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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승현 논설위원이 간다

“중국인 계속 입국시키면 자살골 될 수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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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메르스의 교훈을 기억하라

지난달 29일 중국 광저우에서 출발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항공기에서 내린 승객들이 마스크를 쓴 채 검역대에서 발열 검사를 받고 검역 질의서를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중국 광저우에서 출발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항공기에서 내린 승객들이 마스크를 쓴 채 검역대에서 발열 검사를 받고 검역 질의서를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대 처맞기 전까진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 맞고 나면 쥐처럼 공포에 떨며 얼어붙는다.”(Everybody has a plan until he gets hit. Then, like a rat, they stop in fear and freeze.)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이 했다는 이 말이 남의 일이 아닌 요즈음이다. 한국 사회는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공포에 얼어붙기 직전이다. 반드시 이겨내야 할 전쟁인데 ‘우리에게 그런 역량이 있는가’라는 의심이 앞선다. 불과 5년 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38명의 사망자를 낸 처참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5년 만에 신종 코로나 공포 확산 #이번에도 밀접접촉자 놓치는 실수 #메르스 병원명 감춰 격리 지체돼 #외교와 국익 따지다 실기할까 걱정

2015년의 악몽을 떨쳐낼 만큼 우리 사회는 주도면밀해졌을까. 메르스 사태 이후 감사원은 2016년 1월 14일 ‘메르스 예방 및 대응 실태’라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로 확인된 것은 ‘메르스는 인재(人災)’라는 사실이었다. ▶메르스 대응 지침을 잘못 제정하는 등 사전 대비에 소홀했고 ▶최초 환자에 대한 역학조사 등 초동 대응이 부실했으며 ▶정보 비공개 등으로 확산방지에 실패했다는 게 감사 결과의 요지다. 당시 결과를 발표했던 신민철 전 감사원 제2사무차장(57)은 “메르스 때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에 우왕좌왕하다가 당했는데, 이번 사태에서도 같은 우(愚)를 범하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메르스 감사 결과는 ‘사후약방문’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다시 새로운 감염병과 맞선 우리에겐 잊혀서는 안 되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감사를 진두지휘한 신 전 차장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낙타고기’로 웃음거리 된 대응지침

신민철 전 감사원 제2사무차장

신민철 전 감사원 제2사무차장

‘익히지 않은 낙타고기, 낙타유 섭취하지 않기….’

메르스 사태 때 논란이 된 대응지침 중 일부다.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가 메르스 사태 6개월 전 만든 이 자료는 세계보건기구(WHO) 홈페이지에 있는 중동 여행 주의사항을 번역한 수준이었다. 감사 결과 질병관리본부는 메르스가 최초 발생한 2012년 9월 이후 메르스 연구 및 감염 방지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WHO의 권고를 8차례나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정부는 안일했고 허술했다. 신 전 차장은 “곳곳이 너무 어설펐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에는 잘 대처할까.
“메르스 때는 전문가 집단이 제 역할을 못 했다. 우왕좌왕하느라 초동 대응과 확산 방지에 실패했다. 우리 의료 전문가들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과연 어느 선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얼마나 퍼져 나갈지 장담 못 하는 상황에서 이만큼이냐 저만큼이냐, 너무 넓으냐 좁으냐, 다른 부작용이 있냐 없냐를 판단하지 못했다. 주저하다가 크게 터졌다. 고의라기보다는 중(重)과실이었다. 그런 경험을 했으니 이번에는 잘 대응할 거로 생각했는데, 같은 걱정이 생기고 있다.”
메르스 때보다 더 힘들까.
“그럴 것 같다. 메르스 때는 정책 실패가 많기는 했지만, 병원응급실에서 퍼져 나갔기 때문에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했다. 중동에서 온 사람도 한정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범위가 너무 넓다. 중국의 그 넓은 땅을 대상으로 수집된 정보가 얼마나 정확한지도 알 수 없다.”
메르스 때 밀접접촉자를 놓쳤는데.
“2014년 7월에 만들어진 메르스 대응지침에는 밀접접촉자 범위가 ‘2m 이내에서 1시간 이상 접촉한 사람’으로 설정돼 있다. 너무 좁게 설정된 것이다. 해외에서는 ‘2m 이내’ 또는(or) ‘1시간 이상’ 등 나열식으로 정했다. 그런데, 우리는 ‘and’의 개념으로 정해버린 것이다. 우리 같은 문외한이 봐도 or인데, 난데없이 and로 묶어 버렸다. 사태가 터졌으면 그걸 다시 점검해야 했는데, 그것도 놓치고 뒤늦게 바꿨다. 전문가 그룹이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한 것이다.”
메르스 사태

