은 변수가 많다. 전염병, 자연재해, 외교 문제 등 사업 환경이 늘 바뀐다. 이를 다양한 콘텐트와 매력으로 극복하려 노력했다. 동남아 관광객 유치를 위해 홍보를 강화했다. 국내 주재하는 외국 대사관이나 관광청 관계자들을 초청해 공연이나 요리체험 등 각종 이벤트를 펼치며 남이섬을 ‘와 볼 만한 곳’으로 인식시켰다. 할랄(이슬람 율법에 따라 조리된 음식) 인증 식당과 이슬람 기도실 설치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남이섬 할랄 인증 식당은 한국에서 네 번째로, 서울 이태원 외에는 최초다.”
한류도 도움이 됐을 것 같다.
“남이섬 하면 아직도 2002년 방영된 ‘겨울연가’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관광객이 찾지는 않는다. 드라마 촬영지로서 남이섬은 이제 잊어도 좋다. 촬영지 흔적은 남겨 두되 다른 수많은 콘텐트로 채웠다. 46만㎡(14만평)의 섬은 전시장·공연장·체험관·도서관·놀이터·산책로 등으로 가득하다. 한 해 크고 작은 공연이 600여 차례 벌어진다. 관광객들은 일상에서 누려보지 못한 문화적 경험을 하고 간다.”
너무 동남아 일변도는 아닌가.
“눈과 단풍 등 자기 나라에서 볼 수 없는 계절과 풍광이 동남아 사람들한테는 큰 매력인 듯하다. 지역적 균형을 맞추는 것을 장기 과제로 삼고 있다. 직원들에게 2030년까지 유럽 및 미주 관광객을 절반 정도까지 높여 보자고 강조하고 있다.”

남이섬 하면 또 하나 화제가 되는 것이 인사제도다. 남이섬 직원의 1차 정년은 60세이지만, 심사를 거쳐 80살까지 2차 정년을 보장한다. 직원 450여명은 모두 정규직이다. 이런 인사 정책은 비정규직 철폐를 강조하는 현 정부가 들어서기 한참 전에 시작됐다.

취지는 좋지만, 경영에 부담이 될 텐데.
“관광은 마음을 파는 사업이다. 고용이 안정돼야 진심 어린 서비스가 가능하다. 물론 계절별 인력 활용과 배분이 과제다. 인력 수요가 적은 겨울에는 시설물 수리나 환경 정비 등에 힘을 쏟는다. 섬에는 아스팔트 길이 없다. 정취를 살리기 위해 겨울에는 눈을 뿌리고, 팬 길을 메운다. 내년에 다시 찾는 손님이 새로운 느낌이 들도록 조형물도 손본다. 남이섬은 한 철 장사가 아니다. 항상 적정한 인력이 필요하다.”
직원들 순환 근무도 활발하다고 들었다. 전문성에 문제가 생기지 않나.
“관광업은 매출과 비교하면 직종이 다양하다. 자기 일만 잘하면 그만인 제조업의 전문성과는 조금 다르다. 여기만 하더라도 주차, 선박 운항, 식당, 청소, 공연·전시 운영, 공방 및 체험장, 호텔 운영 및 시설 관리, 기념품 판매, 놀이기구 보조 등이 있다. 실패하고 실수하더라도 다양한 경험을 해보며 성장한다. 활발한 의사소통과 순환을 위해 팀장과 팀원만 두고 직급을 없앴다. 최근에는 공연 기획을 하다가 바리스타 일을 하고 싶다는 팀장급 직원이 있었다. 급여 삭감까지 감수한 본인의 선택을 존중해줬다. 나도 대표를 그만두면 청소 일을 하고 싶다.”
효율과 능률도 중요할 텐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익보다 지속 가능성이다. 물론 이익이 있어야 기업이 영속하지만, 조직의 목표에서 이익이 앞으로 갈 수는 없다. 효율과 능률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관광이라는 업의 특성상 제대로 된 서비스를 위해 조직의 가치를 더 강조하는 것이다.”

전 사장은 관광업에 대한 정부의 이해 부족과 무관심도 꼬집었다. 말로만 관광정책을 외칠 뿐 실제 현장에서 움직이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이섬과 자라섬 사이로 지나가려다 겨우 취소된 ‘제2 경춘선 계획’을 무관심의 예로 들었다. 전 사장은 “2014년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일본보다 많았으나 2105년 메르스 사태로 역전당한 뒤 간격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며 “각종 투자책과 인센티브 등으로 총력전을 펼치는 일본과 너무 대비된다”고 아쉬워했다.

전명준 사장은 2005년 43세 나이에 입사했다. 국제상사 출신으로 스포츠토토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방황 끝에 ‘평생 몸을 담을 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남이섬에 지원했다. “당신 같은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니다”는 만류에도 청소나 빨래 같은 바닥 일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역량과 성실성을 인정받아 조금씩 경영에 발을 들여놓다 결국 2015년 대표로 취임했다. 취임 후 영업장 직영화, 단체 관광 수수료 폐지, 할랄 인증 식당 설치, 인사 시스템 개선 등 변화를 이끌었다. 전 사장은 “전임 강우현 사장이 예술인이자 크리에이터로서 섬의 기반을 닦았다면 나는 자율과 책임을 바탕으로 한 조직의 틀을 다지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남이섬은 한류 관광 거점으로 입지를 굳혔지만, 또 한 번 도약이 필요할 때라는 지적도 있다. 수년째 정체되고 있는 매출 등도 풀어야 할 과제다. 계열사 사업으로 제주도에서 ‘탐나라 공화국’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남이섬의 본질을 잃지 않겠다는 것이 전 사장의 의지다. 전 사장은 “다양한 고객의 취향 속에서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것이 관광산업의 본질이다. 남이섬은 문화인과 예술인에게 ‘끼’를 발산할 마당을 마련해주고, 손님은 이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문화 누리’로서 남고 싶다”고 말했다.

'종신 명예 직원'에게는 평생 매달 80만원씩

남이섬 산책로 한켠에 마련된 종신명예직원 기념 패널

남이섬 산책로 한켠에 마련된 종신명예직원 기념 패널

남이섬은 글자 그대로 ‘평생직장’의 꿈을 실현하고 있는 곳이다. 1차 정년 60세지만 ‘부지런하고 정직한 직원’에게는 2차 정년 80세를 적용한다. 남이섬 관계자는 “몇 가지 평가 기준이 있지만, 근속 연수를 우선으로 고려해 선정한다”고 귀띔했다. 2008년부터는 ‘종신 명예 직원’ 제도도 운용하고 있다. 80세까지 일하면 퇴사하더라도 매달 80만원의 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최근 회사 창립 기념식에서 1939년생 유제근옹

을 9번째 종신 명예 직원으로 추대했다. 유옹은 군 제대 후 남이섬의 전신인 경춘관광개발에 입사해 50년 넘게 청소와 시설 관리 등의 업무를 해왔다. 전명준 사장은 “섬 전체를 자연 친화적으로 운영하려다 보니 경험 있는 어르신들의 일손이 끊임없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섬 한쪽 산책로에는 종신 명예 직원을 소개하는 ‘명예의 전당’ 패널(사진)이 마련돼 있다.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