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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정호 논설위원이 간다

200년 전 추사의 힘찬 붓, 현대 작가의 붉은 네온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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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21세기에 다시 보는 추사 김정희

추사의 세상은 드넓다. 공간감이 돋보이는 ‘계산무진’. [사진 서울 예술의전당]

추사의 세상은 드넓다. 공간감이 돋보이는 ‘계산무진’. [사진 서울 예술의전당]

설치미술가 최정화(59)는 세계 미술계에서도 이름난 작가다. 그는 한국 미술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잇는 선배 작가로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를 첫손가락에 꼽는다.

무한한 상상력 자극하는 추사체 #후배작가들 통해 새롭게 태어나 #글과 시, 그림은 결국 하나로 만나 #19세기 중국 작가들에도 큰 영향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1층 로비에 그의 신작 ‘산호 비취’가 놓여 있다. 추사가 만 70세로 타계한 해에 쓴 대련(對聯) ‘무쌍·제일’을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원작은 전시장 2층에서 볼 수 있다. ‘무쌍채필산호가 제일명화비취병’(無雙彩筆珊瑚架 第一名花翡翠甁). ‘더없이 좋은 채색 붓에 산호 붓걸이, 제일가는 꽃에 비취꽃병’이라는 뜻이다. 최고·최선의 경지를 은유한다. 천지사방으로 뻗쳐나갈 듯한 기운찬 필획이 압도적이다.

설치작가 최정화의 ‘산호 비취’. [사진 서울 예술의전당]

설치작가 최정화의 ‘산호 비취’. [사진 서울 예술의전당]

최씨는 이를 새빨간 네온 LED 조명으로 재해석했다. 원작을 확대한 초대형 사진을 전시장 벽에 붙여 놓고, 그 앞에 붉은 네온 불빛이 꽃처럼 넘실거리게 했다. 하객들이 보내온 다양한 화분도 작품의 일부가 됐다. 고색창연한 글씨와 첨단 조명의 만남, 이질적이면서도 괴이한 분위기가 물씬하다. 최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원시미술·암각화의 가치가 어디 있는가. 무궁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내게 추사가 그렇다. 사람들은 그의 글씨를 기괴하다고 하지만 추사를 보면 늘 새로운 힘을 얻는다. 아이디어가 샘솟고 새 피가 돈다. 추사는 무엇보다 공간 구성력이 탁월하다. 추사가 지금 태어났다면 이런 작품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추사의 먹과 붓은 현대 작가들의 네온빛과 같다.”

조각·회화·설치 등 다양한 변주 이어져

천진난만 한 ‘판전’. [사진 서울 예술의전당]

천진난만 한 ‘판전’. [사진 서울 예술의전당]

최씨뿐이 아니다. 추사를 창작의 젖줄로 삼은 작가들이 제법 있다.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 김종영(1915~1982)이 대표적이다. 그는 추사를 프랑스 화가 폴 세잔(1839~1906)에 견줬다. “세잔의 회화는 그렸다기보다 축조했다고 보는 것이 어울릴 것 같다. 완당(추사의 다른 호)이 일반의 통념을 완전히 벗어나 작자(作字)와 획을 해체하여 극히 높은 경지에서 재구성하는 태도며, 공간을 처리하는 예술적 구성이 그의 탁월한 지성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김종영의 나무·돌 조각도 그렇다. 평생 서예를 단련한 그는 무심한 듯 굵직굵직하게 깎아낸 나무와 돌로 영원과 정적의 세계를 드러낸다. 글과 그림, 조각 모두 한 뿌리에서 비롯했다는 점을 일러준다. 그는 특히 장난기 가득해 보이는 추사의 ‘유희삼매(遊戱三昧)’를 따라 쓰기도 했다. 불교 용어 삼매는 최고의 즐거움에 도달한 경지, 즉 예술의 마지막 단계는 어린애의 천진난만한 얼굴일 수 있다.

‘유희삼매’. [사진 서울 예술의전당]

‘유희삼매’. [사진 서울 예술의전당]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중 주목받은 단색화가 윤형근(1928~2007)도 추사의 후예로 꼽을 만하다. 생전에 “내 그림은 추사의 쓰기에서 시작됐다”고 밝힌 그는 투박한 마포(麻浦) 캔버스를 화선지 삼아 굵은 귀얄 붓으로 죽죽 내리그은 암갈색 획면(劃面)추상에 천착했다. 먹의 농담을 옮긴 듯한 화면이 고혹스럽다.

중국의 서법(書法), 일본의 서도(書道) 대신 한국의 서예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손재형(1902~81)이 한자의 전자(篆字)·예서(隸書)체를 한글에 응용한 ‘사립 쓴 저 어옹아’, 한국 서단의 대가 김충현(1921~2006)의 글씨 같은 듯 그림을 닮은 ‘예천법가(醴泉法家)’ 또한 예부터 내려온 모든 글씨를 익히며 자신만의 고유한 서체를 완성한 추사의 예술정신과 통한다. 그간 서단의 아웃사이더로 남은 김광업(1906~76)이나 최규명(1919~99)의 파격적 작품도 눈을 즐겁게 한다. 즉흥적이면서도 공력 가득한 붓놀림이 한눈에 들어온다. 흔히 예쁜 글씨로 오해되는 서예에 대한 고정관념을 일순간에 깨뜨린다.