메르스 사태

or가 and로 … 환자관리 구멍

엉터리 지침 때문에 평택성모병원의 1번 환자가 엘리베이터에서 접촉한 환자 등 48명(이 중 확진자 3명)이 관리대상에서 누락됐다는 게 감사 결과다. 방역망을 1번 환자의 병실로 한정해 의료진 등 20명만 격리하는 사이, 1번 환자를 접촉한 14번 환자(슈퍼전파자)가 삼성서울병원으로 이동했다. 그다음 단계의 실수도 사태를 키웠다. 당국은 삼성서울병원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고, 14번 환자가 접촉한 환자의 명단도 뒤늦게 보고됐다. 결국 노출 환자 추적 조사와 격리가 1주일 지연됐다.

신종 코로나도 확산 방지에 허점이 나타나고 있다.
“어설픈 대처에 대한 보도를 보고 있다. 무증상자들은 감염력이 없다고 했다가 다시 가능성 있다고 한다. 메르스 때도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문제였는데, 지금도 반복되는 것 같다. 확신이 없으면 보수적으로 가야 한다. 혹시 모른다는 생각으로 망을 크게 쳐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아쉽다.”
중국인 입국이 중대 변수인데.
“메르스 때 병원명 공개가 미뤄져 대규모 확산이 됐다. 병원명 공개의 득실을 따지다가 늦었다. 복지부는 삼성병원 환자의 치료 거부 및 혼란 발생 등을 이유로 비공개를 주장했다. 삼성병원도 잘 대처해 보겠다고 하다가 결국 시기를 놓쳤다. 이와 유사하게 이번에 확산 방지의 가장 큰 변수는 중국 문제다. 지난번에는 병원 이름 공개를 늦추다가 타이밍 놓치고, 이번에는 국익 때문에 중국인 입국 문제를 고민만 하다가 실기하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60%만 막으면 의미없어

정부는 2일 후베이성을 14일 이내에 방문하거나 체류한 모든 외국인은 4일 0시부터 입국을 금지하기로 했다. 관광목적의 단기 비자 발급 중단도 검토되고 있다. “중국 지역을 다 막아야 효과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이어진다. 신 전 차장은 “또 사후약방문이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외교적 부담이 크지 않을까.
“우리가 먼저 하기는 부담스럽다고 하더라도 다른 나라를 따라는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우한 이외의 확진자가 40%라는 분석도 있는데, 60%만 막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 이 판단은 메르스 때와 똑같은 우를 범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병원 이름 공개가 더 빨랐다면 사망자가 많이 줄었을 수 있다. 당시 의료 당국이 너무 많이 겁을 냈고, 병원 입장을 너무 염려했다. 지금도 확진자가 급속히 늘고 사망자까지 나와야 중국에 대한 조치를 확대할 분위기인데, 그러면 똑같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상황이 될 수 있어 걱정스럽다.”
쉽지 않은 판단이다.
“고도의 정책 판단인 건 맞다. 메르스 때는 결국 실기했고, 확산 방지에 실패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선제적 조치를 해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후베이성 사람만 막아서 확산 막을 수 있을지. 잠복 기간에도 감염되는 걸 알면서도 중국인을 계속 들어오게 하는 것은 ‘자살골’이 될 수 있다.”

신 전 차장은 신종 코로나에 대처하는 전문가들에게 메르스 때의 경험이 도움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지금 일하는 상당수가 당시 경험하면서 느꼈기 때문에 정보공개 등도 제대로 하고, 확진자 관리도 어느 때보다 제대로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도 그때 감사를 받은 경험이 있다. 누구보다 신뢰가 가고 잘 대처하리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불을 내기도 했지만, 결국 불 끈 사람도 그들 전문가”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사태는 전문가 집단의 판단 영역을 넘어서고 있다. 신 전 차장은 “메르스 때와 같은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질본이나 복지부 차원에서 결정할 수 없는 변수라서 안타깝다. 의사협회, 복지부도 판단에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메르스의 우를 범하지 말자”고 여러 차례 말하며 안타까워 했다. “메르스 때에도 역학조사관을 늘려야 한다고 난리를 쳤다. 눈물 나게 열심히 일했는데도 사람이 부족했다. 그런데 지금도 같은 얘기가 나온다. 국회는 또 입법을 한다고 한다. ‘하나 바뀐 게 없이 돌고 도는구나’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김승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