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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하이밍 입국 제한 여론전 “한국 조치 많이 평가 않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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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싱하이밍 신임 주한 중국대사가 4일 서울 명동 중국대사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어 발언하고 있다. 싱 대사는 이날 한국 정부의 입국 제한 조치에 관해 ’제가 많이 평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싱하이밍 신임 주한 중국대사가 4일 서울 명동 중국대사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어 발언하고 있다. 싱 대사는 이날 한국 정부의 입국 제한 조치에 관해 ’제가 많이 평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한국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발원한 중국 후베이성에 머물렀던 외국인의 입국을 제한한 데 대해 싱하이밍(邢海明) 신임 주한 중국대사가 4일 “많이 평가하지 않겠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근거에 따랐으면 한다”고 밝혔다. 중국 체류자 전체로 입국 제한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국내 여론에 대한 반대 표명이다. 싱 대사는 이날 오전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WHO는 세계 각국이 국제 여행과 교육을 불필요하게 방해하는 조치가 있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며 이처럼 밝혔다. 정확한 문답은 이랬다.

기자단 불러 이례적 한국어 회견 #“우리는 한국 메르스 심할 때 왔다” #한국인에 직접 메시지 전달 분석 #중국 환자 2일간 6000명 늘었는데 #정부, 여행경보 격상 계속 검토만

한국 정부가 오늘부터 입국 제한에 돌입했으며,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단계적으로 확대를 검토하기로 했다. 중국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가. 또 중국이 이야기하는 ‘각국이 취해야 할 과학적 조치’는 무엇인가.
“한국 정부의 관련한 발표에 유의했다. 2015년 6월 중국 장더장(張德江)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방한했고, 내가 실무를 맡았다. 한국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한창 심할 때였고, 한국분들을 만나면 ‘정말 고맙다’ ‘중국은 믿을 수 있는 이웃’이라고 했다. 불행한 사태 앞에서 서로 이해하고 역지사지했으면 한다. 한국이 취한 조치, 그에 대해 제가 많이 평가하지 않겠다. 그러나 과학적인 것은 이런 면에서 가장 권위 있는 WHO의 근거를 따르면 되지 않을까 한다.”

외교적으로 ‘평가한다(appreciate)’는 일종의 사의를 담은 표현이다. 직업 외교관인 그가 ‘평가하지 않겠다’고 한 데는 정무적 판단이 담긴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축소해 해석하더라도 ‘그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 정도로, 역시 긍정적 뉘앙스는 아니다. 뒤이어 싱 대사가 ‘WHO의 근거’를 내세운 것도 우회적인 불편함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WHO는 공개적으로 각국의 입국 제한 조치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후베이성발 여행객만 막는 한국의 조치는 중국 전역에서 오는 여행객의 입국을 금지하는 미국·베트남 등에 비하면 제한적이다. 한·중 관계를 고려해서다. 하지만 중국은 이를 평가하기는커녕 확대하지 말라는 경고까지 한 셈이다. 중국이 이날 기자회견을 외교부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한국어로 진행한 점을 고려하면 메시지는 더 명확해진다. 전임 추궈훙 대사는 일부 언론과 간담회를 했을 뿐 한 번도 기자단 전체와 회견한 적이 없다.

기자회견 뒤 대사관 직원들이 회견장을 소독하는 모습. [연합뉴스]

기자회견 뒤 대사관 직원들이 회견장을 소독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국어에 유창한 싱 대사는 회견 전체를 한국어로 진행했는데, 외교관이 공식 행사에서 모국어가 아니라 주재국 언어를 사용한 것도 이례적이다. 중국 측이 한국 대중을 향해 보다 직접적으로 입장을 전달하려 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출입국 제한 조치 강화와 관련, 여전히 “검토 중”이라는 답만 내놓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일 중국 전역에 대한 여행경보를 철수 권고(적색 경보)로 높이겠다고 발표하고선 네 시간 만에 “지역별로 검토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3일 중앙사고수습본부의 발표에선 이 내용이 아예 빠졌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의학적으로 타당한 조치인지, 실효적으로 집행 가능한 수단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장 높은 단계인 여행금지(흑색 경보)를 발령하면 여권법에 따라 우리 국민의 특정 국가 체류를 금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흑색 경보는 정부가 고려하는 적색 경보보다 높은 수준이긴 하지만 실효성을 따진다면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는 건 아니란 뜻이다. 단기적 위험 발생시 발령하는 특별여행경보 2단계도 즉시 대피의 효력이 있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4일 “지역에 따라 확진자 수 증가 등 구체적 상황을 주시하며 여행경보 조정 문제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내 신종 코로나 확진자는 정부가 대책을 놓고 오락가락한 2일(1만4482명)에 비해 이틀 만인 4일까지 6000명 이상 늘었다(2만487명). 중국 여행경보는 후베이성을 제외하면 아직도 여전히 여행 자제(남색 경보)에서 변화가 없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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