70년 공력 끝에 이룬 천진난만한 세상

후배 작가 김종영 의 ‘유희삼매’. [사진 서울 예술의전당]

후배 작가 김종영 의 ‘유희삼매’. [사진 서울 예술의전당]

사실 이번 전시는 현대로 이어진 추사의 맥을 살펴보는 자리가 아니다. 지난해 여름 베이징 중국미술관에서 열린 ‘추사 김정희와 청조(淸朝) 문인의 대화’ 귀국전이다. 19세기 동아시아 예술·학문 교류의 클라이맥스를 이룬 추사가 210년 만에 중국 문화계의 한복판으로 되들어가 대단한 화제가 됐다. 현지 관객 30만 명을 기록하며 중국 내 추사 열풍을 일으켰다. 과거에 박제된 추사가 아닌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추사가 부각됐다. 옛것을 공부하되 새로움을 창조하는 입고출신(入古出新)의 가치다.

윤형근의 ‘황갈색’. [사진 서울 예술의전당]

윤형근의 ‘황갈색’. [사진 서울 예술의전당]

실제로 1809년 스물넷 젊은 나이에 중국에 간 추사는 당대 중국 최고의 예술가 옹방강(翁方綱·1733~1818), 완원(阮元·1764~1849) 등과 나이를 뛰어넘는 친교를 맺었고, 귀국 후에도 청나라 학자들과 수없이 경전·작품 등을 주고받으며 시서화(詩書畵)·문사철(文史哲)·유불선(儒佛仙)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경지에 도달했다. 중국미술관 우웨이산 관장은 “추사는 한국 현대 서예의 개척자이자, 현대 예술의 심미적 선구자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됐다”고 평했다.

‘작품 76-8’. [사진 서울 예술의전당]

‘작품 76-8’. [사진 서울 예술의전당]

추사 귀국전은 지난해 중국 출품작에 한국 현대 작가들의 작품 일부를 추가한 형식이다. 총 120여 점이 나왔다. 한국 관객의 반응도 뜨거운 편이다. 지난달 26일에는 1988년 서예박물관 개관 이후 하루 최다 관객인 1240여 명이 다녀갔다. 이동국 서예박물관 수석 큐레이터는 “이번 추사전은 그간 서양미술에 밀려 예술 취급조차 받지 못했던 서예의 복권을 선언한다. 시서화가 하나로 통하는 동아시아 전통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향후 추사와 현대 작가의 대화를 보다 체계 있게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최규명의 ‘산’. [사진 서울 예술의전당]

최규명의 ‘산’. [사진 서울 예술의전당]

전시장 맨 끝에 놓인 작품 두 점이 머리에 쏙 박혔다. 추사가 일곱 살 때 삐뚤빼뚤하게 쓴 ‘입춘대길(立春大吉)’과 타계 사흘 전 병중에 쓴 서울 봉은사 편액 ‘판전(板殿)’이 대비를 이룬다. 일명 동자체(童子體)로 불리는 ‘판전’은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이 ‘군더더기를 티끌만큼도 용납하지 않은 순박한 필획’이라고 상찬한 작품이다.

허백련의 ‘김정희 초상’. [사진 서울 예술의전당]

허백련의 ‘김정희 초상’. [사진 서울 예술의전당]

추사의 70년 정진은 결국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일까. 추사는 삶의 마지막 해에 친구 권돈인에게 이런 편지를 부쳤다. “제 글씨는 비록 말할 것도 못되지만 70년 동안 벼루 열 개를 갈아 없애고, 천여 자루의 붓을 다 닳게 했습니다.”

추사 걸작 ‘불이선란도’를 못 보는 까닭

불이선란도.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불이선란도.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추사 귀국전에서 아쉬운 대목이 하나 있다. 간송미술문화재단ㆍ과천시추사박물관ㆍ제주추사관은 물론 개인 소장자 등 30여 곳이 참여했지만 추사의 또 다른 명작을 다수 보유한 국립중앙박물관은 전시에 불참했다. 국가 기관인 서울 예술의전당과 국립중앙박물관 사이의 공조 체제가 매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18년 11월 추사의 걸작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사진)’‘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 등을 기증받았다. 개성 출신 실업가 손세기 선생과 장남 손창근씨가 대를 이어 수집한 문화재다. 박물관 측은 기증품 일부를 지난해 3월 말까지 일반에 공개했다. 손창근씨는 2011년 추사 최고의 명품 ‘세한도(歲寒圖)’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하기도 했다.

예술의전당은 중앙박물관에 추사 작품 대여를 요청했으나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최선주 중앙박물관 학예실장은 “한번 전시한 작품은 1년 정도 휴지기를 둔다. 작품 보존을 위해 빌려줄 수 없었다. 서예박물관 전시 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은 점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일부 수긍이 가는 측면도 있지만 추사의 참모습을 오랜만에 규모 있게 돌아보는 자리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일반 관객으로선 소중한 볼거리를 잃은 셈이다. 이번 전시는 올 한해 계속된다. 서예박물관(3월 15일까지)에 이어 충남 예산추사기념관(4월 24일~6월 23일), 과천시추사박물관(9월 1일~10월 31일), 제주추사관(2020년 중) 등으로 이어진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